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만난 호치민(2)
베트남에서 만난 호치민(2)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6.06.13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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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똥이냐 프랑스의 똥냄새냐

▲ 하노이 바 딘 광장의 관광객들
#1. 1945년 92일에 호치민은 베트남 민주공화국 선포를 하였다. 그러나 독립의 길은 멀었다. 19457월 미 · · 3개국 정상은 포츠담 회담에서 베트남 16도 이북은 중국군이, 16도 이남은 영국군이 주둔토록 하고, 향후 치안이 안정되면 베트남 주권을 프랑스에게 다시 돌려준다고 결의했다.

이 결의에 따라 8월 하순부터 중국군 18만 명이 하노이에 들어왔고, 남부 베트남에는 영국군이 들어왔다. 그런데 중국군은 징발을 구실로 약탈을 일삼았고, 영국군은 감옥에 갇힌 프랑스 군대를 풀어주었다. 프랑스 군인들은 사이공에서 베트남인을 무차별 폭행하기까지 하였다.
 
#2. 베트남 민주공화국은 위기였다. 호치민은 북부 베트남이라도 독립정부를 만들기로 했다. 우선 호치민은 공산국가의 이미지를 벗기 위하여 인도차이나 공산당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인도차이나 막스주의 연구회로 바꾸었다.
 
#3.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국의 장기주둔과 수탈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호치민은 중국군을 몰아내기 위하여 프랑스와 협상하였다. 양측은 몇 주 동안 집중적으로 회담을 하였다. 호치민은 프랑스에게 경제적인 이익을 양보하는 대신에 프랑스 군대가 중국군을 몰아내고 베트남의 독립을 인정해 주는 전략을 택했다.
 
프랑스측도 중국군을 몰아내는 것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협상안에 독립이라는 말을 넣는 것은 강력 반대했다.
 
#4. 프랑스와의 협상은 무려 6개월 동안이나 진행되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호치민의 독립주장과 프랑스의 불가방침이 접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호치민은 대내외적으로 위협을 받았다. 프랑스와 당장 전쟁을 하자는 강경파와 호치민의 협상능력에 회의를 느낀 사람들이 늘어났다. 게다가 프랑스 군대는 점점 더 많이 베트남으로 들어와 시시각각 베트남을 위협하고 있었다.
 
일부 강경파들은 프랑스와 당장 싸우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호치민은 지금은 세력이 너무 약하니 냉정을 찾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호소가 먹혀 들어가지 않자 그는 화가 나서 이렇게 외쳤다.
 
중국이 계속 주둔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요? 당신들은 우리들의 역사를 잊고 있소? 중국은 우리나라에 한 번 들어오면 1천년씩 떠나지 않았소. 하지만 프랑스는 단기간 있을 수밖에 없소. 결국 그들은 떠날 것이요. 평생 중국인의 똥을 먹는 것 보다는 프랑스인의 똥 냄새를 잠시 맡는 게 낫소.” (김이은, 베트남의 호아저씨, 호치민, 자음과 모음, 2013, p 135)
 
#5. 194636일에 호치민과 프랑스 대표 생트니는 결국 합의안에 서명했다. 호치민은 합의안에 독립이라는 말을 포함시키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베트남의 자치원칙을 프랑스가 인정할 것이라는 조항을 넣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 아울러 베트남은 북부에서 철수하는 중국군 대신 프랑스군 15천명의 주둔을 허용했다. 호치민으로서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현실적인 타협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합의 소식이 하노이의 신문에 실렸다. 사람들은 놀라기도 하고 일부는 분노를 터트렸다. 심지어 호치민을 반역자라고 부르기까지 하였다.
 
사태가 심각하자, 당 지도부는 하노이 시립극장 앞에서 대중집회를 열어 성난 군중의 설득에 나섰다. 먼저 국방장관 보 응우옌 지압이 합의의 당위성을 설명하였다. 그 후 몇 명이 연설을 한 뒤, 호치민이 짤막한 연설을 했다.
 
우리나라는 19458월에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강대국 중 단 한 나라도 우리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프랑스와의 합의는 우리가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국제무대에서의 입지를 강화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합의서대로 15천명의 프랑스군이 5년간 주둔할 것입니다. 이들은 점차 베트남에서 철수 할 것입니다. 5년 안에 독립을 달성할 수 있는데 왜 50, 100만 명의 목숨을 희생시켜야 합니까? 우리는 냉정을 유지하고 규율을 지키며, 통일과 단결을 강화해야 합니다.”
 
연설을 끝내면서 호치민은 단호한 어조로 베트남 국민에게 약속하였다.
 
나 호치민은 평생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여러분과 함께 싸워 왔습니다. 나는 조국을 배반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호치민 지음 · 배기현 옮김, 호치민 식민주의를 타도하라, 프레시안 북, 2009, p 27 )
 
(연재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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