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멋을 찾아서(11) 호남검무의 화려한 부활, 김자연 명무
남도의 멋을 찾아서(11) 호남검무의 화려한 부활, 김자연 명무
  • 박창배 기자
  • 승인 2016.07.07 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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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사위가 섬세하고 장엄하며 기교가 화려한 특색

지난달 19일, 빛고을시민 문화관 대공연장에서 김자연 명무에 의해 호남검무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날 공연에는 한국전통무용가 김자연 명무를 중심으로 전국에서 활동 중인 제자들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스승과 제자들은 무대에서 함께 호흡하며 호남의 수준 높은 전통 춤과 아름다고 화려한 우리 춤사위를 아낌없이 선보여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남도의 멋을 찾아서 열한번째는 잊혀져간 호남검무를 재탄생시킨 김자연무용단의 김자연 원장을 만나 남도의 멋에 대해서 들어봤다.

▲ 김자연 명무

 

故 한진옥 선생과의 인연

故 한진옥 선생은 전남 곡성 옥과 출신의 한국무용가이다. 그는 춤뿐만 아니라 고법(고수가 북으로 장단을 쳐 반주하는 것)에도 탁월하였고 호남제삼현육각(춤의 반주음악)에도 능한 무악(舞樂)의 명인이었다.

9살때부터 장판개 명창 문하에 입문, 3년간 흥보가를 배웠기 때문에 장단이 뛰어났으며 이후 옥과 출신의 명무 이장선 문하에 들어 승무, 검무, 굿거리(입춤), 살풀이춤, 바라춤, 부채춤, 화관무, 장고춤, 범패무, 학춤 등을 섭렵했다. 이후 신갑도 문하에 들어 8검무, 4검무 등을 배웠는데 신갑도는 팔도의 검무를 보유한 검무명인이다. 또한 순창출신의 이창조 문하에서 2년간 승전무, 줄승무(노승무), 황진무 등을 배웠다.

그는 후진 양성을 위해서도 노력했는데 1938년 남원권번 고전무용강사를 시작으로 1953년 전남민족예술학원과 광주국악원 강사, 1974년 광주시립국악원 강사를 지내는 등 거의 40여년을 무용교육기관의 춤사범으로 지냈다.

▲ 故 한진옥님의 검무 시연

김자연 명무에게 이런 분을 스승으로 모시게 된 사연을 들어봤다. 김 명무의 모친께서는 국악교육을 체계적으로 배운 국악인이었다. 어렸을 적 어깨 너머로 모친의 춤을 흉내 내면서부터 춤과의 인연은 시작됐다. “중학교 시절 발레를 전공한 김정숙 선생님의 눈에 띄어 그 선생님의 소개로 채청무용학원에 입소하게 됐는데 모친께서 심하게 반대하셨다”며 그 때 당시를 회고했다.

“그 후 부친과 친구였던 광주시립국악원 원장 안취선 선생의 소개로 1975년부터 故 한진옥 선생님 문하에 입문하게 됐다”고 한다. 그 당시 故 한진옥 선생은 광주시립국악원 강사로 지내면서 후진 양성에 정성을 쏟고 있던 시기였다.

이 때부터 비로소 뼈대있는 전통 한국춤을 배우게 된 것이다.

 

호남검무의 특징

검무는 칼을 휘두르면서 추는 춤을 말한다. 군복인 전복을 입고 군모인 전립을 쓴 여러 춤꾼들이 서로 마주보고 양손에 칼을 휘저으며 추는 춤으로 검기무 또는 황창무, 황창랑무라고도 한다. 검기무는 무기인 칼을 사용하는 춤이라는 뜻이며 황창무는 신라의 황창랑(黃昌郞)이 백제에 들어가 칼춤을 추다가 백제왕을 죽이고 그도 잡혀 죽자 신라인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그 얼굴을 본떠 가면을 만들어 쓰고 칼춤을 추기 시작한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가면을 쓰고 추던 칼춤으로 시작하여 조선시대에 들어 각 지방에 설치된 교방청에서 가면을 벗고 추는 검무로 전승했다. 각 지역의 특색에 따라 여러 종류의 검무가 전해져 오고 있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검무로는 진주검무·통영검무·호남검무·경기검무·궁중검무·해주검무·함흥검무·평양검무 등이 있다.

1991년 故 한진옥 선생의 호남검무가 역사속으로 자취를 감출 뻔 했다. 하지만 김자연 명무의 노력 끝에 다시 살아나게 됐다. 호남검무를 재연하면서 김 명무는 “다른 지역 검무와는 다르게 춤사위가 섬세하고 장엄하며 기교가 화려한 특색을 갖춘 호남 유일 검무의 맥을 잇고 있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진옥류의 호남검무는 선생의 춤에 대한 열의가 담겨져 있는데 기방의 교태미나 ‘끼’가 아니라 남성다운 굵은 선의 춤사위로 활력과 장쾌함이 묻어난다.

호남검무의 한삼춤은 민속무용 중 승무에서 나타나는 사위와 유사하며, 선 손 춤사위의 쌍어리 동작은 다른 검무에 비해 허리를 많이 뒤로 젖히고, 허리를 틀어서 허리의 유연성을 표현하는 허리 틀음 사위가 특징이다.

호남검무의 연풍대 사위는 상체의 숙임과 젖힘이 크게 나타나고 앉았다 일어서면서 상체를 회전시키는 것이 진주검무와 통영검무와 다른 특색이다.

무엇보다 전통 호남검무의 칼사위는 경쾌한 '착착' 소리가 날 정도로 절도 있는 동작이 눈에 띄며 그만큼 칼 동작에서 힘과 노력이 더 많이 들어가야만 위험도 그만큼 덜하다는 특징이 있다.

김자연 명무는 “스승의 제자로서 재현을 하면서 부끄럽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열과 성의를 다했다”면서 함께한 제자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했다.

 

호남검무 계승 발전노력

50여년간 한국전통무용을 고집한 김자연 명무가 생각하는 남도의 멋은 “한국전통무용은 삼라만상의 모든 희로애락의 멋을 춤사위로 흡수해 내는 예술성이 내재해 있고 우리 민족이 오래도록 가슴 속에 간직해온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춤이다”며 “특히 남도의 멋은 대삼소삼(소리의 성격과 강약을 총칭)이 분명하며 춤사위가 담백하면서도 기교가 뛰어난데 故 한진옥 선생의 춤은 올곧은 품성이 묻어나 깨끗한 춤사위가 특징이다”고 말했다.

무형문화재 지정을 위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과정에서 한진옥 선생이 타계함으로써 공식적 인정을 받지 못하고 말았다.

타 지역의 경우 통영검무, 진주검무, 혜주검무, 경기검무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계승·보전되고 있는 반면 이번에 재현된 검무는 故 한진옥의 제자인 김자연과 그의 제자들에 의해 명맥만을 겨우 이어왔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때문에 가장 한국적이고 남도적인 멋이 특색이며 문화 상품 가치가 높은 호남검무의 조속한 무형문화재지정과 보존 노력이 시급한 실정이다.

김자연무용단은 1991년 창립해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전야제 축하공연과 1998년 밀양에서 개최한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광주광역시 대표로 출전했다. 2001년 월드컵 홍보를 위한 미국 텍사스주 호남검무 순회공연, 2010년 창원야철국악제 호남검무 종합대상(국회의장상) 수상, 2016년 신년 맞이 나주 인문학콘서트 호남검무 축하공연, 여수진남국악대전 초청 공연 등 수차례 공연을 통해 전국적으로 호남검무의 위상을 넓혀가고 있다.

전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제자들과 더불어 호남검무의 명맥을 제자들과 함께 꾸준히 계승․발전시켜나갈 뿐만 아니라 호남검무의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춤사위를 국제적으로 알릴 수 있도록 세계화에 힘쓰고 있는 중이다.

호남검무의 명맥이 사라지지 않고 원형그대로 오래토록 유지되고, 앞으로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성장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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