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수용소 소견 (14)- 유대인 해골 수집(2)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견 (14)- 유대인 해골 수집(2)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6.10.1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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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1943년 6월15일에 히르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수감자 115명을 조달받았다. 이들 중 86명이 아우슈비츠에서 나츠바일러 슈트루트호프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었다. 주1)

음산한 수용소 소장 크라머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히르트는 크라머에게 청산염이 들어 있을 250밀리리터 병을 건네주었다. 1943년 8월의 어느 날 저녁에 여자 15명이 가스실로 보내졌다. 이후 두세 번에 걸쳐 수감자들은 10명씩 처형되었다.

크라머는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이렇게 자백했다.

그 일을 수행하면서 나는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여러분께 진술한 방식으로 86명의 수감자들을 처형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교육 받았습니다. (미셸 시메스 지음 · 최고나 옮김, 나쁜 의사들, 책담, 2015, p 109)

수용소장 크라머의 자백에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악의 평범성은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1963년 저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아렌트는 홀로코스트와 같은 역사 속 악행은, 광신자나 반사회성 인격 장애자들이 아니라 국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정상적인 성격의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다고 주장했다.

한편 유태인 시신들은 여전히 따뜻한 상태로 스트라스부르 대학 해부학연구소에 도착했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 현장인 스트라스부르는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영토였고, 스트라스부르 의과대학은 전적으로 나치 의학에 충성하고 있었다.

히르트의 실험준비 조교로 있던 앙리 피에르가 시신을 수령했다.

그는 55도 합성 알코올이 부어진 큰 통 안에 시신을 넣었다. 히르트는 앙리 피에르에게 “입조심 하지 않으면 자네도 저렇게 될 거야”라며 경고했다. 큰 통 안에 들어간 시신들은 아무도 만질 권리 없이 1년간 방치되었다.

1944년 9월5일 연합군의 진격 앞에서 히르트는 불안했다. 통 안에 든 시신들의 처리해야 했다. 결국 앙리 피에르와 동료들은 86구의 시신들을 절단해 스트라스부르의 화장터에서 태우라는 명령을 받았다.

시간이 촉박했던지, 아니면 처리를 제대로 안했던지 일부 시신들이 남아 있었다. 몇 구가 부분적으로 절단된 사지들과 함께 큰 통 바닥에 남았다.

해부학 연구실에서 잔학행위의 현장을 발견한 연합군은 시신과 큰 통들을 사진으로 찍었다. 실험준비 조교가 사진사들을 도왔다. 앙리 피에르는 이 일을 도왔고,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증언하여 히르트 컬렉션이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주2)

히르트는 도망쳤다. 그는 튀빙겐에서 멀지 않은 산악지역 슈바르츠발트에 숨었다. 그리고 1945년 6월에 자살하였다. 그 사실도 모르고 프랑스 정부는 1952년에 히르트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연구소에서 발견된 시신들은 크로넨부르 유대인 공동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스트라스부르 의과대학 현관에는 추모현판이 있다. 여기에는 ‘다시는 의학이 타락하지 않도록 이들을 기억하시오.’라는 글이 적혀 있다.

그렇다. ‘양심이 없는 과학은 영혼의 잔해일 뿐이다. - 라블레 (프랑스 작가)’

▲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실
▲ 수용소동 바깥에 설치된 고압전기 시설

 

주1) 나츠바일러 수용소는 1941년 5월부터 1944년까지 프랑스 알자스에 있던 나치 독일의 집단수용소이다.

주2)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5부터 1946년 사이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전범재판에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잔인한 인체시험을 저지른 의사 20명과 의료행정가 3명이 의학의 이름으로 자행된 살인, 고문, 잔학행위로 기소됐다. 재판에 회부된 독일 의사들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재판관들은 이들의 유죄를 인정하면서 포로를 사용한 인체실험의 윤리적 원칙들을 제시하면서, 7명은 교수형, 9명은 장기형을 선고하였다.

 

나치전범재판을 계기로 다시는 비윤리적인 실험이 벌어지지 않도록 인체 실험에서 지켜야 하는 10가지 기본원칙을 담은 '뉘른베르크 강령'이 1947년 제정됐다. 이 강령은 실험 대상이 되는 자의 자발적 동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점, 실험대상자가 원하지 않으면 바로 실험을 중단해야 한다는 점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한편 도쿄전범재판은 나치전범재판과는 너무나 달랐다. 일본 731부대의 만행은 생체실험 정보를 미국에 넘겨주는 대가로 은폐되었고, 부대장 이시이 시로는 도쿄전범재판 개시직전에 석방되었다. (EBS 역사채널, 역사ⓔ2, 2013, p 230,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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