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멋을 찾아서(10) 북어그림 통해 인간의 삶을 말하는 이재칠 화가
남도의 멋을 찾아서(10) 북어그림 통해 인간의 삶을 말하는 이재칠 화가
  • 윤용기 기자
  • 승인 2016.06.23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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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어를 의인화해 세상사의 불합리한 현실들을 풍자

 

그림에 대한 평가나 담론은 개개인의 기준에 따라 너무 많아 종잡을 수 없을 정도지만, 변치 않는 의제는 '그림도 결국 사람이 그린다'란 점이다.

 

▲ 북어 그림을 통해 삶을 말하는 이재칠 화가

이재칠 작가는 무엇을 그리든, 그림의 소재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가 얘기하려 하는 것은 인간의 삶에 대한 자기 주장이다.

이재칠 작가는 “예술로써 주장하고, 행동하고,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예술가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작가적 소양과 자질을 다진 후, 자기주장에 힘을 실을 수 있는 철학을 반드시 구비해야 하고, 예술가는 현실사회의 모순에 대해 예술적 논리로 반응해야 하며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꾸준히 세대를 이어 나간다면 모두가 바라는 이상의 꿈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다”고 말한다. 말하는 폼세를 보니 우리지역에서 진보적 리얼리티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현재 함평군 한재골마을에서 가족과 함께 거주하면서 작품활동을 하고있는 이재칠 작가를 만났다.

성격상 여리고 서민정서가 넘치는 친구라 외형상 편안해 보이지만 내면의 세계는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자신의 철학대로 자품 세계를 구현해 가는 우리지역의 대표작가이다.

화실이 위치한 함평읍 한재골 안집은 작가의 성품을 반영이라도 한 듯 꽃밭과 텃밭이 자신의 예술 세계처럼 구성되어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집 앞에서 만난 이 작가는 요즘 자신이 백만 대군을 통솔하는 대장군으로 등장했다고 자랑한다. 무슨 뜻이냐고 묻자 요즘 벌을 키우고 있다면서 지금 자신의 지휘를 받는 꿀벌의 수는 세어볼 수는 없지만 100만은 족이 될거라고 너스레를 떤다.

화실로 자리를 옮겨 황차 한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하면서 필자는 거두절미하고 요즘 북어를 통해 세상의 모순을 얘기하는 북어 작가로 통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이 물음에 그는 대뜸 손사레부터 친다.

이 작가는 “어느 하나의 소재를 평생 붙들고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어떤 소재에도 인간이, 사람살이가 그 속에 있으면 된다” 면서 “북어에 천착한 이유도 북어만을 그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북어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말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

이어 그는 "자신의 작품들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흔적들을 표현한 것이 많다"고 덧붙인다.

실제 그는 작업하기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생활고에 쫓기면서 몸과 마음을 소진했다. 생활고 해결의 문제로 정작 그림은 그릴 수가 없었다. 그러한 고민들이 광주를 떠나 나주의 빈집을 찾아들어간 이유가 됐다. 이곳에서 한동안 작업을 했고, 이후 함평 현재의 집에 정착해 10여년째 살고 있다.

화가로서 출발점에 대해 묻자 이재칠 작가는 “남들보다 지진한 재능을 벗 삼아, 막연한 ‘화가의 길’을 가고 있었다"면서 "누가 인생의 진로나 학업에 대한 방향을 딱부러지게 조언해 주는 이도 없었다. 어느날 나를 보니, 그냥 미술대학에 가야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손가락 터지게 목탄을 문지르고 있었다”고 회고한다.

또 “대학시절에는 최루탄 터지는 시대풍경을 맛보면서 짱돌이 내 붓보다는 강하다는 힘의 진실을 보았다”고 추억한다.

그는 졸업 후, 웃자란 죽순마냥 힘 없이 세상에 내동댕이처진 기분이 들 무렵, 그 죽순에도 뼈가 생기고 있음을 알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말한다. 그 무렵 겸재를 만나고, 단원을 따르고, 케터 콜비츠를 밤새워 기다리고, 오윤과 김남주 시인을 생각하며 술도 마셨다. 수련의 많은 날 속에는 모방의 즐거움도 있었다. 하지만 남들의 이론과 예술정신의 성과를 체득하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보내던 시절, 어느때 부터인가 나만의 눈으로, 내 생각의 창으로,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화가로서의 눈을 뜨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이재칠 화가는 2000년 첫 개인전에서 ‘삶의 리얼리티 찾기’를 화두로 사람살이의 의미와 행복, 그리고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관련한 인간사의 단면을 근거리의 시선에서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당시 전시는 작품의 소재와 재료의 특별함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재칠은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쉬운 재료’와 기법을 언급했는데, 2007년부터 쓰기 시작한 크레파스와 드로잉 기법이 그것이다. 대중적인 재료에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작가의 의도는 형식보다는 내용의 감동을 강조했다.

 

이재칠 화가의 두번째 개인전의 작품들은 말린 북어를 소재로 삶 속에서 묻어나는 절절하고도 진한 시어 같은 메시지들이었다. 표현기법 또한 크레파스 드로잉으로 했다.

첫 전시회 이후 10년이 넘은 기간 동안 그는 시골 삶에 몸을 묻어두고 묵묵히 진행해온 화업의 진정성을 모아 시작(時作)같은 회화적 언어들을 선보였다.

이재칠 화가의 주제는 언제나 마찬가지로 인간 삶의 진정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경외감이다.

첫 전시회때 작품들은 새벽 인력시장이나 공사장 인부들, 도시 뒷골목 걸인, 농촌현실 등 일상 속에서 스치고 부딪혔던 고단한 인물들의 삶과 그런 현실의 그늘들이 그대로 묻어나는 풍경들을 소재삼아 인간적 연민과 동병상련의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낸 회화적 작업들이었다.

하지만 두번째 전시회의 40여점의 작품들은 대부분 인물대신 앙상하게 마른 북어를 의인화해 세상사의 불합리한 현실들을 풍자하는 방식을 취했다.

화면구성도 북어 이외의 설명적 요소나 치장들을 배제하고 흔한 크레파스로 거칠고 강렬한 터치로 덧쌓고 문지르는 기법으로 표현했다. 그림에 등장하는 글씨 또한 묘미이다. 문인화에 등장하는 시제 같다. 거기에 화룡점정으로 아주 작은 부분에 절제된 색채를 가미해 흑백 속에서 붉은 점으로 극적 효과를 더 높인다. 또한 그런 흑백 톤의 묵직한 회화적 발언들은 그림 속에 곁들여진 짧은 시어들로 더 큰 울림을 창조해 냈다.

그의 작품 ‘가시 같은 봄이 살점을 꿴다’, ‘방학 휴일은 무조건 굶는다. 그날은 운동장 수도꼭지도 쉰다. 나는 잔다’ 등을 대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섬뜩한 전율이 느껴진다. 이 작가는 이미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완성하고 심취해 간다는 방증인 셈이다.

시와 그림은 근원이 같은 것이니('시화동원'), 시를 모르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문인화’에서는 껍데기 그림이라고 한다. 이재칠 화가의 작품은 문인화의 격조를 지니면서 민중적인 메세지를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 같다.

 

이재칠 화가의 북어 그림을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전율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 화가의 북어 그림에 반해 3회째 그림을 봐 왔다는 A씨는 “전율을 느낀다는 말외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며 고개만 절래절래 흔들면서 “그림을 잘 모르는 자신의 눈에도 가히 충격으로 느낌이 전달됐다”고 감동을 전했다.

또다른 B씨는 “정말 감동입니다. 피 한 방울 남김없이 밀어올려 그대에게 전한다는 북어.... 대체 그 간절한 바람! 거기까지 도달한 정신의 경지가 놀랍다”고 칭찬했다.

광주에 사는 K씨는 “북어의 눈동자 - 절실한 염원으로 말라버리고 빈 그 눈동자는 좌절된 비애라기보다 염원의 무한으로 읽혀 비장과 숭고가 구분되지 않는 지점에 도달한 듯합니다. '현묘', 거기에 도달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느낌을 말했다.

이렇듯 그의 그림을 보면 깜짝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북어의 부릅뜬 눈은 무서우면서도 강렬한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그의 그림은 화폭에서 그림과 단시가 어울려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면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해준다는 것이 일반인들의 평이다.

2014년 12월에 광주시립미술관에 가진 우공이산(愚公移山)전에서는 소재를 북어에서 탈피해 맨드라미와 죽순 등 정물을 통해 인간의 삶을 표현했다.

이재칠 작가는 “화가에게 미술작업이란 생활의 단면을 보여주는 척도”라면서 “사람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늘 끝이 없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사람의 삶을 고민하고 대변하는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한다.

비내리는 오후 사람 이야기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사발 걸치고 얼큰해지면 장사익의 노래를 구성지게 불러 제낄 수도 있고, 예술적 끼가 넘쳐 오르면 붓과 크레파스를 들고 마음과 손이 가는대로 춤 출 수 있는 극락이자 천국 같은 창작공간을 갖은 이재칠 작가가 오늘은 왠지 많이 부럽기만 하다.

<이재칠(Lee jae chil) 프로필>

개인전 3회

현 전국민조미술인협의회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참여 전시

충북민족미술 ART FESTIVAL 평화미술제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3.15아트센터)

김복진미술제(청주예술의 전당)

‘우공이산’(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분관)

JALLA展(동경미술관, 일본)

민족미술전(서울시립미술관)

오원전

영호남 민족예술교류전(광주,대구,목포, 울산)

통일미술제(광주망월묘역)

동강환경미술제 환경미술제(江강水월來“(5.18기념전시관)

5.18광주민중항쟁31주년기념전(전남대컨벤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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