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와 『주역』점
퇴계와 『주역』점
  • 이황 만암주역학연구소 소장
  • 승인 2016.06.30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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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황 만암주역학연구소 소장

퇴계가 운명하기 전 아파 누워 있을 때 제자들이 선생의 병 예후에 대해 주역점을 쳐서 지산겸(地山謙 ䷎)괘 셋째 효(九三爻)를 얻었다 한다. 『주역』의 예순 네 개의 괘에는 각 여섯 효(각 괘에는 여섯 개의 양 · 음효가 섞여 있음)가 있으며 각 효에 길흉이 섞여있는데 괘의 여섯 효가 모두 길한 효는 오직 지산겸괘 뿐이다. 겸이란 ‘겸손함’이라, 끝까지 겸손함을 유지하면 흉할 리가 없다는 이치에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겸괘는 땅(坤 ☷) 아래 산(산 ☶)이 있는 괘이다. 상식적으로는 땅 위에 산이 있어야 맞지만 『주역』은 그 의미가 다르다. 산은 유순함과 후덕함을 상징하고 산은 그침을 상징한다. 그 ‘유순하고 후덕함에서 그친다는’ 뜻을 담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어찌 군자의 도가 아니겠으며 길하지 않겠는가?

괘의 의미에 대한 단정에서는 “겸허하니 형통하다. 하늘의 도가 내려와서 제도하니 밝게 빛나고 땅의 도는 낮은데서 머물지만 (지기는) 상승한다(天道下濟而光明 地道卑而上行)”고 하여 하늘의 기운이 내려오고 땅의 기운이 낮은 곳에 머무는 겸손함을 나타내는 괘이다. 공자는 겸괘에 대한 해석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공로가 있어도 자랑하지 않고 공적이 있어도 자기의 덕으로 여기지 않으니 지극히 돈후하도다(勞而不伐 有功而不德 厚之至也)” 그래서 상서롭고 길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겸손하기’란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그게 지나쳐도 반드시 문제가 아니겠는가? 예를 들어 공자를 매우 존경한다하여 공씨 성을 가진 이를 보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마치 공자를 보듯 예를 갖춘다면 이는 지나친 과례(過禮)로 위선이 되지 않겠는가? 필자가 아는 어떤 이는 스스로 그렇다고 말한 이가 있다.

백거이의 「방언」이라는 시가 있다. 왕망(후한의 왕위를 찬탈한 반란자)과 주공(주나라 어린 조카 성왕을 보필하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나라를 일으켜 세운 이로 공자가 가장 흠모했던 이이고 봉지가 공자가 태어난 노나라임), 두 사람이 행한 예에 대해 비교한 시다. 왕망의 겸허함은 당시 천하에 회자되었으나 그것은 야욕을 실현하기 위한 위선이었고, 주공의 예는 죽을 때까지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 둘이 일찍 죽었다면 본질을 알 수 없게 되었을 것임을 일깨우는 시이다.

이 겸손이란 공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군자의 진면목이기도 하다. 『논어 · 옹야』에 나온 얘기이다. “질이 문보다 지나치면 촌스럽고, 문이 질보다 지나치면 겉치레로 흐르게 된다. 문과 질이 알맞게 조화를 이루어야 군자다운 것이다(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 이 문과 질도 누구나 드러내 보이는 예에서 나타나게 되어 있다. 빈 수레는 요란하다.

공자는 “시에서 일으키고 예로 세우고 악으로 완성한다(詩於興 禮於立 樂於成)”고 하였다. 이렇게 예로 온전히 서는 것이 이유인지 『주역』의 예괘는 온전히 길(吉)한 괘이다.

이 예괘의 괘사(괘를 규정하는 글)는 “형통하다. 군자는 끝까지 (그 겸손함을) 마침이 있다(亨 君子有終)”이다. 달리 말하면 “제사를 거행하다. 군자는 마침이 있다”이다.

겸괘의 삼효 효사는 “공로가 있으면서도 겸손하다. 군자가 종신토록 이와 같으니 (점은)길하다(勞謙 君子有終 吉)” 이를 달리 해석해도 된다. 즉 “힘써 겸손함이니(겸손하기를 힘쓴다) 군자가 마칠 때까지 이러하니 길하다”

퇴계의 제자들이 입서하여 겸괘 삼효를 얻자 ‘선생께서 돌아가실 것’을 예측하고 장례준비를 하였는데 3일 후 돌아가셨다고 한다. 과연 ‘군자는 마침이 있어 길’한 것이었던가? 겸괘에서 이 삼효만이 유일하게 양효(陽爻)이며 나머지 다섯 효는 음효(陰爻)이다. 그러니 노겸군자(勞謙君子)의 모습임을 알 수가 있다. 상하의 다섯 음효가 이 하나의 양효를 따르는 모양이다.

어떤 이가 병환으로 위독한 부친 때문에 『주역』점을 좀 안다는 이에게 가서 점을 쳐서 이 겸괘 삼효를 얻었고 그는 ‘곧 돌아가실 것이니 장례준비를 하라’고 예측하였다. 그런데 그의 부친은 죽지 않고 병을 오래도록 끌었다 한다. 그래서 ‘점이 틀렸다’고 하였다는데 점이 틀린 것이 아니라 그가 해석을 잘못한 것이다. 왜냐면 그의 부친은 ‘군자’가 아니라 ‘소인’이라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없었다는 뜻이다.

『주역』을 해석하고 예측함에 있어 이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임에 틀림없다. 『주역』이란 군자의 도를 설명한 것임이 분명하지만 『주역』에는 소인이 이로울 때가 더 많다. 군자의 길은 그렇게 어렵고 힘든 것임을 교훈으로 알려주고자 함이 주역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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