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누정문화의 재조명(2)-임대정
화순 누정문화의 재조명(2)-임대정
  • 서성우 호남지방문헌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16.09.0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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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원림 미학을 간직한 임대정 원림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사평리에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원림의 미학을 간직한 듯인지 국가 문화재 명승 제89호로 지정된 임대정과 그 누정을 감싸고 있는 원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원림에 있는 연못은 정자로 향하는 길옆으로 길게 늘어져 있으며 곧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배롱나무와 어우러진 작은 섬을 품고 있으며, 그 연못과 누정 주변에는 참나무, 단풍나무, 버드나무, 대나무 등이 어우러져 있다.

이 연못 사이의 좁다란 길을 따라 오르면 울창한 나무에 잘 보이지 않았던 평평한 마당과 누정이 기다리고 있다. 도로에 인접해 있어서 접근이 용이하면서도 울창한 나무들이 병풍처럼 사방을 막아주어 마치 어느 깊은 산속에 있는 듯 고요한 느낌을 준다.

▲ 민주현의 원운

임대정은 사애(沙厓) 민주현(閔胄顯, 1808~1882)이 1862년에 관직을 그만두고 고반원(考縏園)의 옛터에 초정(草亭)을 지은 것이 그 시초이며, 그는 여기에서 원림을 조성하여 여생을 지냈다. 그는 1851년(철종2) 에 문과에 급제 한 후 한성부 우윤, 병조참판,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부총관 등을 역임하였으며, 조선 후기 학자인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의 문인이다. 참고로 홍직필은 ‘선죽교기(善竹橋記)’를 지었으며, 여기에는 “핏자국을 의심하는 자들을 책망하며 중국의 사적을 예로 들어 “송경(松京)에 가서 이 다리를 올랐으되 감히 밟지 못하고 돌의 핏자국을 어루만지고 혀로 핥고 싶었다.”는 내용이 있다.앞서 말한대로 임대정 원림의 시초는 1500년대 말에 “동방의 도학을 전수할 인물”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고반(考縏) 남언기(南彦紀)가 조영한 고반원의 터로, 그 때의 터 이름이 수륜대(垂綸臺)이다. 이 때문에 임대정에는 수륜헌라는 편액도 걸려 있는데 임대정의 지나온 역사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사애 민주현이 지은 <임대정기(臨對亭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 임대정기

 

옛적에 고반(考槃) 남언기(南彦紀)선생이 일찍이 여기에 은거하니 하나의 언덕과 하나의 골짜기가 기이함을 나타나지 않음이 없었다. 명승지인 고반원(考槃園)을 기문 가운데에서 이른바 수륜대(垂綸臺)라고 명명한 것은 대체로 비슷해서이다. 뒷날 사람들이 은행대(銀杏臺)라고 전하여 칭한 것은 나무 때문에 이름을 얻은 것이다. 누대 아래는 물이 있어 누대 위에서 낚시 줄을 드리울 수 있으니 그 당시 속세를 떠나 자연을 즐기는 취지를 상상할 수 있다.

사애산인 <임대정기> 중에

당시 그가 속세를 떠나 자연을 즐기는 마음은 마치 장자가 호량(濠梁)위에서 물고기나 노니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며, 복수(濮水)에서 낚시질을 하면서 초왕(楚王)이 부르는데도 응하지 않았던 것과 같을 것이다. 그는 1568년(선조 1) 생원시에 합격한 바 있지만 관직을 버리고 다시는 들어가지 않고 이곳에 초려를 짓고 평생을 자연과 벗하며 살았던 삶이 이를 대변해 준다.

임대정이라는 이름은 중국 북송의 유교 사상가인 주돈이의 작품의 일부인 “終朝臨水對廬山(아침 내내 물가에 임하여 여산을 바라보네)”라는 글귀에서 그 누정의 이름이 연유한다. 사애 민주현은 <임대정기(臨對亭記)>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 수륜헌

마침내 약간의 목재를 모아 한 칸의 초가집을 만들어 완성하였다. 위에서 내리는 비를 막고 옆에서 부는 바람을 통하게 하니 멀리 바라보면 마치 버섯과 같기도 하고 일산과 같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그 위에서 놀면 헌거(軒車) 위에 앉아 있는 것과도 같았다. 비록 규모가 협소하고 대강 만들어 족히 보잘 것은 없으나 시내와 산이 그윽하고 절묘하며 기색이 맑고 상쾌하여 가히 사랑스럽다. 매번 긴 여름 무더위에 산과 시내에 사는 늙은이들이 만나 마음대로 놀다가도 자못 자리를 다투거나 낚시터로 다투려는 뜻이 있기도 하다. 혹은 시를 읊고 바둑을 내기하며 술과 차를 마시면서 정자를 떠나지 않다가, 인간 세상의 심한 무더위와 시끄러운 속세가 있음도 잊을 정도였다. 시냇물이 굽이굽이 흘러서 정자아래 이르러 고여서 적은 못이 되니 맑고 깨끗하여 가히 사랑스럽다. 크고 작은 월봉(月峯)은 곧바로 그 앞에 병풍처럼 둘러 있으니 옛사람이 이른바 “서산이 아침이 되자 상쾌한 기운이 감도네.”라고 하니, 참으로 이것은 눈 안의 경치로다. 마침내 송나라 선비인 주돈이(周敦頤)의 종조임수대여산(終朝臨水對廬山:아침 물가에 임하여 여산을 바라보네)의 구절을 취하여 임대(臨對)로써 이름을 하였으니그 가운데 동정(動靜)과 진리(眞理)는 바로 체험하기는 좋으나, 이 즐거움을 세속의 사람들과 말하기는 어려웠다.

사애산인 <임대정기> 중에

담양에 위치한 소쇄원에 한 건물인 제월당과 광풍각도 당시 사람들이 주돈이의 인품을 황정견이 평하기를 “주돈이의 인품은 매우 고결하고 가슴 속이 맑아서 많은 날의 바람과 비 개인 날의 달(光風霽月)과 같구나” 라고 한데서 유래되었는데, 이는 당시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며 선정을 베풀었던 주돈이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았음을 대변해 주는 대목일 것이다.

이 누정은 고반 남언기가 수륜대를 얻어 정자를 지은 후, 지어진 지 61년이 지나고, 그가 생을 마감한 후에 손자인 민대호(閔大鎬)와 아우인 긍호(肯鎬), 용호(龍鎬) 등이 새로 지었다. 또 그는 멀리 사평천을 굽어보이는 언덕위의 정자에서 임대정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은행나무 그늘에 새로 지은 작은 정자/新築小亭杏樹陰

그 속에 깊은 흥치 더욱 금할 수 없구나/箇中幽興倍難禁

시 읊는 친구들은 술병 들고 찾아오고/論襟時有遠朋到

늙은 농부들 때때로 자리를 다투네/爭席時看野老尋

여름에는 나무 끝에 맑은 바람 일고/夏坐淸風生木未

가을 되니 밝은 달 연못 속에 잠기네/秋來皓月在潭心

청산 마주하고 물가에 머문 무궁한 정취/對山臨水無窮趣

정자에 높이 앉아 무릎 껴안고 시 읊조리네/木妨軒頭抱膝吟

沙崖 閔胄顯의 <原韻>

여기에는 운인(雲人) 송홍(宋鴻, 1872~1949)의 작품도 걸려있다. 그는 광주학생동립운동에 앞장 서서 일명 ‘광주학생동립운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로, 문집으로는 <운인유고(雲人遺稿)>가 남아 있다. 그가 남긴 작품을 소개한다.

 

옛 정자 아주 깊어 나무그늘 많으니/古亭幽絶樹多陰

유풍은 여전하여 상쾌함 금할 수 없구나/遺韻依依爽不禁

시간을 기다려 분사에 모이기 어려우니/待漏難兼枌社集

수레 타고 뉘와 함께 낚시터를 찾으랴/乘軒孰與釣磯尋

봉우리 형세를 보면 뭇 용이 일어났다 엎드리고/群龍起伏看峰勢

거울 하나 맑게 물 가운데를 비추는구나/一鏡淸虛證水心

임대로 이름한 그 의미 있을 텐데/臨對命名知有意

천봉산에 지팡이 던지고 오래 읊조린다네/天鳳放杖久沈吟

                                                                                          庚午夏 雲人 宋鴻의 <謹次>

작품에서 나오는 분사(枌社)는 분유사(枌楡社)의 약칭으로, 원래는 한고조 유방의 고향인데, 여기에서는 일반적인 고향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천봉산은 보성군, 화순군, 순천시의 경계를 이룬 산으로, 임대정은 그 산자락에 해당된다. 운인 송홍도 이곳저곳을 유람하다가 자연에 이끌려 이곳에까지 왔던 듯하다.

 

▲ 운인 송홍의 차운시

여기에는 사애 민주현의 <원운>을 비롯한 윤집(潤集) 이기호(李基琥)와 여산(礪山) 송치만(宋致萬), 오천(鳥川) 정공원(鄭公源), 후손인 민긍호, 민용호, 민응호의 차운시와 민주현의 <임대정기>, 효당 김문옥(金文鈺)의 <임대정중건기(臨對亭重建記)>, 후손인 민용호의 <임대정중건상량문(臨對亭重建上樑文)>, 단암(丹岩) 민진원(閔鎭遠)의 8세손인 단운(丹雲) 민병승(閔丙承)의 <임대정중수기(臨對亭重修記)>와 주련 등 총 32개의 현판이 걸려있다. 현재 임대정의 현판들은 대부분 아직까지 글자 식별이 어느정도 가능하지만, 다른 누정에 비해 훼손된 부분이 많다. 이러한 시점에 더욱더 원판 보존에 노력을 쏟아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임대정원림은 아기자기한 볼거리들이 있어 여유를 찾는 이들에게 잠시나마 휴식의 장소가 되어줄 것이다.

(주)시민의소리와 (사)호남지방문헌연구소에서는 그 노력의 일환으로 화순군에서 대표하는 5대 누정인 물염정, 영벽정, 임대정, 송석정, 침수정에 걸린 모든 현판을 탈초 및 번역하여 현판완역선집 편찬과 홍보 영상물 제작에 힘쓰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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