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재주꾼 51. 남구 주민극단 '숲'
우리동네 재주꾼 51. 남구 주민극단 '숲'
  • 박창배 수습기자
  • 승인 2016.05.25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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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이 배우, 배우가 주민

▲ 양림동 주민센터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 5시,금요일 11시에 주민극단 '숲'은 연습 중이다.
한 작품을 무대 위에 올리기 위해 단원들이 1년간 연습을 하는 곳이 있다. 예술이란 전문적인 예술가만이 누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주민들이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아리가 있어 찾았다.

양림동 주민센터에서는 목요일 오후 5시, 금요일 오전 11시에 아마추어 배우(?)들이 모여 연극연습이 한창이다. 오전반, 오후반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주민들로 이루어진 남구 주민극단 ‘숲’단원들이다.

오전반 14명, 오후반 10명이나 참석하는 주민극단 '숲'은 연극에 관심만 있었지 전혀 연극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로 구성된 극단이다. 직장을 다녀 오전에 나오기 힘들면 오후반에서 연습하고, 오전이 시간이 되면 오전반에 나와서 연극 연습을 한다. 그래서 한 작품을 소화해서 무대위에 올리는데 1년이라는 기간이 걸린다.

그리고 산전수전을 다 겪은 주민들이라 경험에서 묻어 나오는 연기는 신선한 감동을 준다. 2014년 창단되어 그 해 11월 궁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한 ‘굿닥터’는 이렇게 해서 탄생됐다.

▲ 남구 주민극단 '숲'은 굿닥터를 궁동예술극장에서 초연했다.

정승채 단장은 “굿닥터를 공연하는데 나레이션을 맡아 설명을 해주는 분이 계셨어요. 그 분은 대본만 읽으면 됐거든요”며 제1회 정기공연을 회상하면서 말을 이어간다. “재채기라는 단막극을 공연하는데 연극 내용 중 주인공이 죽는 장면이 나와요. 근데 나레이터분이 갑자기 우시는 거예요. 실제 공연 중인데 갑자기 울면서 공연을 했던 분도 계셨어요. 공연 끝나고 그 분이 그 때 당시 감정이입이 되어 본인이 직접 죽는 줄 알았다고 말하더군요”라며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주었다.

정 단장은 “우리 단원들은 주부들이 많은데 가정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여기서 푼다”고 했다. “남편한테 받은 스트레스를 역할극으로 바꿔서 연기하기도 한다”면서 “항상 을(乙)로만 살던 사람이 갑(甲)이 되고 싶어서 연극 단원으로 가입한 사람도 있다”고 귀띔해준다.

주민극단 ‘숲’은 주민들이 배우가 되어 연극을 하는 곳이라 부담감이 적다. 작년 10월에는 굿모닝양림축제에 초대되어 ‘흥보가 기가막혀’라는 작품을 선보일 정도로 실력은 정평이 나있다. 그 해 11월에는 제1회 시민연극제에서 이 작품으로 우수상을 받았다.

▲ 놀부전을 새롭게 해석해 낸 '흥보가 기가막혀' 연습 장면

올해에도 10월 30일 일요일 저녁 7시에 연바람소극장에서 광주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연극제에 ‘사평역’을 선뵐 예정이고, 11월 11일에는 빛고을 국악전수관에서 열릴 시민연극제 오프닝 공연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공연할 예정이다.

그런데, 아직 배역이 정해지지 않았다. 올해 새로 연출을 맡은 연출가 이정대 씨는 “연극 관련 공부를 하고 대본을 받아서 읽다보면 자기가 맡고 싶다던지 자기 자신을 투영한 역할이 있을거다”면서 “직접 캐스팅해서 역할을 부여하면 연극을 편하게 연습할 수는 있지만 사골이 진하게 우러나오는 맛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참 '숲'다운 발상인 듯하다. 나무만 보는 것이 아니라 넓은 숲을 보는 것이 단원이나 감독이나 마찬가지인 듯싶다. 그래서 왜 ‘숲’으로 극단명을 지었냐고 물었더니 숲속에 가면 맑은 마음도 가질 수 있고 갖가지 동식물이 어울릴 수도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힐링’할 수 있다는 것 아니냐는 답이다.

피톤치드가 나와서 삼림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살아보지 못한 삶도 살아보고 전혀 다른 내 모습도 찾아 볼 수도 있는 연극이 힐링자체가 아니냐는 것이다.

1대 단장이었던 이소우 단원은 “연극 연습하러 갈 시간을 기다리면서 받는 설레임, 대사를 못 외운다든지 연기를 못 할때의 긴장감,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모여 있으니 애인 같은 곳이다”며 주민극단 숲을 설명했다.

3년간 지나다니면서 연극단원 모집 프랑카드만 보다가 이제야 단원으로 정식 등록하게 된 김선영 단원은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가 연극해보기였다”면서 “이번에 용기를 내어 대학 때 연극을 하고 싶었지만 전라도 사투리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연극을 죽기 전에 해보게 되어 꿈이 이루어지는 곳이다”고 말했다.

1주일에 한번 중앙여고 동창모임을 한다는 박형자 단원은 “정년으로 퇴직 후에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곳이나 다름이 없다”면서 “아마추어 연극인으로 최선을 다할 것과 무대에 아무나 설 수 없는데 기회를 갖게 되어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고 했다. 박단원은 동창을 계속 모집 중이다.

고향은 부산인데 일본에서 살다 온지 3년밖에 안되어 지인이 없었다는 김남희 단원은 “진정한 나를 찾는 소통의 방법을 알려준 곳이다”라며 “연극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진정한 내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누구나 예술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예술작품을 만든 예술가는 감동을 받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기에 빛을 발한다. 그 누군가가 곧 예술가이고 누구나 일 수 있다는 것을 주민극단 '숲'에서 배운다.

주민극단 ‘숲’은 열정과 의지가 있는 모든 이들에게 언제나 문을 활짝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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