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기록문화유산(23) 곡성에는 제갈량(諸葛亮)의 사당인 무후사(武侯祠)가 있다.
호남기록문화유산(23) 곡성에는 제갈량(諸葛亮)의 사당인 무후사(武侯祠)가 있다.
  • 김현희 호남지방문헌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16.06.3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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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성군 오산면 청단리 무후사(武侯祠) : 제갈량을 모신 사당

무후사는 중국 삼국시대 촉(蜀)나라의 승상인 제갈량을 모시는 사당이다. 제갈량(諸葛亮, 181~234)은 자는 공명(孔明), 시호는 충무후(忠武侯)이며, 별칭은 와룡선생이다. 무후사는 곡성군 청단면 오산리에 위치하고 있다.

제갈량은 나이 27세부터 자신의 재능과 지혜로 유비를 보좌했다. 원리원칙을 중시하고 신상필벌(信賞必罰)을 확실히 했으며, 덕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정치가이자 행정가였다. 특히 제갈량은 후한을 멸망시킨 위나라를 정벌하여 한(漢) 왕조를 회복하고자 하였다.

중국에는 관왕묘가 많은데, 관왕묘는 관우(關羽)를 신앙하기 위하여 건립된 묘당(廟堂)으로 관성묘(關聖廟)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초부터 관왕묘를 건립하여 일반 서민에까지도 그 신앙이 전파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정유의 왜란 때에 명나라 군사들에 의해 관왕묘가 건립되었는데, 관왕묘에 있는 제갈공명의 영정을 분리해 와 무후사에 봉안하게 되었다.

제갈공명의 사당은 곡성의 무후사가 1903년에 건립되고, 대구 영모재(永慕齋)에 무후사가 934년에 건립되어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다.

곡성의 무후사를 건립하고 제갈 가문을 알리려 노력한 사람이 곡성에 살고 있던 제갈하백이었다.

▲ 무후사 외삼문 영정문(寧靜門)

담녕 제갈하백은 누구인가?

제갈량(諸葛亮, 181~234)의 후손으로 근대의 거친 물결이 밀려오던 19세기 후반과 일제 강점기를 겪으면서 당시 혼란했던 시기에 활동했던 호남 곡성의 인물이다. 무후사 건립을 통해 몰락하는 가문을 일으켜 세우고, 국권을 회복하고 유교적 가치관을 수립하고자 하였다.

제갈하백은 자는 세량(細凉), 호는 담녕,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1855년 5월 13일 청단리에서 처사공 병두(秉斗)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19세기 말 대표적인 성리학자이자 위정척사론자인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의 문인으로, 《곡성군지》에는 ‘무후사는 제갈무후의 영정을 모셔둔 사당으로 오산면 청단리에 있으며 그 자손인 제갈하백이 계묘년(1903) 여름에 건립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제갈씨는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온 희귀 성씨이다. 고인들은 씨족을 중시하였는데 씨(氏)는 조상을 구분하는 것이고, 족(族)은 족류를 구분하는 것이다. 갈씨는 낭야(瑯琊)의 제현(諸縣)에 거주하였으므로 제갈씨로 불렀으며, 제갈씨의 시조는 제갈량의 아버지 제갈규(諸葛珪)이다.

제갈규의 5세손인 제갈충(諸葛忠)이 한나라가 망하자 위(魏)나라에 불만을 품고 신라 미추이사금 때 신라로 망명하여 지리산에 살기 시작하였다. 그의 21대손 제갈공순(諸葛公巡)이 신라 흥덕왕 때 귀화하여 우리나라 제갈씨가 되었다. 그 후 고려 현종(顯宗)때 제갈홍(泓)과 제갈형(瀅) 두 형제가 복성인 제갈씨를 한 자씩 나누어 쓰기로 하였다.

대한제국 광무 기해년(1899)에 중추원과 장례원에 상청하여 복성을 허락하는 판결이 내려졌다. 일부 제씨와 갈씨가 다시 제갈씨로 복성하였다고 한다. 제씨와 갈씨는 제갈씨에서 분화한 성이며, 이들 3성은 이성이본(異姓異本)의 동성이 된다.

담녕의 일련의 행적들은 혼란한 세상 속에서 선조인 무후 제갈량의 업적을 드러내어 사람들에게 충의(忠義)를 일으키려 한 항일의식의 표출인 것이다.

제갈하백은 1902년 관왕묘에 모셔진 제갈량의 영정을 분리, 봉사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상소를 올리어 예조의 허가를 받고, 1903년 곡성군 오산면 청단리에 사당을 이루고 무후사라 하였다. 후일 1948년, 1985년, 2001년 중수(重修)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매년 봄가을로 제갈무후의 사당에 제사하는데 전국의 뛰어난 사림들이 모이고 있다.

▲ 곡성군 오산면 무후사 내 부의당(扶義堂) : 무후사 내 강학소

무후사는 중국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하는 일환으로 진행중이다.

해마다 우리나라를 찾는 중국 관광객은 600만명이다. 그 중 광주와 전남을 방문하는 중국인은 2%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2016년은‘중국인의 한국관광의 해’이다. 문화와 스토리를 담은‘남도 차이나로드’는 중국과 관련 있는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하는 일환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언급된 곳으로는 곡성 무후사 외에 해남 황조별묘와 집성촌, 나주와 무안의 최부 유적, 화순 주자묘 및 정율성 생가터, 임진왜란에 참전한 진린ㆍ등자룡 장군 유적, 영광 법성포 불교 최초 도래지, 진도 운림산방, 신안 증도 해저유물 발굴지, 장보고 관련 유적, 고흥 대성사 등이 있다.

이에 전남 곡성군 오산면에 있는 무후사는 촉나라 승상 제갈량을 모시는 사당으로 제갈하백의 노력이 빛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남도의 매력있는 관광 인프라 구축 및 중국 관련 역사문화자원 50여 곳을 활용해 '남도 차이나 로드'를 조성한다. 관람 및 관광이 목적이 아닌 '체류'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남도에 소재한 한국과 중국의 역사와 인물 등을 연계할 수 있는 문화자원을 활용하기로 했다. 완도~제주, 해남 우수영~제주 등을 연결하는 코스를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담녕집》은 제갈하백의 문집이다. 본 필자는 2009년 남양 제갈씨 충의공파(忠毅公派) 옥과(玉果) 문중에서 기증받은 책 가운데 제갈량의 사당을 창건하는 데 힘쓴 제갈하백의 문집을 2016년 석사 학위로 번역한 바 있다.

그는 그 유명한 제갈량의 후손으로 선조의 유훈을 잇고 후손들에게 자부심을 줄 수 있으며, 특히나 제갈량의 사당을 건립하는데 앞장선 사람이 호남의 곡성에서 살았다는 것을 새롭게 알려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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