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이야기들로 가슴 적신다(4)
어머니 이야기들로 가슴 적신다(4)
  • 이홍길 고문
  • 승인 2016.05.24 09: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홍길 고문
앞서 소개한 사할린의 작가 유시욱은 그의 ⌜오호츠크 해의 바람⌟에서 ‘그 크고 거룩하신 어머니’를 기리면서, 그의 어머니가 아버지의 바람으로 해서 괴로운 심정을 잊으시려고, 중국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해 주었던 것을 회상하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통감 7권까지를 읽은 유식한 부인이었다. 삼국지의 조자룡이나 유충열전은 물론 이태백, 주자, 그리고 조선의 김삿갓의 시들도 그의 어린 시절에 어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들이었다.

조선시대에 일반 여성들의 지식수준은 가정생활을 영위하는데, 불편함이 없으면 무방할 정도였는데, 유작가의 어머니는 훨씬 유식한 부인이었던가 싶다. 일반 서민 가정과는 다르게 양반가정에서는 여성을 남편의 내조자로서만이 아니라 가정의 좋은 관리자로, 부모를 잘 봉양하고 자녀를 현명하게 양육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교육을 중시해서 ‘남편은 하늘이고 아내는 땅’이라는 전통시대의 이치에 따른 ‘삼종지도’와 ‘칠거지악’을 가르쳐 일상생활의 예의범절을 익히도록 하였다.

조선 초기 성종의 어머니 소혜왕후는 ⌜내훈⌟을 지어 여성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나라 운명의 흥망은 남자들만의 몫이 아닌 부인들의 역할에도 달려 있어서 여성들도 덕을 쌓고 자신의 품행을 스스로 단련하는 것이 중요함”을 말하였다. 남성들과는 달리 여성들을 위한 공교육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현실에서 부모와 조부모의 행동과 가르침이 배움의 바탕이었고, 주변 친인척의 행동거지를 보고 들으면서 여성들은 성장하였다. 그래서 여성들이 부덕이 결핍되어 그 도리를 다하지 못할 경우 ‘보배움(보고 배우는 것의 줄임말)’이 없다는 비난을 받았고, 남성의 경우는 ‘방목되었다’는 질책을 면하지 못하였다. 혼사를 할 때 신랑 집에서는 문명(問名)이라 하여, 신부 집안의 어머니와 가계를 탐문하여 알아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전통시대가 지나감으로써, 20세기 이후의 남녀는 형해화된 중매·자유연애·결혼상담소를 통해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기가 십상이다. 옛사람들의 기준으로 보면 보배움 없는 여성과 방목된 남성의 결합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시대환경도 만만치 않아서 건강한 주체를 유지하는 것 또한 어렵다. 전통문화는 해체되어 석양의 잔영처럼 그 흐릿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그 생광을 느낄 수 없는데, 현대문화는 아직 안착되지 않아 끊임없이 유동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우리들의 생존터전인 대한민국은 식민시대·분단시대·전쟁시대·산업화시대·민주화시대의 왜곡과 굴절로 점철된 압축근대화를 거치는 동안, 안정된 자아들을 지탱하기 어렵게 되었고 그 자아들이 조성하는 사회 환경 역시 불안감을 내포할 수밖에 없었다. 자녀 학대 살해·부모 살해·여성혐오 살인·묻지마 살인 등에다 삼포·오포·칠포 등의 헬조선 풍경을 배경 삼으면, 이것은 사람 사는 동네가 아니라 차라리 아수라 난장터다고, 골든벨을 울리는 것이 제격이겠다.

5월 21일 광주 시민의 날. 공수부대가 민중의 궐기로 쫓겨난 날을 시민의 날로 삼았다는 사실을 경하하고 있는 마당에서, 여성 시의원들이 ‘오 대한민국’을 열창하여 나라 사랑을 고무하는 것은 좋은데, 그 노래가 전두환의 더럽고 잔악한 치부를 가리는 위장 음악임을 왜 몰랐을까하고 안타까워하면서, ‘오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대한민국은 없다는 사실을 귀띔해 준다.

다시 옛날 여성 교육으로 돌아가 보면, 세종은 효와 열을 핵심으로 삼는 ⌜삼강행실도⌟를 반포하였고, 영조는 ⌜여사서⌟를 번역·간행시켰고, 이황은 ⌜규중요람⌟을, 우암은 ⌜계녀서⌟를 지어서, 여성들의 부덕을 함양토록 하였다. 그러나 그것들은 여성학자들이 지적한대로 어디까지나 가부장제의 남성중심 사회를 위한 방편에 불과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한국의 민속 문화가 전한 바에 의하면, 딸이 시집갈 때 친정아버지는 돌절구를 딸의 시집에 가져다주었다. 그 돌절구는 속이 매끄러워서는 안 된다. 그 둘쑥날쑥한 틈새에 보리쌀이 끼어 갈아지지 않을 만큼 거칠게 조제되어야 했다. 딸에게 휴식과 여가가 없어야 했고, 그것은 부덕 함양의 인내심 공부였다. 턱도 없는 부덕교육은 결단이 난 여성해방의 현대에 왔는데도, 총체적 인간 질곡의 정치·사회·경제의 왜곡현상은 날로 더해가고 있다. 이제 불가불 새판을 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헌판을 용납한 것도 우리였고, 새판을 짜는 것도 우리일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 새판 짜기에 나섭시다.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