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멋을 찾아서(16) 의재 허백련과 손자이자 제자인 직헌 허달재
남도의 멋을 찾아서(16) 의재 허백련과 손자이자 제자인 직헌 허달재
  • 박창배 기자
  • 승인 2016.08.25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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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것에 있다”
▲ 의재미술관 전경

한국언론진흥재단 광주지사에서 실시한 '예향, 광주 전남 근현대 미술여행'이라는 주제의 현장연수를 통해 의재미술관을 다녀왔다.

광주에 사는 사람이라면 특히나 국립공원 무등산을 탐방한 관광객들이라면 의재미술관을 지나쳤을 법하다. 미술관이라지만 길옆에 있는둥 마는둥 자리잡고 있는 건물로만 알았지 직접 방문할 생각이 쉽게 나지 않았던 곳이다.

이 곳을 방문하고 나서야 살아생전 의재 허백련 화백의 사상이 곁들여 완성된 건물이라는 것을 알고 다시한번 되돌아보게 됐다.

자연과 호흡하는 의재미술관

의재미술관은 밖에서 보면 유리공간 위에 얹혀있는 단순한 형태의 블록상자처럼 보이지만 건물 내부로 들어가 보면 무등산 경치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고 전시공간을 누비는 통로가 꼭 산책로를 걷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의재미술관은 노출콘크리트와 목재, 유리로 마감한 현대식 건물이다. 건축가 조성룡과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종규 교수가 공동으로 설계하고, 삼능건설이 건축한 조형물이다. 

의재선생의 작품과 무등산의 조화를 건축물에 담아냈다는 점 때문에 2001년 10월 19일 광주에서는 유일하게 '한국건축문화대상'을 수상한 건물이 됐다. 그런 의미에서 의재미술관은 그 자체가 자연과 호흡하는 건축작품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현재 의재미술관은 9월 2일부터 11월 6일까지 66일간 열리는 2016 광주비엔날레 개막을 앞두고 작품전시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이번 비엔날레는 ‘제8기후대(예술은 무엇을 하는가?)’를 주제로 국내외 37개국 120명의 작가와 팀이 참여하는데 전시 공간이 외부로 확장되면서 광주시내 곳곳이 현대미술의 장으로 연출된다. 이번 행사는 광주비엔날레전시관을 중심으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의재미술관, 무등현대미술관, 우제길미술관,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등 기존 5곳에서 두암 2동 누리봄 커뮤니티센터 등 추가로 3곳이 더 늘어 외부 전시장으로 활용된다.

의재미술관에서는 스톡홀롬에서 미술 및 공예, 디자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구닐라 클링버그의 작품 ‘고요함이 쌓이면 움직임이 생긴다’가 전시된다. 의재 허백련 화백이 활동했던 춘설헌에서 직접 숙박을 하면서 지난 3월에 무등산을 답사하고 한국의 풍수지리와 풍경을 몸소 체험하는 열의를 보인 그의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다.

▲ 의재 허백련의 손자이자 제자인 직헌 허달재

남종화의 신(新)남종화

의재 허백련 화백을 이야기할 때면 남종화와 북종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된다.

명나라 때 화가 동기창(董其昌)의 문집에서부터 두 가지 흐름으로 구분하게 됐다고 한다. 각각 남화ㆍ북화라고도 하는데 남종화는 문인화라고도 불리우며 작가의 교양과 정신을 중시하는 경향을 띠며, 추상성이 강하다. 반면, 북종화는 품격 높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먼저 기술적인 연습과 수련을 거쳐야 한다는 생각을 중시하는 경향을 띠며, 사실성이 강하다. 남종화는 수묵 위주로, 북종화는 채색 위주로 발전했다.

즉, 남종화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수묵위주의 문인화적 화풍인 반면 북종화는 눈에 보이는 사실을 존중하고 채색을 위주로 한 전문화가의 화풍이다.

의재미술관 큐레이터는 두 부류의 사상적인 기반을 당나라때 선불교의 영향을 받아 구분되는 것으로 봤다. 북파는 수행방법으로 점수(漸修)적 수행방법을 찾다보니 점차 단계를 밟아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선택하게 된 것이고, 남파는 돈오(頓悟)적 수행방법으로 한꺼번에 깨닫는다는 사상에서 그 기반을 찾을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실제로 작품을 비교하다보니 그 차이를 약간 알 수 있을 듯 했다.

의재(毅齋) 허백련(1896~1977) 화백은 남종화의 대가로 잘 알려져 있다.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 소치(小癡) 허련(1808~1893), 미산(米山) 허형(1862~1938)으로 이어지는 남종화의 맥을 계승하고 최후의 꽃을 피운 그가 1977년 작고함에 따라 남종화의 맥이 끊겼다고 한다.

그러나 의재 허백련의 손자이자 제자인 직헌(直軒) 허달재 화백이 가업을 전수하여 소치 허련(1808~1893)과 그의 손자인 남농(南農) 허건(1907~1987), 그리고 한 집안인 허백련으로 이어지는 허씨 가문의 남종화 맥을 잇고 있다.

허달재의 화경(畵境)은 할아버지의 화풍에 강하게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1980~1990년대 초 작업한 산수나 사군자에서는 허백련의 영향을 피하기 힘들다.

이후 1990년대 중반부터는 자신만의 새로운 시도로 대상의 단순화로 구름만으로 하늘을, 먹과 물감이 흘러내리는 추상 배경에 새와 달, 오리나 인간 형태를 등장시킨다. 이런 그림은 국내보다 뉴욕, 파리 등 국외전시에서 주목됐다.

평소 의재 허백련 선생이 즐겨 하던 ‘몸도 건강해야 하지만 정신도 건강해야 하는데 느낀 바를 그대로 표현하려면 정신이 건강해야 한다’는 말은 남종화의 사상을 말해 준다. 보이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데에는 사진이라는 기계가 대신할 수 있지만 느낀 것,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정신세계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아파트가 도시에 들어서고 산업화의 물결로 미술계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동양화 작가보다는 서양화 작가의 작품을 더 선호하게 된 것이다. 동양화의 정적인 분위기보다 도시화에 서양의 유화작품이 더 적합하다는 시대 풍조에 기인한 것이다.

허달재 화백은 90년대 후반 외국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온 후 옛 선인들이 말씀하신 ‘눈에 보이는 것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느낌이 바뀐 것이다’라는 말을 새겨 그 느낌의 변화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다.

그래서 옛선인들이 그렸던 사군자도 새롭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했고 붓의 필력을 키우는데 집중했다. 옛날의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도 꽃을 피울때는 꽃을 피고 푸르름은 한결 같은데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한국화에도 아파트를 그리고 자동차도 그리게 됐다.

이러한 노력 끝에 허달재 화백의 그림을 보고 ‘신(新)남종화’라는 평가를 내리는 미술평론가도 있다.

남도의 멋은 자연 그대로를 표현하는 것

허달재 화백에게 남도의 멋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그는 아주 담백하게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에 있다”고 말해 주었다. 남도는 원래 풍요롭고 여유로우며 넉넉한 곳이라 성품이 소박하여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겸손하며 검소하게 살았기 때문에 꾸밈없이 자연 그대로를 표현한 것이 남도의 멋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의재미술관에 왔다가 한 깨달음을 얻고 가는 것 같다. 미술사나 미술학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지만 수많은 작품을 남긴 화가들이나 현재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다시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 의재 허백련 화백이 사용한 화구, 벼루가 구멍이 날 정도로 사용할만큼 검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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