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시롱’
‘점시롱’
  • 김병욱 충남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승인 2016.10.13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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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욱 충남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내 이종형이 있었는데 조금 모자란 편이었다. 1958년인가 군대에 갔는데 첫 휴가 후 귀대시에 귀대 신고를 할 때 소대장이 “직속 상관 관등 성명”하고 물으니까 머뭇거리면서 “점시롱”(저이면서)하고 대답하자 모여 있던 소대원의 폭소가 터져나왔고 화가 난 그 소대장이 마구 구타를 했던 모양이었다. 사실 바른대로 말하면 ‘점시롱’이란 말은 과히 틀린 말이 아니다. 곰곰히 되새겨보면 우문현답이다. ‘자기(저)이면서 뭘 어렵게 관등 성명을 물을 게 뭐 있느냐’는 이 말 때문에 기합을 단단히 받고 완전히 ‘고문관’취급을 당했으며 훗날 멍하니 ‘먼산 바라기’가 되어 끝내 정신병 환자로 지내다 50대에 세상을 떴으니 구태여 사인을 묻는다면 ‘점시롱’으로 인한 구타와 따돌림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천진난만하게 ‘점시롱’ 사건을 말하던 그 형의 모습이 60년이 다 된 이 시점에서도 생생히 떠오른다.

설명의 양식 중에서 가장 간단한 것이 지정 또는 동일화(identification)이다.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저 사람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을 때 ‘저 분은 유명한 화가 누구입니다’라고 이름만 대면 될 것이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그 당사자가 평범한 사람일 경우 ‘아 저분은 유명한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의 아버지입니다’라고 말하면 금방 그 사람의 정체를 알 수 있다.

간혹 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명백한 것을 빙빙 돌려 어렵게 말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사례가 많다. 특히 전문가들이 이렇게 빙빙 돌려 말하거나 아예 거짓말을 할 때 우리는 분노한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놓고 부검을 해 봐야 한다는 당국의 처사는 진실을 호도 또는 은폐하려는 시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누가 봐도 확실한 시위 진압 과정에서 물대포를 맞아서 죽었다는 것이 명백한 대도 서울대 병원 특히 백선하 교수는 병사라고 주장했으니 그는 의사의 양식은 물론이고 교수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진술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서울대 의대생들마저도 도저히 그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집단적인 반대를 한 형편이다.

백선하 교수에게 다시 묻겠는데 병사가 분명한가. 그러면 그대는 끝까지 정권의 하수인이고 나중에 어떻게 강단에 설 것인가. 더 더군다나 백남기 농민의 유족들이 물대포에 쓰러진 고인을 적극적인 치료를 거부했기에 심폐정지가 되었다는 대목은 인륜의 도를 넘은 짐승의 짓인 것이다. 이러고도 우리나라 자연계의 최고 수재 중의 한 사람인가. 우리는 수많은 지식인들이 정권의 하수인으로 행세를 했고 그들의 말로를 똑똑히 보아 왔다. 나는 어떤 글에서 박근혜 정권을 ‘거짓말 공화국’이라 칭한 바 있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공약한 것을 실천 안한 것은 물론이고 최근의 미르 재단 문제, 그리고 엄연한 사실인 백남기 농민의 사인에 이르기까지 이 정권은 거짓말 콘테스트장과도 같은 줄줄이 거짓말을 엮어냈다. 거짓말로 흥한 자 반드시 거짓말로 망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더 이상 양치기 소년에 속기만 한 순진한 마을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는 말이 절실한 현실이다.

지난 이명박 정권은 멀쩡한 우리의 강하를 난도질 하더니 이 정권은 거짓말 한국 근대사를 교과서에 싣겠다는 망동을 부리니 역사가 반드시 올바른 심판을 내릴 것이다. 강하가 난도질 당하고 역사마저도 난도질하려는 세력은 누구인가. 이럴 때 ‘점시롱’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역사의 회초리는 피부에는 큰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지 모르겠으나 뼈속으로 파고드는 고통으로 변할 것이다. ‘직속 상관 관등 성명’ 신고를 ‘점시롱’이라 말했다 하여 혹독한 기압을 준 60여년 전 그 소대장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가. 이 정권이 역사를 누가 훼손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점시롱‘이라고 말하겠다.

가장 힘있는 말은 참말이다. 참말의 수사는 간단명료하다. 왜냐하면 참말이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말이면 다 말이냐, 말이 말다워야 말이지”라는 문구가 절실한 현실이다. 우리 모두 참말과 참말로 대화합시다. 이럴 때 “나 여기 있고 그대 거기 있으니 우리는 외롭지 않다”는 말이 가슴에 찡하니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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