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만난 호치민(8)
베트남에서 만난 호치민(8)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6.08.22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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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1965년 이후 미국 존슨 대통령은 남베트남에 더 많은 군대를 파견했다. 미군은 1964년 23,300명에서 1965년 18만4천명, 1966년 38만 5천명으로 늘어났다. 한국도 1965년 20,620명, 1966년 25,570명을 파견했다.

호치민시 전쟁박물관에 있는 자료

그러나 초강대국인 미국은 북베트남을 쉽게 이기지 못했다. 미군은 베트콩의 은폐 · 잠복 · 기습공격에 시달렸다.

1966년 7월17일에 호치민은 전국의 동지, 전사 여러분에게 고하는 라디오 연설을 했다. 이 연설에서 그는 ‘독립과 자유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러면 호치민의 연설을 자세히 살펴보자.

잔혹한 미제국주의자들이 우리나라를 정복하려는 야욕에 공세를 펼치고 있지만, 그들은 통렬한 패배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30만 명에 육박하는 원정군을 우리 조국 남부에 투입했습니다.

그리고 공세의 방편으로 괴뢰정부와 괴뢰군을 내세웁니다.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남쪽 동지들을 진압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민족해방전선의 단호하고 숙련된 지도아래 남베트남 군대와 인민들은 하나가 되어 용맹스럽게 싸워 위대한 승리를 일궈냈으며, 앞으로도 남부해방과 북부 수호, 민족통일을 달성할 때 까지 단호하게 투쟁할 것입니다.

(중략)

최근 들어 미국 침략자들은 격앙된 모습을 보이며 하노이와 하이퐁 부근을 공습하는 등 교전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야말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야수가 죽기 전에 고통스러워하는 필사적인 몸부림입니다.

존슨과 그 무리들은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은 50만 명, 100만 명, 아니 그보다 더 많은 병력을 끌고 남베트남으로 들어와 공세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수천대의 항공기를 끌고 와 북베트남을 무차별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용감한 베트남 민족의 무쇠 같은 의지를 깨뜨릴 수 없으며, 민족을 구하기 위해 미국에  대항해 싸우겠다는 결심을 꺾을 수 없습니다.  (중략)

전쟁은 5년, 10년, 20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랫동안 지속될지도 모릅니다. 하노이와 하이퐁 그 밖의 여러 도시와 사업체가 파괴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베트남인들은 결코 기죽지 않습니다. 독립과 자유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중략)

우리 민족과 군대는 고난과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완전히 승리할 때까지 결연히 싸울 것입니다. 훨씬 열악한 과거에도 일본 파시스트와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을 물리쳤습니다.

지금은 국내외 상황이 더욱 우호적인 만큼, 미국 침략에 반대하며 조국을 구하려는 우리 민족의 투쟁은 승리하리라 확신합니다. (중략)

베트남 민족은 반드시 승리합니다!

미국 침략 세력은 반드시 패배합니다!

평화롭고 풍요로운 민주통일독립 베트남이여, 영원하라!

전국의 동포 여러분, 그리고 전사여러분, 씩씩하게 전진합시다!

(호치민 지음·배기현 옮김, 호치민 식민주의를 타도하라, p 289-292)

이런 호치민의 결의에 호응하듯, 1968년 1월31일 북베트남군과 인민해방군(미국은 ‘베트콩’이라 비하함)은 테트(음력설)에 휴전하는 관례를 깨고 대규모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남베트남의 36개 지방 중심도시와 5개 주요도시를 일시에 공격했다.

미국은 크게 당황했다. 사이공 소재 미국 대사관, 대통령궁, 방송국 등이 피격되었고, 특히 중부의 후에 시의 전투는 한 달 이상 계속되었다.

전투는 미군이 이겼다. 북베트남 군인과 베트콩은 3만7천명이 전사했고 미군 전사자는 2,500여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미국은 정치적으로 완패했다. 미국의 여론이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CBS 뉴스 진행자 크론카이트는 ‘미국은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갈 곳이 없다’고 비관론을 폈다.

2월9일자 <타임>도 이렇게 썼다.

“놀라운 일이었다. 감쪽같이 사라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던 적군이 홀연히 나타나 전국적으로 수백 군데에서 동시 다발적인 공격을 가했다.” (마이클 매클리어 지음 · 유경찬 옮김, 베트남 : 10,000일의 전쟁, P 363)

확실히 테트 공세는 미국 TV와 언론의 베트남 보도에 대한 전기(轉機)가 되었다. 베트남에서 발을 빼야 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마침내 1968년 3월31일에 존슨 대통령은 재선 출마를 포기하고 말았다.

호치민 시 전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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