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기록문화유산 (26) 보성 지방지
호남기록문화유산 (26) 보성 지방지
  • 조일형 호남지방문헌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16.07.2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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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지방문헌연구소는 2002년부터 호남지역 고문헌 정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20세기 호남지역 근대 문집 조사 연구’, ‘호남지역 간행본 문집에 대한 조사 연구’, ‘호남 필사본 문집 조사 연구’, ‘약 3,000종으로 추정되는 호남의 한문 문집 조사 연구’ 등 호남지역 고문헌 관련 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다.

2005년도에는 ‘호남 광역 지방지 전시회’를 개최하였는데 ‘호남’이라는 책 이름이 들어간 호남 광역 지방지 25종을 조사 수집하여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조선호남지’ ‘호남고금시집’ ‘호남누정총람’ ‘호남두문록’ ‘호남모의록’ ‘호남문헌충효록’ ‘호남병자창의록’ ‘호남삼강록’ 등 호남 관련 귀중한 자료들이 전시되었다. 그 외에도 ‘근대 호남학 자료전’ ‘김삿갓과 오늘의 만남전’ 등의 전시회를 개최하였고, ‘춘강문고목록’ ‘20세기 호남주요 한문 문집 해제’ 등 호남문집 자료 총서와 호남한문고전 연구총서인 ‘매천시파 연구’ ‘역주 지산유고’ ‘역주 고산유고’ ‘호남관련인물 전기자료 선집1’ ‘국역 무등산 유산기’ ‘무등산 한시선’ 등을 출간하였다.

호남지역 고문헌의 종류는 여러 가지이고, 그 분량도 매우 많다. 따라서 기초적이나마 목록을 만들어 나가면서, 이를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목록학이란 자료학의 기초이기에, 목록과 색인을 잘 만들어 나가는 일은 필수적인 일이다. 이에 따라 2014년부터 ‘호남문집 기초목록’ ‘호남지방지 기초목록’ 2015년 ‘호남누정 기초목록’을 발간하였고, 2016년에는 ‘호남문중문헌 기초목록’을 발간하였다. 문집목록에서는 2,600여 종의 호남 문집을, 지방지 목록에서는 1,000여 종 이상의 호남의 선장본 지방지들을, 누정목록에서는 거의 3천여 곳에 달하는 호남의 누정 이름들을 목록화 시켰다. 이러한 목록학 총서는 모두 호남 지역에서 최초로 기획되고 발간된 것들이다. 앞으로도 계속하여 호남 기록문화유산 관련 목록학 총서가 더 발간될 것이다.

특히, 지방지는 그 지역에 대한 정보가 구체적이고 풍부하여 지역학 연구의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문화콘텐츠’를 생산해 낼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이러한 지방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본 연구소에서는 1,000여 종의 지방지 선장본 자를 조사 정리하여 2014년 ‘호남지방지 기초목록’을 발간하였다. 이 책은 선장본 지방지를 호남 광역 지방지, 광주권, 전남권, 전북권, 제주권 지방지로 분류하여 간단한 해제를 실어 놓았다. 지방지 안의 인물지, 효행록 등은 ‘스토리텔링’의 중요한 자료원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이번 글에서는 보성지역의 지방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보성은 죽천 박광전, 은봉 안방준, 홍암 나철, 월담 임창모, 설주 송운회, 효봉 허소, 석전 이희순, 송곡 안규동, 구당 이범재, 서재필, 안규홍 등 걸출한 인물들과 다양한 문화 유적을 갖춘 역사가 깊은 지역이다. 이 글을 통해 다시한번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여지도서: 보성(輿地圖書: 寶城)’에서

보성은 순천진관(順川鎭管) 소속이다. 특히 인물 항목이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고려 때 선윤지를 시작으로 조선시대 박광전, 안방준, 임백영, 임계영, 박응현, 안중묵, 박근효, 박성인, 선약해, 안수상 등 25인의 인물과 충신 3인, 효자 7인, 열녀 6인을 설명하고 있다.

‘보성군읍지(寶城郡邑誌)’는 필사본 1책으로

‘호남읍지’ 9책에 수록된 보성군 읍지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이후의 상황을 반영한 책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를 참조하여 제작되었다. 새로운 내용도 첨가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방리 항목의 편호인데 1760년대의 ‘여지도서’와 1789년 ‘호구총수’가 다르다. 읍지의 뒤쪽에는 읍의 재정 상태나 세금의 수납과 납부에 관해 기록한 읍사례가 첨부되어 있다.

‘보성군읍지(寶城郡邑誌)’

‘호남읍지’ 15책에 수록된 보성군 읍지로 제작연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1871년 제작된 ‘보성군읍지’와 내용이 거의 흡사하다. 동일한 형식의 다른 읍지가 1899년경에 많이 제작되었으므로 1899년경에 제작된 읍지일 가능성이 크다. 선생안은 20명의 인물이 추가되었다. 필사본 1책으로 되어 있다.

‘신산양읍지(新山陽邑誌)’

1902년 전라남도 보성군의 지리적인 내용을 담아 편찬한 읍지이다. 1902년에 별유사(別有司) 안규익(安圭益)의 주관으로 박만채(朴萬埰) 등이 1741년에 중간(重刊)한 산양지(山陽誌) 초본의 내용을 수정하고 보강한 것이다. 1902년 관찰사 이근호(李根澔)가 쓴 ‘산양읍지중간서(山陽邑誌重刊序)’와 서정철(徐廷喆)이 쓴 ‘중간서(重刊序)’에는 보성군의 읍지를 다시 편찬하게 된 배경을 밝히고 있다. 발문은 1741년에 최언귀(崔彦龜), 1902년에 안규익의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서제는 ‘산양읍지’, 판심제는 ‘산양지’로 되어 있다.

‘보성향교존성계안(寶城鄕校尊聖契安)’

박남현(朴南鉉) 등이 목활자본 1책으로 1919년 간행 한 것으로 보성 인사들이 제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출금하여 만든 존성계의 계안이다. 구서(舊序)를 보면 14마을이나 일부 장흥과 낙안의 마을을 합하여 모두 18마을의 방명을 적어 놓았음을 알 수 있다. 서문은 박남현(朴南鉉)이 썼다. 그 뒤를 이어 정사년에 양덕환(梁德煥)·안종학(安鍾鶴)이 쓴 구서(舊序)가 첨부되어 있다.

‘보성군지(寶城郡誌)’

나도우가 편찬하여 나주 향선재에서 출판한 읍지이다. 서문은 1924년 박남현(朴南鉉)이 썼고, 발문은 1902년에 안규익(安圭益)·안규신(安圭信)·선재구(宣在球)가 썼다. 목활자본 1책으로 1925년 간행되었다.

‘전라남도지: 보성군(全羅南道誌: 寶城郡)’

‘전라남도지’ 6권 첫 번째에 실려 있다. 6권에 있는 영암과 고흥보다 분량이 많다. 이는 건치연혁·지세산천·소재 행정기관·학교·불우·도로·면명·고적(古蹟)에 관련된 부분보다는 인물에 대한 분량이 많기 때문이다. 인물 중에서도 문과·사환(仕宦)과 효자·열녀 항목의 분량이 많다. 항목 및 구성은 다른 지역과 비슷하다. 나도우(羅燾佑)가 목활자본 9권 9책으로 1926년에 간행하였다.

‘산양면지(山陽面誌)’

1948년에 서문은 김윤도(金潤道), 발문은 김영택(金英澤)·강혁주(姜赫柱)가 썼다. 설방욱(薛邦旭)이 석인본 1책으로 1948년에 간행하였다.

‘보성지(寶城誌)’

서문을 살펴보면 1924년, 1925년, 1926년 세 차례에 걸쳐 수정되었으나 속간하지 못하다 43년 만에 간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서문은 전교인 안응순(安應淳), 발문은 박태기(朴泰璂)가 썼다. 보성향교에서 연활자본 1책으로 1966년에 간행하였다.

‘양로당시집(養老堂詩集)’

▲ 양로당시집

문기룡(文基龍)의 시에 차운한 시들을 모아 간행한 것이다. 문기룡은 보성 사람으로 호(號)는 행원(杏園)이다. 조양시사 300명의 노인이 문기룡의 시에 차운하여 많은 시를 지었는데, 산재해 있어 이것들을 모아 ‘양로당시집’으로 만든 것이다. 이 시집은 행원 문기룡의 원운시(原韻詩)를 시작으로 213수의 차운시가 실려 있다. 서문은 임정모(任正模)가 썼고, 발문은 없으며, 김석관(金錫寬)이 쓴 기(記)가 1편 있다. 조양시사(朝陽詩社)에서 연활자본 1권 1책으로 간행하였다.

‘유도회보성군지부유안(儒道會寶城郡支部儒案)’

보성에 있었으나 망국 후 쇠락해졌던 존성계(尊聖契)의 사업을 잇고자 지역 유림들이 힘을 합쳐 만든 유안(儒案)이다. 서문은 양인승(梁仁承)이 썼다. 구성은 문묘향사위차도(文廟享祀位次圖)·성균관문묘종향고례(成均館文廟從享古例)·향교문묘래역(鄕校文廟來歷)·고조선급백제문화(古朝鮮及百濟文化)·동국유현소전(東國儒賢小傳)·보성향교위치급구조(寶城鄕校位置及構造)·향교유래약(鄕校由來略)·유안(儒案)·누계회원(累計會員) 등으로 되어 있다. 보성군에서 연활자본 2권 1책으로 1972년 간행하였다.

▲ 조양음사월강회시첩

‘조양음사월강회시첩(朝陽吟社月講會詩帖)’ 

전남 보성에서 결성된 시사인 조양음사에서 제작한 시집이다. 이 시사 회원들은 한 달에 한 번 조성면 조성리에 모여 강회를 갖고 함께 시를 읊었다. 시는 대부분 7언 율시이고, 1967년 6월부터 1978년 1월까지의 작품이 실려 있다. 1978년에 서문은 권용현(權龍鉉), 발문은 임정모(任正模)가 썼다.

'산양잡록(山陽雜錄)’

조선시대 전라남도 화순에 관한 여러 정보를 수집하여 편찬한 종합정보 지리지로 본래는 필사한 것이나, 근래 일본 동양문고에 수장되어 있는 것을 복사하여 제본한 책이다. 본서 원본의 표지에는 ‘서양지(瑞陽誌)’로 묵서되어 있으나, 목록의 제목은 ‘산양잡록(山陽雜錄)’으로 기재되어 서명이 서로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행원호시(杏園號詩)’

▲ 행원호시

조양음사시회에서 행원(杏園) 문기룡(文基龍)의 아호(雅號)를 책의 제목으로 하여 연활자본 2권 1책으로 1965년 출간하였다. 문기룡은 보성 사람으로, ‘동봉(董奉)’이라는 유명한 양의(良醫)가 은행나무를 심어 후세에 이름이 전해졌다는 고사를 인용하여 호를 행원(杏園)이라 짓고 많은 병자를 치료하였다. 행원이 시 1수를 지었는데 그 시의 내용이 아주 뛰어나 조양음사(朝陽吟社)에서 그 원운과 양력을 정리하고, 각 지역에서 시 300여 수를 얻어 이것을 시집으로 만들었다. 서문은 이종두(李鍾斗)·이종면(李鍾冕)·김상석(金商石)이 썼고, 발문은 사위인 양회백(梁會伯)이 썼다.

‘덕산지(德山誌)’

전라남도 보성군 복내면 동교리 축치부락에 있는 덕산정사에서 1973년 석인본 1책으로 간행한 사우지이다. 덕산정사는 1930년 낙천(樂川) 이교천(李敎川)이 학문연구와 제자들의 강학을 위해 문인들의 협조로 건립하였다. 서문은 1972년 권순명(權純命), 발문은 1973년에 이동학(李東鶴)이 썼다. 서문의 내용으로 학도들이 ‘이문지회(以文之會)’라는 모임을 결성하여 공의 사후에도 학문을 강마하며 공의 가르침을 따르고 정사 뒤에 영당을 지어 모셔 제사지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권말에 덕산지 편찬에 도움을 준 사람들의 명단이 있다.

이렇듯 보성관련 지방지 안에는 다양한 보성의 인물, 교유관계, 시사단체, 각종 문화 제향 행사 등 그 시대의 생생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보성을 연구하는 중요 향토 자료로써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자료들이며 앞으로 더욱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현대에 발간된 보성 관련 지방지로 보성문화원에서 발간한 ‘보성문화’라는 책이 있다. 1992년부터 발간되었으며, 보성의 향토 문예지로서 문화, 역사, 인물, 유적, 여행 등 다각적인 시각에서 보성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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