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역사를 만나다(1) 지호로②
길 위에서 역사를 만나다(1) 지호로②
  • 박용구 기자
  • 승인 2016.05.19 1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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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동계천 따라 화전놀이 갔던 길

지난해 <시민의소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지역공동체캠페인 사업으로 ‘함께 길을 걸어요’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도로명 홍보에 나선 바 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시민의소리>는 광주광역시 도로명 중에 역사적 인물의 이름이나 호를 따서 명명된 도로명들이 많다는 사실과 함께 왜 이러한 이름의 도로명이 생겨났는지를 모르는 시민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시민의소리>는 올해 다시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공동체캠페인 지원사업으로 ‘길 위에서 역사를 만나다’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지난해 보도를 마친 20개 구간을 제외하고 역사적 인물의 이름이나 호를 따서 명명된 20개 구간을 중심으로 역사적 인물소개, 명명된 의미, 도로의 현주소, 주민 인터뷰 등을 밀착 취재해 이를 널리 알리고자 한다./편집자주

지호로는 조선시대 초 문인이었던 이선제(李先齊) 선생의 호 필문(畢門)을 따서 명명된 필문대로에서 지산유원지 가는 길 초입에서 시작해 무등산관광호텔과 신양파크호텔을 조금 지나 끝나는 2차로다. 사진은 지호로 시작 지점
지호로가 시작하는 지점은 예전에 ‘똠방사거리’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이름이 붙게 된 이유에 대해 주민 정모 씨는 “옛날 이 사거리에 ‘똠방당구장’이 있었는데, 이 이름을 따서 한때 이렇게 불렀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이 사거리에 신호위반 및 과속 단속 카메라가 있어 교통사고가 잦은데, 경찰에 사고 신고라도 할라치면 어디 사거리라고 해야 하는 지 통 모르겠다”면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사거리 명칭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사거리에 서면 지호로 1~234번지라고 적혀 있는 작은 안내판과 광주지산동오층석탑, 오지호 가옥을 알려주는 큰 안내판 볼 수 있다.

이곳에서부터 시작하는 지호로는 대부분 지산동을 경유한다. 지산동은 무등산에서 뻗어 내려온 향로봉을 중심으로 남서쪽의 깃대봉 능선과 북쪽의 장원봉 사이에 넓게 열린 계곡부에 형성된 마을이다.

단사공원에 설치된 지산동의 유래에 따르면 지산동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500여 년 전 조선조 초기에 하동정씨의 중시조인 정지 장군이 국동마을(신양파크호텔 부근)에 터를 잡은 때부터다. 50여년 후 순흥안씨가 들어오면서부터 하동정씨와 중심을 이루며 본격적으로 마을들이 형성되었고 더욱 번영하게 되었다. 옛날에는 지산동을 편방, 단사동, 지막리로 부르기도 하였다.

안내판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조금 오르면 광주지산동우체국이 나온다. 광주지산동우체국은 지호로 9번지다. 좌우로는 원룸과 고시촌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인근에 조선대학교가 있기 때문이다. 1980~90년대에는 자취방과 하숙집이 많이 있었는데,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이들이 원룸과 고시촌으로 바뀌었다.

동계천 위에 놓인 지호로

조금 더 올라가니 지어진 지 35년 정도 된 무등목욕탕이 있다. 이곳에 잠시 들러 한 주민에게 지호로에 대해 물으니 제법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는 “지호로 밑에 동계천이 흐르고 있다. 이 도로는 복개된 도로다”면서 “옛날에는 이 천에서 멱도 감고, 아낙들은 이 물로 빨래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저 위(현재 지산2동주민자치센터 위 삼거리 부근)에 방죽(조그만 저수지)이 있었고, 지산유원지로 가는 길에는 대밭이 있었는데, 저녁에 심부름이라도 갈라치면 무서워 어른이 지나가길 기다려 따라갔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 동네에 터줏대감을 소개시켜주겠다며 기자의 손을 끈다. 이렇게 해서 만난 정종순(82) 씨는 “동계천에서 깨벗고 놀았다. 지금은 원룸이 들어서 있지만, 그곳에 바위도 있었고, 빨래터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또 그는 “순흥안씨들이 딸기를 많이 재배한 것으로 안다. 1950~60년대 지산동 딸기하면 전국적으로 유명했다”면서 “봄날이면 인근 시민들이 화전놀이를 즐기러 많이 왔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지호로는 엄밀히 말해서 동계천을 복개한 도로다. 동계천은 무등산록 서편에서 발원해 동명동으로 흐르고 있다.

이들을 뒤로 하고 좀 더 오르니 지호로는 지산로와 만나고 헤어진다. 그러면서 이 길은 지산2동주민자치센터(지호로 51번지), 현 동산초등학교 앞 옛 복호마을, 동계마을 등을 지나 지산유원지로 향한다.

오지호 가옥은 밤실로 사이에 지호로 81-20, 21, 22번지
지호로로 재조정 필요

오지호 가옥 모습. 오지호 가옥의 도로명 주소는 지호로 81-20, 21, 22번지다.
이곳에서 오래 산 주민들의 말을 종합하면 옛 지산동은 동계천물로 농사를 짓고, 감과 딸기를 재배했던 농촌이었지만 지금은 개발에 밀려 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동계마을 가까이에 이르니 오지호 가옥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나온다. 여기도 지호로이려니 하고 걸어가는데, 도로명 주소가 밤실로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더 들어가니 오지호 가옥이 있다. 오지호 가옥의 도로명 주소는 지호로 81-20, 21, 22번지다.

이에 대해 오지호 화백의 며느리인 이상실(오승윤 화백의 부인) 여사는 “도로명 주소가 처음 지호로가 아닌 밤실로로 되어 있었는데, 구청에 항의를 하자 지호로 지번 중에서 빠진 81-20, 21, 22번지를 얻게 되었다”며 “실제 오지호 화백이 산책을 하거나 시내 중심가로 나갈 때 다니던 길은 밤실로로 되어 있어, 이 길을 지호로로 재조정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6호(1986년 9월 29일)인 이 가옥은 지산동의 옛 딸기밭 아래에 있는 초가집으로 원래는 조선대학교 사택이었다. 조선대학교 교수로서 이곳에 기거했던 오지호 화백이 이후 이를 구입해 1982년 타계하던 때까지 작업에 몰두했던 집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화실로 사용되는 문간채가 있고, 안채는 초가집인데 정면 4칸, 측면 1칸의 전후퇴이며 초가 우진각지붕집이다.

이상실 여사는 "원래는 정면 3칸이었는데 1칸을 달아낸 것이다"고 설명했다. 평면은 1칸반의 부엌과 1칸씩의 방3개로 되어 있고, 배면에는 툇마루와 골방이 있다.

앞마당은 주인의 성품을 대변하듯 화단이 맥문동을 울타리 삼아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고, 뒷뜰 역시 장독대가 단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화실은 6평 남짓한 크기이며 북향에 채광창이 있고, 장마루와 맞배지붕을 한 유럽 스타일의 정통 화실이다.

북향에 채광창을 둔 이유에 대해 서순복 교수(오지호 가옥을 사랑하는 사람들 대표)는 "오지호 화백은 한국의 인상파를 대표하는 화가다. 오 화백은 인물을 그릴 때 동, 서, 남쪽에 창이 있으면 시간에 따른 빛의 변화가 심해 정확한 표현에 방해가 되므로 빛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북쪽에 채광창을 두었다"면서 "오 화백은 대단한 과학적 사고의 소유자였다"고 설명했다.

87년 6월항쟁의 도화선 이한열 열사의 생가도

오지호 가옥을 나와 다시 지호로를 타고 오르니 단사공원이 나온다. 단사공원은 지산동의 옛 지명인 단사동에서 유래했다. 이곳에서 지산동의 유래, 지산동의 어제와 오늘, 오지호 화백과 지호로로 명명된 이유 등을 설명하는 안내판을 볼 수 있어 매우 흐뭇했다.

또 이곳에서는 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이한열 열사의 생가도 만나 볼 수 있다.

단사공원을 뒤로 하고 오르니 지산유원지가 나온다. 지산유원지는 무등산 향로봉(364m) 기슭에 자리한 유원지다.

그 옛날, 딸기밭과 보리밭이 널려있었고, 불과 20여 년 전만해도 놀이공원으로 명성을 떨친 곳이다. 지금도 유원지 최정상부인 향로봉에는 전망대인 팔각정이 있어 시내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고, 전망대와 유원지에는 리프트카가 운행되며 대형골프연습장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수영장을 비롯해 바이킹, 범퍼카, 우주전투기, 뮤직익스프레스 등 놀이시설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현재 이곳은 개발 바람이 불어 식당들과 커피숍들로 촘촘히 채워져 있고, 신양파크호텔과 무등산관광호텔이 자리 잡고 있다.

‘무등산보리밥거리’에서 내려다 본 지호로 모습
또한 이곳에는 ‘무등산보리밥거리’가 형성되어 있어 광주의 5미(味) 중 하나인 보리밥을 맛볼 수 있다.

이렇게 달려온 지호로는 신양파크호텔을 지나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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