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기록문화유산(31) 곡성 지방지
호남기록문화유산(31) 곡성 지방지
  • 김현희 호남지방문헌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16.08.25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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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기록문화유산 중 지방지는 지역에 대한 정보를 가장 세밀하게 담고 있는 것으로, 지방지에 대한 관심이 지역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호남지방문헌연구소에서는 지방지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식하여 지방지 관련 전시회를 개최하였고, 호남기록문화유산 홈페이지에 호남지방지 기초DB를 구축하고 있으며, 1,200여 종의 호남지방 지방지에 대한 기초정보와 간명해제를 담은 '호남지방지 기초목록'(전남대학교 출판부, 2014)을 출간하기도 했다.

호남지방문헌연구소에서는 그간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호남의 지방지를 소개하는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본 호에서는 곡성권 지방지에 대한 소개를 하고자 한다.

현재의 곡성은 조선시대 곡성현과 옥과현이 합쳐진 것이다. 전라남도의 북동부에 위치한 군으로 현재 1개 읍(곡성읍)과 10개의 면을 관할하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본래 백제 욕내군(欲乃郡)이었는데, 757년 경덕왕이 욕내군을 곡성군으로 이름을 고쳤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옥과현(玉果縣), 곡성군(谷城郡)이었으며, 고려시대에는 옥과현(玉果縣), 곡성군(谷城郡)으로 별호는 욕천(浴川)이다.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의 건국에 큰 공을 세운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이 목사동면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옥과현(玉果縣), 곡성현(谷城縣)으로 1592년 임진왜란 때 유팽로(柳彭老)가 고경명(高敬命)의 부장으로서 금산전투에 참가했다가 전사했다.

대한제국때는 옥과현(玉果縣), 곡성군(谷城郡)이었으며, 1905년 신정백(申正柏)이 이끄는 의병군이 남양전투에서 큰 전공이 있었고, 1919년 3월 24일 곡성의 장날에 신태윤(申泰允)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45년에 곡성군(谷城郡)이 되었으며 1979년 곡성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여지도서 곡성(輿地圖書 谷城)

1765년 곡성현에서 간행한 책으로, ‘여지도서’의 편제는 다른 지역과 비슷하다. 풍속항목에는 “땅은 좁은데 인구는 많고 생업이 없다.”라고 하였다. 관액 항목에는 마륜대(馬輪臺)에 대한 설명을 하였고, 사찰 항목에는 태안사, 도림사, 향일암 등 8곳이 소개되어 있다.

곡성읍지(谷城邑誌)

1793년 곡성군에서 간행한 것으로 필사본 1책이다. 정조대에 만들어져 경제와 군사 관련 항목과 선생안, 인물항목이 매우 자세한 점이 특징이다. ‘동국여지승람’이나 ‘여지도서’에 없는 장시(場市) 항목이 추가되어 있다. 성지(城池) 항목은 있지만 내용이 ‘무(無)’로 되어 있어 이 읍지가 지방에서 스스로 편찬된 것이 아닌 중앙의 상송령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곡성읍지(谷城邑誌)

1871년에 작성된 필사본 1책으로 ‘호남읍지’3책에 수록되어 있다. 기준 연도가 분명하여 다른 읍지와 비교를 통해 변화양상을 살펴보기에 적합하다. 맨 앞쪽에는 곡성현의 지도가 삽입되어 있다. 지도에는 서원이 훼철된 사실이 적혀 있어 읍지 제작과 동일한 시기에 새로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곡성읍지(谷城邑誌)

1883년에 곡성군에서 간행한 필사본 1책으로 1871년의 ‘곡성읍지’와 내용이 거의 비슷하나, 앞의 읍지에 없는 방리(坊里)과 관적(官蹟)이 추가되었다. 보통 선생안(先生案)이라 불리는 것이 관적이란 명칭으로 기재되어 있다. 1792년 이후의 선생안을 살펴볼 수 있다.

곡성군읍지(谷城郡邑誌)

1899년에 간행한 것으로 1895년 고을의 명칭을 군으로 통일시킨 행정관제의 변화로 명칭이 군으로 변화되었다. 호구수도 1872년보다 줄었고 관직항목에 관원의 명칭과 인원이 적혀있는 것이 기존 읍지와 다른 점이다. 이전 읍지 지도에 적혀 있던 문성공원당(文成公院堂)과 덕양사(德陽祠)의 훼철 사실이 삭제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 곡성군지

곡성군지(谷城郡誌)

서문은 1917년 여규형(呂圭亨)․장지연(張志淵)이 썼고, 발문은 정봉태(丁鳳泰)가 작성하였다. 여규형의 서문에는 1894년 해배되어 돌아갈 때 곡성군을 지나게 되었는데, 산천의 수려함을 보고 현인군자가 은둔해 있을 것임을 예상했었다. 곡성군의 명사(名士)인 정봉태 군과 편지로 교유를 맺고 그가 아버지 율헌공 정일우(丁日宇)의 가르침을 받들고 선조인 정정호(丁正昊)의 유지를 받들어 ‘곡성군지’를 편찬함을 보고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또한 이 군지는 ‘속수여지승람’ 편찬에 고증자료가 되었으며, 곡성군 전도도 포함되어 있다.

▲ 욕천속지

욕천속지(浴川續誌)

1923년 3권 3책의 목활자본으로 간행한 곡성군의 지방지이다. 1768년에 간행되었던 ‘욕천지(浴川誌)’를 1923년 오치기(吳致基), 유인영(柳寅永) 등이 수정, 증보하여 만든 것이다. 1권은 강역(疆域)․군명․형승․교량․토지․호구․성씨․학교․분야․풍속․시장․사찰․누정․인물․효열․시 등이다. 2권은 축문․묘갈명․누정기․상소 등 욕천에 해당되는 글들을 기록하고 있으며 3권은 묘표를 모아 놓았다.

여지도서: 옥과(輿地圖書: 玉果)

1765년 옥과현에서 간행한 것으로, 인물 항목에 조통(趙通)과 유팽로(柳彭老), 신이강(辛二剛)을 설명하고 있다. 유팽로는 고경명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젊은 나이에 전사하였고, 그의 부인도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결하려다 목숨을 건지게 된다. 하지만 2년 후에 죽었으며 정려문을 세웠다는 내용이 있다.

옥과현지(玉果縣誌)

1791년 이후 옥과현에서 작성한 것이다. 정조 때 작성된 ‘해남읍지’에 함께 들어있는 읍지이다. 누가 필사했는지 자세하지는 않지만 필체가 바르며 한사람이 전체를 필사했음을 알 수 있다. 항목들 사이에 학교조․제언․누정․사찰․고적․인물․제영 등 신증(新增)된 사항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사실로 그전 ‘옥과현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지방의 읍지와 비슷한 체제로 구성되어 편집되었으나, 인물에 대한 항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옥과현지(玉果縣誌)

1871년 옥과현에서 간행한 것으로 1871년에 편찬된 ‘호남읍지’ 2책에 실려있는 옥과현 읍지이다. 구성은 1759년에 편찬된 ‘여지도서’의 옥과현 읍지와 거의 동일하지만 단묘(壇廟)항목에 영귀서원(詠歸書院) 마지막 부분과 완석(莞席), 사찰 항목의 금선암(金仙庵)에 금폐(今廢)라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영귀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훼철된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전결(田結), 대동(大同), 균세(均稅) 항목도 ‘여지도서’와 수치상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옥과현지(玉果縣誌)

1895년에 편찬된 ‘호남읍지’ 2책에 수록되어 있는 옥과현 읍지이다. 현재 남아있는 옥과현 읍지 중 가장 분량이 많다. 그 중 관아의 재정상황을 기록한 읍사례가 대부분이고, 읍에 대한 설명은 14쪽 분량으로 실제 읍지에 대한 기록은 매우 적다. 내용 또한 이전에 편찬된 읍지를 요약한 정도이다. 다만 옥과현 읍지 중 읍사례가 붙어 있는 읍지로 현의 구체적인 운영을 알 수 있다.

욕천시고(浴川詩稿)

1962년에 욕천시사(浴川詩社)에서 석인본 1책으로 간행된 것이다. 1955년 곡성에서 결성된 욕천시사를 통해 이루어진 시화 모임에서 수창된 시들을 수집하여 만든 시고이다. 욕천시사창수록서(浴川詩社唱酬錄序)는 조민식(趙敏植), 욕천시고서(浴川詩稿序)는 유근필(柳根弼)이 썼으며, 발문은 이교창(李敎瑒), 설병학(偰秉鶴)이 작성하였다. 구성은 마륜대도중회음(馬輪臺道中會吟), 오남회음(梧南會吟), 목동연담회음(牧洞蓮潭會吟), 송정회음(松亭會吟), 순강회음(鶉江會吟) 등 총 10회의 시회 때 수창되었던 시들을 각 회의 이름에 따라 모아 기재해 놓았다.

조선환여승람 곡성군(朝鮮寰輿勝覽 谷城郡)

1938년 이병연(李秉延)이 간행한 것으로 서문, 본문, 발문 순으로 되어 있으며, 편제는 지리부와 인물부 순이다. 연혁․신구속현․신구군명․산천․도서․토산․명소․사찰․고적․교궁․학교․부조묘․수비(竪碑)․정려․석총(碩塚)․누정․제영․학행․유행․원종훈․공신․명신․문장․절의․효자․열부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발문은 이병연이 작성하였고, 지리와 역사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간행했음을 밝혀 놓았다.

▲ 용산단지

용산단지(龍山壇誌)

신숭겸 장군의 유적지인 곡성 구룡리의 용산재(龍山齋)와 구룡문(九龍門)을 1960년에 세우면서 1961년 덕양서원(德陽書院) 용산단(龍山壇)등에 관련한 내용을 담은 책을 1책 연활자본으로 간행한 것이다. 평산신씨 후손들의 결의로 만들어진 것으로 신숭겸 장군의 유허지의 역사와 사적에 관련한 내용, 유사․사적․유묵․문헌․제영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부록으로 사간공파(思簡公派) 세보, 임원, 방명록 등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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