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맨부커상’을 품다
「채식주의자」 ‘맨부커상’을 품다
  • 김병욱 문학평론가, 충남대학교 국문과 명예교수
  • 승인 2016.05.1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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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욱 문학평론가, 충남대학교 국문과 명예교수

2016년 5월 16일은 한국문단의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진 날이다. 이곳 광주에서 유년기를 보낸 한강(1970~ )이 「채식주의자」로 2016년 맨부커상 국제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어 그 소식이 TV와 신문지상의 빅뉴스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강은 아직도 장흥에 살면서 나이가 많으면서도 매년 장편소설 한 권씩 꾸준히 출간하는 소설가 한승원의 딸이다. 「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2004),「몽고반점」(2004), 「나무불꽃」(2005) 등 세 편의 중편소설이 연작으로 구성된 창작집(2007년 10월 창비)이다. 이번의 수상작은 책 제명이기도한 중편소설 「채식주의자」인 모양이다. 벌써 서점에 나가있는 재고는 동이 났고, 창비사는 새로 10만부를 더 찍는다니 한국문단과 출판계는 경사가 아닐 수 없다.

맨부커상은 1969년 영국의 식품회사 부커그룹이 제정해 처음에는 부커상으로 불리다 2002년 맨그룹으로 후원사가 바뀌면서 맨부커상이라는 이름이 되었다. 이 상은 본상과 국제상으로 나뉘고, 이번에 한강은 국제상 부문에서 수상했는데, 2005년 이후 원작자와 번역자가 공동으로 수상하는 특징있는 문학상이다. 이 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의 콩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이다. 아마 한국인이 열광하는 것은 이 다음엔 숙원인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훨씬 많아졌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는 노벨상이 중학교 학생이 아령운동 3개월 후 알통을 뽐내는 것으로, 아니면 경제개발 5개년 계획같이 목표를 세우고 밀어붙이면 되는 것인 줄 착각하고 있다. 이 번의 수상도 탁월한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영어권과 불어권의 좋은 번역자를 찾아내고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 문단의 몇몇 소설가들은 노벨상 수상에 손색이 없는 작가이기도 하다.

수영의 박태환, 피겨의 김연아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본인의 부단한 자기 연마의 결과이듯 작가 또한 그렇다. 우리의 고급문화의 수준도 각 방면에서 비약적 발전을 하고 있다.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은 작품의 양이나 질적 수준에서 이미 한국 최고의 작가 중의 하나다. 다만 그의 소설은 소위 전라도 토속어를 많이 구사하기 때문에 외국어로 번역하려면 이른바 표준어로 번역해야하는 또 하나의 어려움이 있다. 그의 중기의 장편소설 「바다의 뿔」은 좋은 번역자를 만난다면 충분히 노벨문학상에 도전할 만한 작품이다. 무녀의 성무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작품 내용은 범세계적 신화의 세계인 동시에 물과 여자의 생명력 상징은 세계인의 공감을 얻기에도 좋은 것이다. 한강은 아버지에게서 문학적 자산을 물려받아 현대인의 세련된 언어로 자신의 세계를 스토리텔링해 나간다고 할 수 있다.

내 개인적 욕심으로는 2014년 창비에서 출간되어 국내에서도 좋은 평가(만해상 수상)를 받은 「소년이 온다」가 수상작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소설은 5.18을 다룬 장편소설 중 빼어난 작품이다.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어린 소년의 눈으로 보고 이야기 들으니 분노를 새삼스럽게 새록새록 솟아나게 한다. 5.18 36주년을 맞아 「소년이 온다」가 수상되었다면 광주민주화운동이 전 세계인에게 새롭게 조명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인데 못내 아쉽다. 야구에서 만루에서 단타를 때리면 최소한 두 점이 나올 수 있지만, 2사후 3루타는 그것뿐이고, 다음 타자가 죽으면 무득점이 된다. 서러운 광주의 5월에「소년이 온다」가 수상작이었다면 광주의 서러움을 좀 누그려뜨렸을 것을.

소설이란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는 서술자의 말과 작중 인물이 짜낸 하나의 교직물이다.「채식주의자」는 몇 번을 읽어야 작가의 진정성을 알아차릴 수 있는 작품이다. 우리는 자기와 다르다고 알게 모르게 무언의 폭력을 가한다. 이 세상 사람 모두가 다 똑같다면 그것은 구더기나 괴물의 세상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남이 자신을 닮기를 바란다. 「채식주의자」는 이러한 우리에게 조용한 경고를 울려주는 작품으로 찔래순을 깨무는 그런 맛이 나는 작품이다.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며 아울러 축하의 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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