세계의 바다는 한 몸이다
세계의 바다는 한 몸이다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6.10.1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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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에 잉크를 담아 완도군 군외면 바다에 쏟아 붓는다. 잉크는 어떻게 될까. 금방 잉크는 물결치는 바닷물에 희석이 되어 사라져버린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잉크는 사라지지 않는다. 세계의 어느 바다에서든 한 컵의 바닷물을 뜨면 그 컵의 바닷물엔 내가 쏟아 부은 잉크의 분자 두 개가 들어 있다. 세계는 바다가 그렇듯이 만물은 그렇게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 세계의 모든 바다는 서로 어깨를 겯고 한 몸이 되어 있는 것이다.

시인 릴케는 ‘지금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세상에서 이유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은/나 때문에 울고 있다.’(‘엄숙한 시간’에서)이라고 읊는다. 나와 세계가 연결되어 있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내가 마시는 한 줌의 공기도, 내가 바라보는 별빛도 나만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공유하고 연결되어 있다. 지중해를 건너다 침몰한 배에 탄 수백 명의 난민들의 비극이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건이 아닌 것이다.

양자역학이라는 물리학 중에서도 아주 어려운 이론에 따르면 지금 이곳에서 목격된 입자는 내가 볼 때만 거기에 있고 내가 보지 않을 때는 어디에든 동시에 있다고 한다. 도무지 모를 것 같은 이론이다. 나는 이것을 세상 만물이 내 생각에 반응한다는 식으로 이해한다. 내가 길가에 하늘거리는 한 송이 코스모스를 생각하면 그 코스모스를 이루는 원자는 나의 생각에 연결되어 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어쨌든 세계는 그 무엇도 따로 혼자가 아니라는 이야기에 나는 감명받는다.

올림픽에 나간 선수가 수만 리 떨어진 자기 나라 국민들에게 응원을 부탁한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만 조국에서 국민들이 응원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용기백배하여 힘과 기술이 발휘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같은 식으로 이해해도 될지 모르겠다. 우리는 시방 외환위기 때에 방불할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한다. 어쩌면 그때보다 상황이 더 나쁜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빵집이 어려우면 그 어려움은 다른 사람에게로 파문지어 간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것은 신비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그것을 시인은 깊은 통찰로 발견해내고 있다. 릴케는 이렇게 맺는다. ‘지금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 죽어가고 있다./세상에서 이유 없이 죽어가는 사람은./나를 쳐다보고 있다.’ 자주 이 시가 떠오른다. 내가 하는 말, 몸짓, 생각 들이 이 세상 만물과 연결되어 있다는 연대감이 때때로 나의 존재감을 고양시킨다.

다른 사람이야 어찌 되었든 무엇인가를 억지로 내 것으로 가지려 한 몸부림이 한없이 부끄럽고 후회스러워지기도 한다. 시인 릴케는 일평생 자기 집을 가져본 일이 없다. 그렇게 동가숙서가숙하며 지냈다. 하지만 그는 펜을 놓지 않았다. 그는 누구에겐가 수백 통의 편지를 쓰고, 일평생 수백 편의 시를 썼다. 그것만이 그를 구원해주었다.

그의 시편은 바다의 파도처럼 항상 내 가슴에 물결친다. 그리하여 세속에 찌들어 사는 나에게 삶에 대한 성찰을 채근한다. 머리 둘 집도 없이 떠도는 삶을 살았던 릴케에 비하면 나는 너무 가진 것이 많다. 대체 어쩌다 우리는 남이야 어찌 되었든 무엇인가를 가져야만 하도록 끊임없이 내달리게 되었을까. 세상은 내게 가져라, 가져라 하고 몰아세웠다. 그것이 집이건, 자동차건, 직장이건, 권력이건, 우리는 소유의 열망에 시달려 온 것이다. 나만 잘되면 된다는 무서운 생각에 쫓기어 다닌 것이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면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내가 자연과 우주의 거대한 그물을 이루는 하나의 그물코라고 여긴다면 나는 모든 세상 일이 나와 무관한 것이 없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그리고 내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데까지 생각이 뻗어간다. 모든 것은 그 어느 것도 내 것이 아니라 공유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때로 어지러운 이 세계는 누가 이끌고 가는 것일까라고 생각해볼 때가 있다. 사람들은 난마처럼 얽힌 이 나라를 ‘정도령’이라도 나타나서 구원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이 세상의 그물을 이루는 그물코일진대 나를 배제시키고 이 세상은 돌아가지 않는다. 내 힘이 모여서 세상이 돌아간다. 내가 걱정을 하지 않고, 내가 희망을 생산하지 않는다면 그물코는 찢어진 것이나 같다. 그물코가 하나라도 찢어지면 그 그물은 깁지 않으면 안된다.

법정 스님 말씀대로 꼭 필요한 것만 최소한으로 소유하려고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소비는 나라 경제의 발전과 관계가 있다는 말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마구 소비해야 세상이 좋아진다는 말에는 무엇인가 뒤틀린 데가 있어 보인다. 거꾸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두 근검절약하며 산다면 어떻게 될까.

막연한 짐작이지만 세상은 오히려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쏟아 부은 한 컵의 잉크가 세계의 모든 바다로 퍼져가듯이. 나의 생각과 행동은 이 세계라고 하는 그물에 연결되어 있다. 나는 세계라고 하는 거대한 바다와 연결되어 있는 물결이다. 그러니 물결 하나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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