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
판도라의 상자
  • 김병욱 충남대 국문과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승인 2016.07.26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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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욱 충남대 국문과 명예교수․문학평론가

판도라의 ‘상자’는 정확히 말하면 판도라의 ‘작은 항아리’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의 이야기는 잘 모르면서 판도라의 상자에 대해서는 아는 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판도라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인간이 프로메테우스가 전해 준 불을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되자 심술궂은 제우스는 새로운 재앙을 생각해 냈다. 그래서 솜씨 좋은 불의 신 헤파이스토스에게 명령을 내려 아름다운 여인의 형상을 만들게 했다. 프로메테우스를 시새움하며 싫어하던 아테네는 그 형상에 하얀 옷을 입히고 얼굴에는 베일을 씌워 하늘거리게 하고 머리에는 아름다운 화환으로 치장하여 황금 머리 끈을 매어 주었다. 이 머리끈에는 헤파이스토스가 제우스를 기쁘게 하려고 갖은 기교를 부려 만든 동물 형상이 멋지게 새겨져 있었다. 신들의 전령인 헤르메스는 이 아름다운 여인에게 말을 잘하는 능력을 선물했고, 미의 신 아프로디테는 모든 요염함을 선물했다. 제우스는 이렇게 아름답고도 착한 모습을 한 여인에게 사악함을 숨겨두었다. 제우스는 이 여인을 판도라라고 명명했다. 그 뜻은 ‘모든 것을 선물받은 자’라는 뜻이다. 이 여인에게 여러 신들이 각각 인간에게 불행을 가져다주는 선물을 주었기 때문이다.

제우스는 이 판도라를 데리고 신들과 인간들이 함께 사는 아래 세상으로 내려왔다. 판도라의 빼어난 아름다움에 모두들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판도라는 제우스의 선물을 전하기 위하여 프로메테우스의 동생인 순진한 에피메테우스를 찾아갔다. 평소 프로메테우스는 동생에게 ‘인간에게 어떤 고통을 주지 않으려면 올림포스 산에서 오는 제우스의 선물을 절대로 받지 마라, 받더라도 곧 되돌려 보내야 한다’고 신신 당부했건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에피메테우스는 형의 당부의 말을 그만 잊어버리고 아름다운 판도라를 반갑게 맞아 들였다. 그는 판도라의 선물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무슨 재앙의 화근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때까지 인간들은 프로메테우스의 도움으로 재앙이나 고달픈 노동은 물론 병도 모르고 잘 살았다. 판도라는 뚜껑이 달린 커다란 선물 항아리를 가지고 들어와서는 에피메테우스 앞에서 두 손으로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그 항아리 속에서 온갖 재앙이 악마의 무리처럼 솟아오르더니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지상에 퍼졌다. 단 하나의 좋은 선물만은 항아리의 맨 밑바닥에 숨어 있었는데 그것은 ‘희망’이었다. 그런데 판도라는 제우스의 명령대로 ‘희망’이 튀어나오기 전에 뚜껑을 닫아 영원히 항아리 안에 남겨두었다.

우리는 이 판도라의 신화를 읽고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독자에 따라 각각 다르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런데 나에겐 판도라의 이미지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겹쳐지고, 제우스의 이미지는 미국에 겹쳐진다.

성주에 설치가 결정된 ‘사드’는 판도라의 항아리에서 나온 근심덩어리고 자칫 잘못했다가는 동북아시아의 질서를 파괴하는 씨앗이 될 것이다. 일본이나 괌의 미군 기지를 방어하기 위한 성주의 사드 배치는 한 마디로 주권없는 나라의 슬픔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한다. 연일 관제 언론을 동원해 사드의 정당성을 무차별적으로 홍보하지만 민족과 국가의 장래를 생각할 때 한 줌도 안 되는 현 집권세력의 국정 농단은 망국의 길로 질주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옹고집을 부리지 말라. 이 나라 이 민족이 그들의 것이 결코 아님을 인식하라. 이래도 내년에 또 다른 감언이설에 속을 것인가. 거짓말 공화국이란 비아냥을 듣는 현 정권은 거짓말을 덮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계속해야 하는 모순에 빠져 있다.

누가 ‘판도라의 항아리’안에 남겨져 있는 ‘희망’을 끄집어 낼 것인가. 과연 그 ‘희망’은 영원히 판도라의 항아리 밑바닥에서 잠자고 있을 것인가. 판도라의 신화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에 절절히 들어맞는 이야기이고 겉으로만 아름다운 괴물 판도라에 우리는 속아서는 안 된다. 이래서 신화는 현실이고 영원한 생명력을 지닌 ‘위대한 말씀’인 것이다. 판도라에 미망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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