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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누정문화의 재조명(5)-영벽정지석강과 연주산의 푸르름이 함께 비추어 피어오르다
서성우 호남지방문헌연구소 연구원  |  siminsori@simins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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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06  09:4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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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벽정모습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관영리의 연주산 아래에는 영벽정이 자리하고 있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경전선을 달리는 기차에서도 이 영벽정의 모습과 지석강과 어우러진 영벽정 유원지 일대를 엿볼 수 있는데, 이를 지나는 승객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 영벽정 편액

영벽정은 조선시대 관청의 주도하에 지은 것으로 전하나, 창립연대와 건립자 등은 알 수 없다. 정내에 걸린 능주군 주사(綾州郡 主事)를 역임했던 주기풍(朱基豊)의 <영벽정중수기>와 신안인의 주곤(朱坤)의 <영벽정중수기>에도 그 창립연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남아있는 현판 중에는 김종직(1431~1492)과 양팽손(1488~1545) 등의 제영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전기 관청으로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은 주기풍의 <영벽정중수기>의 일부이다. 여기에서는 송나라의 구양수의 저정[취옹정을 지칭]과 중국 최대의 명승지인 동정호를 내려다보는 악양루를 들어 영벽정의 빼어남을 칭송하고 있으며, 아울러 세월로 인해 훼손된 영벽정을 수리한 내용도 언급하고 있다.

   
▲ 주기풍의 영벽정중수기

저정(滁亭)은 강호의 흥취가 적고, 악양루(岳陽樓)는 산림의 정취가 모자라니 하늘이 이와 뿔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는 것이 대개 그러한 것이다. 영벽정(映碧亭)은 산을 등지고 강을 마주하니 강 빛과 산 빛이 함께 비쳐 푸르름을 빚어서 무성한 소나무와 긴 대나무가 넓은 들판에서 푸르름이 피어오르고 맑고 그윽함이 넓고 넓어 산림과 강호의 뛰어난 경관을 겸하였으니 마치 하늘의 교묘한 조화가 사사롭게 이 정자를 후하게 한 것 같아 오히려 기록하도다. 얼굴이 하얀 문사(文士)들이 재주를 시험하고, 청춘의 무사들이 활을 익히니 일찍이 일대의 성대한 교유가 되지 아니함이 없었는데 세월이 흘러감에 의연히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처럼 아득하여 상상하기 어려웠다. 다만 비바람에 깎이고 벌레와 쥐가 침범한 바로 서까래와 처마에서 무너지고 누수 된 곳이 많이 나와 이 정자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우리들의 부끄러움이 아니겠는가? 마침내 개연히 의논을 하여 각 가문에 재물을 모아 수리하고 보수하였다. 기미년 10월부터 다음해 경신년 4월까지 비로소 작업을 마쳤다.

                                                          주기풍의 <영벽정중수기> 중에서

 

영벽정은 인조 10년(1632)에 능주목사 정연이 아전들의 휴식처로 고쳐지었고, 고종 9년(1872)에 불타 버린 것을 고종 10년(1873)에 새로 고쳐지었다. 이후에도 여러 번 보수를 거듭해 오다가 1919년(기미년) 10월부터 1920년(경신년)까지 주민들이 모은 비용으로 손질하여 고쳐지었다.

당시 능주 목사였던 한치조(韓致肇, 1808~?)는 1871년부터 1874년까지 능주 목사를 역임하였는데, 이때에 문화유적 보존에 많은 관심을 두었다고 한다. 고종 9년에 불타버린 영벽정이 새로 고친 것도 그가 능주 목사로 역임했을 때의 일이다. 그는 다시 세워진 영벽정의 모습을 보고 다음과 같은 작품을 남겼다.

 

   
▲ 목사 한치조 작품

영벽정을 읊다/題詠映碧亭

산과 강물색이 붉은 난간 요동치는데/山光水色動朱欄

옛 집 중수하니 후인에게는 영광이지/舊制重新耀後觀

지금의 공사 완성은 시운이 있었으니/今日告成應有數

지난날 화재는 너무나 뜻밖이었다네/向來回祿太無端

공무의 여가에 길손과 함께 즐거이 오르고/公餘携客登臨好

농한기에 병사 조련하여 거동이 넉넉한 터에/農隙調兵進退寬

이 누정이 봉서루와 마주하니/却與鳳棲樓共峙

항주 풍광처럼 사람을 기쁘게 하는구나/杭州眉目使人歡

 

이 누정의 이름인 ‘영벽(映碧)’은 계절에 따라 변화되는 연주산(聯珠山)의 경치를 비추는 지석강물을 바라볼 수 있다하여 지어진 것으로, 지석강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 현재 능주팔경 중 하나이다. 그러한 영벽정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곳을 지나는 옛 시인묵객들의 발길을 잡기에 충분하였는데,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을 비롯하여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의 작품에서도 느낄 수 있다.

 

   
▲ 점필재 김종직의 작품

題詠映碧亭/영벽정을 읊다

                                                        점필재 김종직

연주산 위에 쟁반 같은 둥근 달이니/連珠山上月如盤

풀 나무에 바람 없고 이슬 기운 차구나/草樹無風露氣寒

천 겹의 솜털구름은 다 걷히려 하거니/千陣絮雲渾欲盡

한 무더기 공문서는 볼 필요도 없네야/一堆鈴牒不須看

시절은 다시 멋진 팔월인 걸 알겠는데/年華更覺中秋勝

누가 이 밤 길손의 회포 깊어 감을 알랴/客況誰知此夜寬

가야할 길이 또 서해를 따라 돌아가니/征斾又遵西海轉

손가락으로 둥근 게 배도 쪼개 보리라/指尖將擘蟹臍團

 

   
▲ 일신재 정의림의 작품

                                                   

題詠映碧亭/영벽정을 읊다

                                                                    일신재 정의림

산수는 붉은 비단이라 그리기도 어려운데/紅綾山水畵難形

백성 잘살고 물산 풍부해 편안한 백 리라/民富物豊百里寧

남쪽 고을 좋은 경치 어디에서 볼 것인가/南州勝狀看何處

서석 돌아오는 길에 또 이 누정 있었구나/瑞石歸路又此亭

 

영벽정이 세워진 내력에 관한 전설적인 이야기도 전한다. 옛날 고을에 진 처사가 살았는데, 지금의 이곳에 영벽정을 짓기 위해 높은 산의 거목을 베어 끌어와 집을 지어 상량을 올려놓으면 집이 쓰러지기를 반복하였다고 한다. 진 처사는 실의에 빠져 병으로 눕게 되었는데, 어느 날 꿈에 용암산의 산신이 나타나 계책을 가르쳐주겠다고 하면서, 기둥 하나를 칡뿌리로 세우고 토끼 지장상(支將像)을 그려 정자 터 중앙 주추에 묻으라고 했고, 그가 말하는 대로 우여곡절 끝에 칡뿌리로 기둥을 세우고 지장상을 세우니 그 뒤로는 쓰러지지 않았다는 신비한 이야기이다.

이러한 신비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영벽정은 지석강의 상류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구간을 영벽강으로 불린다. 또한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수영장으로 이용되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 중에 하나이기도 하였다.

현재 영벽정은 여러 번의 중수를 거치면서 2층의 팔작지붕 골기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 67호로 지정되어 있다.

   
▲ 주곤의 영벽정중수기

 

또한 정내에는 신안(新安) 주곤(朱坤)의 <영벽정중수기>, 주기풍의 <영벽정중수기>, 김종직(金宗直)의 <제영영벽정(題詠映碧亭)>, 學圃 梁彭孫의 <제영영벽정(題詠映碧亭)>, 韓致肇의 <제영영벽정(題詠映碧亭)>, 鄭義林의 <제영영벽정(題詠映碧亭)>, 후손 영길(永吉)과 양재국(梁在國) 등의 작품이 새겨진 총 15개의 현판이 걸려있다.

(주)시민의 소리와 (사)호남지방문헌연구소에서는 그 노력의 일환으로 화순군에서 대표하는 5대 누정인 물염정, 영벽정, 임대정, 송석정, 침수정에 걸린 모든 현판을 탈초 및 번역하여 현판완역선집 편찬과 홍보 영상물 제작에 힘쓰고 있다.

지금까지 5회에 거쳐 화순을 대표하는 각 누정들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는 것을 끝으로 연재를 마친다. 참고로 저희 호남지방문헌연구소에서 편찬한 『호남누정기초목록』에 의하면, 화순의 누정은 위의 누정을 포함하여 약 237개의 누정이 존재했으며, 현재에는 약 100여개 만이 현존하고 있다. 향후 몇 십년 후에는 이마저도 기약할 수 없을 것이기에 지속적인 관심만이 해결책이라 할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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