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멋을 찾아서(15) 광주광역시 공예명장(나전칠기) 최석현
남도의 멋을 찾아서(15) 광주광역시 공예명장(나전칠기) 최석현
  • 박창배 기자
  • 승인 2016.08.1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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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면서도 자연색감을 잘 살려낸 옻칠공예품에서 현대적 감각을 찾다
▲ 광주광역시 공예명장(나전칠기) 최석현

최석현(최씨공방·(사)빛고을공예문화마루 대표) 광주광역시 나전칠기 공예명장은 1972년부터 나전칠기공예 외길을 걸으며 전통공예인으로서 활발한 연구, 창작활동을 지속해 오고 있다. 나전칠기와 옻칠 관련 무형문화재 교류와 전수 활동을 통해 전통나전칠기 전승활동에 이바지해 오고 있다.

올해 서암문화재단이 수여하는 ‘제6회 서암전통문화대상’ 전통공예 분야 수상자로 공예명장으로 선정됐다. 무형문화재가 아닌 명장에게 수여한 의례적인 상이었다.

▲ 금잔

그동안의 나전칠기문화에 대한 반성

나전칠기와 옻칠 수공예품이 소비자로부터 멀어지게 된 것은 공예의 상업화였다. 나전칠기의 대중화를 추구하면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먼저 나전칠기에서 가장 중요한 자개의 재료를 선정함에 있어 자개의 천연색을 외면한 채 가공하기 쉽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싼 조개를 사용한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천연 옻을 재료로 사용해 옻칠을 해야 하는데 천연 옻 원료보다 훨씬 싼 카슈(합성 도료)를 사용하다보니 가격은 저렴했을지언정 소비자들이 외면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싼 제품이 시장을 점유하다보니 옛것을 고수하던 나전칠기 종사자들은 생활고에 견디다 못해 결국은 다른 직종으로 전환하게 됐다.

최 명장도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명인이라는 호칭을 받게 됐지만 나전칠기문화를 더욱 보편화 시키고 우리것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노력 중이다.

▲ 내츄럴

신창동 유적지-통형칠기 유물 발견

최석현 명장은 칠공예 문화는 호남지역에서도 광주가 으뜸이라고 주장한다. 국가사적 제375호 광주신창동유적에 대한 1992년부터 10여차례 발굴과정에서 칠그릇과 목기 등이 발굴됐다. 이는 초기 철기시대부터 원삼국시대에 이르는 복합유적지에서 목기 제작 기법을 알 수 있는 유적이 발굴 됐을뿐아니라 공예품에 옻칠이 과거에도 이루어진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는 것을 검증해주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통형칠기는 당시의 목기 제작기법과 옻칠기술을 함께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고 한다.

신창동 유적에서 출토된 통형칠기는 몸통과 바닥판으로 구성된다. 몸통은 전체적으로 원통형이지만 바닥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좁아지다 다시 넓어지면서 입술이 약간 바깥으로 바라지는 모양이다. 바닥판은 나이테가 돌려진 가로면의 목재를 둥글게 깎아 만들었다.

최 명장은 칠공예의 원산지임을 알리기 위해 2014년 통형칠기를 재현했다.

2100년전 광주의 옻칠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신창동 유적지’가 옻 칠자를 사용하는 칠천(漆川)유역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명에서 보듯이 칠물이 흘러내려 갔거나 아니면 칠을 할 때 필요한 물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지역으로 칠하던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광주의 옻칠은 역사와 전통 뿐만아니라 뿌리가 있다. 그래서 최석현 명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전시장을 ‘늘’이라고 지었다. 옻칠공예품은 과거에도 있어 왔고, 현재도 생활속에 있으며 미래에도 늘 우리곁에 있을 것이라는 의미다.

▲ 사군자합

옻칠공예품의 재해석

옻은 자연성분이기 때문에 옻칠을 한 수공예품은 인체에 해롭지 않으며 나무가 뒤틀리지도 않고 벌레와 습기에도 강하다. 옻은 각종 암과 난치병에 산삼과 비견할 만큼 효과가 높다고도 알려졌다.

요즘들어 옻으로 만든 제품에 관심이 많다. 최 명장은 “예전에는 옻칠을 통해 공예품만 만들었는데 요즘은 인테리어에 사용될 정도로 발전을 했다”면서 “전통적으로 사용된 가구에서부터 바닥재나 벽지에도 옻칠을 사용할 수 있는데 갖가지 천연색을 사용할 수 있는 기법들이 연구되면서 가능하게 됐다”고 옻칠제품의 다양성을 설명해 주었다.

최 명장은 다른 옻칠공예자들이 카슈 같은 합성도료를 사용하여 쉬운 방법으로 공예품을 만들때도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했다. “우리가 직접 몸으로 접할 수 있는 공예품 중에서 수저나 젓가락 밥그릇 같은 식기류를 만들 때 진짜 옻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잖아요”라면서 옻의 효능이 알려지기 전부터 전통을 고집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최 명장의 노력은 옛것을 고집하면서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연구 개발하여 다양한 작품들로 표현되게 됐다.

옻의 효능이 신약으로서 각광을 받음과 동시에 옻칠에 대해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짐에 따라 더욱 관심을 받고 있다. 옻칠한 그릇에 밥을 담아 놓으면 밥이 빨리 마르지 않고 부패가 느리게 진행하며 보온도 오래 유지된다.

▲ 용봉서류함

남도의 멋, 정수-옻칠공예

요즘 최 명장은 나전칠기를 뛰어선 옻칠공예에 관심을 갖고 있다. 나전칠기의 화려함은 어느 나라의 수공예품과 견줘봐도 손색이 없다. 굴껍질을 한겹한겹 벗겨내고 도안된 문양을 오려내는 기술은 세계 제일이다. 여러 방향에서 봐도 그 화려한 색감에 반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나전칠기가 세계적인 수공예품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예전 선사시대의 유적 중 패총(조개무덤)이 발견된 것을 보면 조개류는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양식이며 화폐가치가 있었고 장신구로 만들어 족장의 힘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가구를 만들 때 나무의 내구성을 보완하기 위해 옻칠을 한 후 화려한 조개를 장식함으로써 대를 이어 사용해도 질리지 않은 미적 감각을 표현해 냈다.

나전에 사용되는 자개는 전복패와 소라패를 많이 사용하는데 우리나라의 전복패는 부피감과 무게감을 갖으면서 보는 각도에 따라 발광부분이 어느나라보다 우수하다고 한다.

그러나 전복을 양식하다보니 자연 발광체로서 우수한 전복패를 구하기가 쉽지는 않다고 한다.

옻칠도 쉽지만은 않다. 옻을 채취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어 천연옻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있지만 옻을 채취하여 정제과정을 거치는 과정도 쉽지는 않다.

최 명장은 “옻칠공예에서 남도의 멋을 찾자면 화려하면서도 자연색감을 잘 살려낸 것이 아닐까 싶다”며 “옻칠공예품이 세계적인 명품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선진 디자인도 들여오고 우리나라의 기술과 접목시켜 세계화 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남도 사람들은 특히나 손기술이 좋기 때문에 공예품에서 명품이 나올 수 있는 중요한 요소를 갖추고 있는데 취미나 수공예품 체험장으로서 기능을 하는 것은 진정한 수공예품의 산업화는 아니라고 했다.

▲ 발우

남겨진 과제

최 명장의 갤러리와 작업실이 있는 양림동은 문화체육관광부의 ‘2017년 올해의 관광도시’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해부터는 그는 양림동주민자치위원장을 맡아 근대문화와 공예를 접목시키기 위해 힘쓰고 있다. 최근 양림동 공예특화거리 조성에도 자문역할로 참여하고 있다.

최 명장은 문화와 공예가 공존하는 산업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기술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돈벌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공방에서 작업을 하러 오는 사람 중에 수제자로 삼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아직 말하기에는 이른 단계라고 생각하고 있다. 수공예품 하나하나를 만들면서 서로 협업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다보면 자연스럽게 기술의 발전이 있게 되고 진정성이 느껴질 수 있다고 했다.

아직 수공예품 제작에 종사하는 장인들의 지위가 높지 않기에 더더욱 망설여지고 있는 것이다.

수공예품의 산업화와 자신과 같은 장인들이 만든 작품들이 명품 브랜드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최석현 명장은 다짐해 본다.

▲ 노송도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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