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지의 비극
공유지의 비극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6.08.18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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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호수가 있다. 호수 둘레에 있는 마을 사람들이 매일 먹을거리로 호수의 물고기를 잡는다. 마구 잡다 보니 언젠가는 호수의 물고기는 씨가 마르고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물고기를 잡지 못한다. 이것이 이른바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제각각 오직 자기 잇속만 생각하고 호수라고 하는 한정된 공간 속의 물고기나 이웃에 대한 배려는 생각하지 않다 보니 물고기가 사라지고 만 것이다. 이해당사자가 모여 일정한 합의를 통해 물고기잡이를 제한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비극을 피할 수 있다.

호수를 국가로 비유해도 적절할 것 같다.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오직 제 이익만을 찾는다면 그 공동체가 물고기가 사라진 호수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우리 공동체는 호수의 물고기를 눈앞의 잇속만 채우며 잡는 사람들 때문에 나라가 흔들리는 것 같다.

공유지의 비극을 막으려면 한정된 자원에 대해서는 공동체의 관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정부의 관여를 놓고 너무나 여론이 엇갈려 있다. 정부가 정책을 내놓거나 큰 사건이 터지면 사람들은 금세 편이 갈라져 갑론을박의 상태로 혼란스러워진다.

대체로 그래온 것이 사실이다. 자기와 집단의 이해가 걸려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사생결단으로 대든다. 매사에 자기 이익만을 우선시한다면 이 나라는 장차 어떻게 될지 걱정스럽다.

폭염을 피할 겸 에어컨을 빵빵 틀어놓은 가까운 가게에 가서 내 또래의 주인과 담소를 나눌 때가 있다. 내가 먼저 말한다. ‘오늘은 나라 잘되는 긍정적인 말을 나눕시다.’ 그러고는 이야기를 마칠 즈음에는 가정의 전기 누진제 때문에 에어컨을 켜려면 가슴이 벌떡거리고, 사드는 미국의 깍두기 역할에 동참하는 것이고, 아파트 분양권 거래 허용은 미친 짓이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정부 비판을 하다가 돌아온다.

외국에서는 한국이 강소국이라며 칭찬을 해쌓는데 왜 우리는 자학에 가까운 비판만 하고 있을까. 우선 나부터 말이다. 긍정의 힘이 건강에도 좋고, 좋은 미래를 가져온다는 말을 믿고 최대한 이 나라의 좋은 점을 찾아보려 노력한다. 한반도 지도를 펴놓고 국제정세를 들여다본다. 우리나라는 지금 삼각파도를 맞고 있다. 사드 문제로 중국은 으름장을 놓고 있고, 미국은 한미동맹 차원에서 사드설치를 채근하는 모양새다.

두 코끼리 사이에 끼어 우리는 이도저도 못하고 있다. 흡사 구한말의 풍경을 보는 느낌이다. 게다가 세계 경제는 보호무역 물결이 일어 외국에 수출해야만 먹고 사는 우리나라로서는 아주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리고 있다. 뭐 한 가지 잘 되는 점을 찾을 수 없다.

사드의 제 1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한은 ‘울컥하면’ 미사일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폭죽 놀이하듯 쏘아대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이런 판에 국내 여론은 두 패로 갈라져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어떤 것이 좋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든다. 어떤 국가적인 이슈가 생기면 늘 나라는 시끄럽고 어지럽다.

매일 매달 매년 이런 상황을 견디는 것이 요즘의 불볕더위보다도 더 견디기 힘들다. 최대한 이 나라를 이해해보려 하지만 아둔한 머리 가지고는 이해불가다. 나라 경제가 어렵다는데 해외로 가는 관광객수는 우리보다 인구가 3배나 많은 일본보다 더 많다고 한다.

흔히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으뜸으로 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다양성이 아니라 청군 백군으로 나누어 겨루는 초등학교 운동회장처럼 적대적 공존을 하고 있다. 자기 견해에 동의하지 않으면 ‘상종 못할 사람’으로 간주한다. 이것은 다양성과는 한참 거리가 먼 이야기다.

생각건대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현재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국가적 이슈가 나타났다 하면 으레 편을 갈라 죽기살기로 싸워왔다. 언론에 실리는 말투도 영 곱지 않다. 마치 적에게 하는 악다구니 수준이다. 그 정도가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김대중 정부 시절 고위 관료를 했던 한 학교 동창은 매일 아침 일어나면 먼저 나라를 위해 기도한다고 했다. 크게 감명을 받았다. 나라를 아끼는 마음들이 5천만명 중에 반은 넘어야 큰 나라가 우리를 손바닥에 놓고 갖고 놀지 못할 것이다.

이런 판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 호수의 물고기를 기르지 않고, 또 이웃을 배려하지 않고, 잡기만 한다면 그 호수는 물고기가 사라진 호수가 되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선진국 못지않은 인프라와 살림살이를 하는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었다는데, 남에 대한 배려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사회가 되고 말았다. 아홉 가지를 얻었다 한들 중요한 한 가지를 갖지 못한다면 그 아홉 가지가 빛이 바랜다. 남에 대한 배려. 이것이 없다면 우리가 아무리 선진국처럼 잘 산다고 해도 우리 공동체는 ‘공유지의 비극’에 처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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