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
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
  • 김병욱 충남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 승인 2016.08.2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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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욱 충남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이 세상에서 아내를 가장 사랑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음악의 신 오르페우스를 꼽겠다. 오르페우스는 가수이며 뛰어난 리라의 연주자였다. 그는 강의 신이며 트라케의 왕인 오이아그로스와 무사이 여신 칼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났다. 음악의 신인 아폴론은 오르페우스에게 리라를 선물로 주었다.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뜯으며 어머니에게 배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면 하늘의 새, 물 속의 물고기, 숲 속의 모든 동물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나무들과 바위들마저도 귀를 기울였다. 그의 아내는 물의 요정인 에우뤼디케었다. 이 부부는 아주 다정하게 서로를 사랑했다. 그러나 에우뤼디케는 요정 친구들과 함께 풀밭을 거닐다가 그만 독사에게 물려 죽게 되었다. 오르페우스도 요정들과 함께 비통한 마음을 리라의 선율에 맞추어 노래했다. 그러나 그는 비통의 노래를 부르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하계로 내려가 죽음의 세계를 다스리는 왕과 여왕에게 호소하여 지상세계로 사랑하는 아내를 데려오겠다고 결심한다.

오르페우스는 어쩌면 죽음의 세계에 붙잡혀 영영 지상계로 돌아오지 못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명계를 향하여 떠난다. 그는 타이나론에 있는 저승문을 지나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 드디어 그는 창백한 모습의 왕과 그의 엄격한 아내가 있는 옥좌로 나아갔다. 그리고 리라를 켜며 죽은 아내 에우뤼디케를 돌려달라고 애절하게 노래했다. 아내를 위한 정성어린 노래에 하계의 왕과 왕비도 감동하여 에우뤼디케를 데려가라고 허락했다. 하계의 여왕 페르세포네는 에우뤼디케의 망령을 불러내어 “자 데려가거라. 그러나 하계의 문을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는 너의 아내를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아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두 사람은 어두운 명계를 벗어나고자 계속 걸었다. 그때 오르페우스는 사랑하는 아내가 너무나 보고 싶어 그만 흘깃 뒤돌아보고 말았다. 그러자 불쌍하게도 에우뤼디케는 애정어린 눈으로 슬프게 그를 바라보며 어둠의 심연으로 빠져 들어갔다. 오르페우스는 죽을 힘을 다 내어 아내를 잡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르페우스는 다시 하계로 가서 사정을 해 보려 했으나 죽음의 강의 뱃사공 카론이 강을 건너 주지 않았다. 그리고 하계의 문도 열어 주지 않았다. 살아있는 인간이 죽음의 문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 죽음의 세계의 질서가 깨지기 때문에서다. 그래서 오르페우스는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강가에서 머물면서 탄식과 슬픈 가락의 리라를 켜면서 쓸쓸하게 살았다.

일설에는 디오뉘소스의 축제를 즐기던 트라케의 여자들이 몰려와 모든 여자들을 거부하고 죽은 아내만을 생각하는 오르페우스를 질투하여 돌멩이를 던져 죽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지독한 애처가인 오르페우스는 이처럼 질투의 화신이 된 트라케의 미친 여자들에게 테러를 당해 죽었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우리는 이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 속에 오늘을 살아가는 교훈을 배우게 된다. 분명히 삶과 죽음의 세계는 경계가 뚜렷해야 하지만 정말 너무나 아까운 사람이 일찍 죽는 것을 보면 죽음의 세계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악독한 짓을 허용하는 것을 보면 인간계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결국 오르페우스는 죽어서야 다시 에우뤼디케를 만날 수 있었다.

남과 북을 생각할 때면 이 오르페우스 이야기가 떠오른다. 남북을 가로막고 있는 국경 아닌 국경으로 존재한 휴전선은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강인가. 오르페우스의 넋을 빼놓는 망령들의 소리처럼 우리의 현실도 온갖 망령들이 날뛰고 있다. 우리는 오르페우스를 노래와 리라의 명수로만 기억하지만 아내를 찾으러 명계로 과감하게 길을 떠나는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런 뜻에서 2000년 6월 14일 평양으로 길을 떠났던 김대중 대통령에게도 오르페우스의 결단이 엿보인다. 그런데 에우뤼디케를 다시 명계에 놓고 온 오르페우스처럼 통일의 의지가 허망하게도 좌절된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참담할 뿐이다. 우리 시대의 오르페우스는 어디에 있으며 언제쯤 우리 곁에 나타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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