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소리> 지역공동체캠페인, ‘길 위에서 역사를 만나다’
<시민의소리> 지역공동체캠페인, ‘길 위에서 역사를 만나다’
  • 정선아 기자
  • 승인 2016.10.08 2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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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화체험관이라 불리는 양촌길에서 열려
"힘이 들때 치유되는 힐링공간"

<시민의소리>가 주최하고 지역신문발전위원회가 후원하는 지역공동체캠페인 ‘길 위에서 역사를 만나다’ 두 번째 프로그램이 7일 양촌길에서 열렸다.

<시민의소리>는 지난 5월 17일 지호로에 대해 설명을 듣고 걸으면서 길의 옛 모습과 현재의 모습은 어떤지, 그리고 오지호 가옥을 들러 그 인물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시민들과 함께 갖은 바 있다.

이번은 지역공동체캠페인 두 번째 순서로 ‘양촌길’과 ‘서서평길’을 시민들과 걸으면서 광주지역 근대문화의 태동에 대해서 듣고 도로명과 그 속에 녹아있는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정엄의 호인 양촌(楊村)을 그대로 길 이름으로 사용한 ‘양촌길’은 남구 양림동 111-16번지 은성유치원을 시작으로 양림동 166-6번지까지 360여 미터에 이르는 작은 골목이다.

이번 캠페인에는 숭일고 선생님과 학생들도 참여하여 학생들에게 근대 문화에 대한 좋은 현장 교육이 되기도 했다.

▲ 양림동 주민커뮤니티센터 3F, 김종인 문화해설사가 양림동의 뿌리부터 설명 중이다.

우리 일행들은 양림동 주민커뮤니티센터에 모여 먼저 3층으로 올라갔다. 이날 캠페인은 양림동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김종인 문화해설사의 설명으로 시작됐다.

그는 “버드나무 숲으로 덮여있는 마을이라 해서 양촌과 유림을 합해 양림이라 칭하게 되었다”면서 “광주의 명산이고 어머니의 산인 무등을 품에 안고 배산임수형의 명당자리인 양림동에 신흥부자들이 집을 지어 현재 몇 채가 남아있다”며 “사직산 뒤로는 미국 선교사들이 집을 지어 ‘서양촌’이라 불렸다”고 양림동이 지금의 모습으로 탄생하게 된 유래부터 설명했다.

이어 “선교를 위해 선교사들이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여 남학교인 숭일고와 여학교인 수피아여고가 탄생했다”며 “이어 자신들이 살던 곳에 의사, 간호사, 교사들이 오면서 근대의료가 시작되었고, 광주의 근대문물은 양림동으로부터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다”고 광주의 근대문화의 태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 펭귄마을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가운데 우리 일행은 첫 탐방지로 귀여운 펭귄들이 지키고 있는 ‘펭귄마을’로 향했다. 화재로 집 한 채에 불이나 연소된 곳에 마을의 쓰레기들이 쌓여 흉물스럽게 방치되자 마을 주민들이 그 집터를 이용해 버려진 옛 물건을 재활용하여 텃밭을 가꾸었다.

대부분 관절염 등 지병을 지니고 있던 나이든 주민들이 뒤뚱뒤뚱 느린 걸음으로 걷는 모습이 마치 펭귄이 걷는 모습과 닮아서 펭귄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SNS로 펭귄마을이 입소문을 타며 많은 젊은이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참여한 시민들과 펭귄마을 골목 구석구석 정크아트와 벽화들을 둘러보았다. 한 참가자는 “광주에 살면서 이런 곳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며 “참가하길 정말 잘했다”고 소감을 말했다.

▲ 이장우가옥을 둘러보는 참여 시민들

펭귄마을을 나와 1899년 건립된 광주 민속문화재 제1호 ‘이장우 가옥’을 찾았다. 해설사는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며 뼈대가 굵고 원형이 잘 보존된 전통가옥이나 전면을 유리창으로 설치하여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졌다”고 가옥에 대해 설명했다.

함께 가옥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 참가자는 “이렇게 큰 전통가옥은 처음 본다”며 “넓은 집을 가꾸기 위해 사람들을 고용해야 했을 것이며, 엄청난 부자동네였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었다”고 놀라워했다.

▲ 한희원 작가가 학생과 시민들에게 그림에 대해 설명 중이다.

다음 목적지는 한희원 작가가 주택을 매입하여 미술관으로 개조한 ‘한희원미술관’이었다. 철제 플레이트 대문에 참여 시민들과 함께 들어서니 한희원 작가가 찾아온 시민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호기심에 이것저것 물어보는 학생들의 물음에 직접 작가가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친절히 설명 해주었다. 근대문화체험관이라 할 수 있는 양림동에 미술관이 생김으로 그 색깔을 더 했다.

▲ 개방은 되지 않아 집 앞의 그림을 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이어 미술관과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인 최승효가옥에 도착했다. 해설사는 “이 집의 건립자는 당시 중국과 무역을 하며 막대한 부를 쌓았던 재력가로 3천여 평의 대지에 집을 지었다”면서 “연등천장인 대청을 제외하고는 다락을 두었는데 이곳에 독립운동가 등을 피신시켰다”고 집에 대해 설명했다. 지금은 개방되어있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 정엄의 효자비와 충견상을 보며 이야기를 듣는 모습

마지막으로 ‘양촌길’ 이름의 주인인 양촌 정엄의 효자비와 충견상을 바로 옆 서서평길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김종인 해설사는 “광주정씨 양촌 정엄은 병환이 위중한 어머니를 밤낮없이 간호하였고, 돌아가신 후엔 아침저녁으로 통곡하며 묘 곁에서 시묘살이 하였다”며 “바로 다음 해에 자신도 심신이 지쳐 돌아가신 효자였다”고 인물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그의 효자비 옆의 사자모양의 충견상은 양촌이 기르던 개로 신속한 통신연락업무를 해냈기로 유명했다”며 “추운 겨울날 양촌은 새끼 날 때를 감안치 않고 한양으로 심부름을 보내 돌아오는 길에 새끼를 9마리나 낳게 되어 한 마리씩 나르다 죽게 되는데, 자신의 실수로 죽은 개를 충견상을 만들어 추모하였고, 오늘날엔 효자비 옆에 위치하여 ‘죽어서도 주인을 지키고 있는 양림마을의 충견’이라 불리고 있다. 지금은 정엄보다 개(동개비)가 더 유명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양림만 알아도 광주의 절반을 아는 것이다. 삶이 힘들고 무료할 때 힐링할 수도 있는 곳이니 자연스레 찾아와 보는 것이다”며 참여 시민들과 끝 인사를 나눴다.

캠페인을 마친 시민들은 “양림동에서 발걸음이 안 떼어진다”며 “정말 힐링이 되는 길이었고 다시 찾아 오고 싶은 곳이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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