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얼굴을 한 사람들
천 개의 얼굴을 한 사람들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6.09.0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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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보면 새 인물이 등장할 때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얼굴의 모습을 들어 그 인물의 성격을 설명한다. 유비의 삼고초려 끝에 처음 제갈량이 유비를 만났을 때 그의 책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유비의 얼굴 생김새를 보고 나서였다.

‘제갈량은 유비의 관상을 보고 그가 지도자라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제갈량이 보니 유비에게는 영웅의 뜻과 기개와 혼까지 지니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어떤 인물을 인상만 보고 평하고 단정짓는 것을 보니 인물묘사 부분에선 작가가 출중한 관상가처럼 느껴진다. 어떤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얼굴의 생김새로 미루어 다 알아볼 수가 있는 듯한 이런 서술 방법이 나에게는 무척 흥미롭다.

하기는 걱정이나 분노, 기쁨, 슬픔 등의 감정은 얼굴을 보고 금방 포착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사람의 타고난 성품을 얼굴만 보고 단정적으로 말하기에는 사람은 너무나 복잡한 심리를 갖고 있다. 얼굴이 말해주는 것은 그때그때의 희로애락의 반응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 사람의 성격을 구성하는 단서로 보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도 든다.

‘열질 물속은 알아도 한 질 사람 속은 모른다.’는 것처럼 사람에게는 너무나 많고 복잡한 것들이 마음속에 내재해 있다는 이야기다. 어떤 소설이든 대부분 얼굴의 생김새를 묘사하면서 삼국지처럼 그 인물의 캐릭터를 암시하려고 한다.

얼굴은 두 개의 얼굴이 있다고들 한다. 타고난 얼굴과 만들어진 얼굴. 보통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들을 한다. 인생을 진실되게 살아온 사람은 그 얼굴에 진실됨이 드러난다는 말이다. 청춘 남녀가 선을 볼 때도 상대의 얼굴에서 그 사람됨의 어떤 단서를 찾으려 든다. 얼굴은 그 사람의 속내를 비추는 거울쯤으로 간주된다.

실제 얼굴 생김새와 그 사람의 성품과 어느 정도로 상관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개 사람들은 얼굴을 보고 대충 그 사람의 됨됨이를 측량한다. 그래서 취업준비생이나 청춘남녀들에게 선을 보기 전에 얼굴을 성형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는지도 모른다. 모 대기업에서는 기업 총수가 신입사원을 뽑는 면접장에 옆에 둔 관상가를 두고 그의 견해를 참조했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진다.

가슴이나 팔 다리의 피부를 보고 그 사람됨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다. 얼굴에 스쳐가는 표정을 보고서 순간순간 그 사람의 심리상태를 측량하면서 대화를 이어간다. 어떤 말을 했을 때 상대의 얼굴에 스쳐가는 순간의 미묘한 표정의 변화를 보면서 상대의 속내를 짐작하고 대화를 조절해간다. 표정이라는 말에는 얼굴(表)에 그 사람의 마음(情)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즉, 얼굴을 그 사람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정말 얼굴에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다 드러나 있을까. “내 얼굴을 봐요. 내가 그럴 사람인가.” 얼굴에 다 쓰여 있다는 듯이 자기를 변호할 때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저 사람은 얼굴이 뻔뻔해.” 염치체면 불구하고 자기 잇속만을 챙기는 얄미운 사람을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정녕 얼굴에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다 드러나 있는 것일까. 만일 타고난 얼굴에 그 사람의 됨됨이가 모두 담겨 있다면 그 사람됨은 태어나기 전부터 예정되어 있다는 말이나 진배없다. 관상가들이 하는 말이 이런 것이 아닌가. 그러나 얼굴은 그 사람이 살아온 이력의 집합이라는 쪽이 더 신뢰가 간다. 선한 생각과 행동으로 일생을 살아온 사람의 얼굴은 어딘가 선량한 모습이 비친다.

어쨌든 사람 속은 알 수 없으므로 얼굴 모습이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을 보고 사람과의 소통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우리 인간이 가진 한계로 생각된다. 어떤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사람은 그렇게 안 생겼는데 아마 피치 못할 일이 있었을 거야.” 행동보다 얼굴을 더 신뢰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 신문에 각종 스캔들에 연루된 고위 관료들의 얼굴이 자주 나온다. 배울 만큼 배우고, 먹고 사는데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 무엇이 더 필요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얼굴들만 봐서는 ‘뻔뻔하다’거나 ‘그럴 사람이 아니다’ 같은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1퍼센트에 든다고 할 사람들이 권력, 부를 탐하는 과정에서 부정과 비리에 연루되는 것을 보면 씁쓸하다.

어찌된 셈인지 그런 사람들의 얼굴은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럴 사람 같다든지, 그럴 사람 같지 않다든지. 본 얼굴을 감추고 수시로 자기를 감추는 가면을 써서 상대로 하여금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모르게 하는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얼굴에서 그 사람의 얼굴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진짜 얼굴은 어떤 얼굴일까. 마치 연기를 하는 배우 같아서 도무지 짐작할 수 없다. 얼굴을 보고 상대의 선량을 짚어보려는 우리는 한참 어리석고 못난 사람들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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