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약 장수의 외침소리
쥐약 장수의 외침소리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6.04.27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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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은 꼭 그 사람이 나타났다. 언덕빼기 한 길을 따라 내려오며 그 사람은 외쳐댔다. “쥐약이오, 쥐약. 사려면 사고 말려면 마시오. 누가 답답한가 봅시다.” 빛바랜 카키색 옷을 걸치고 한 손으로는 목발을 짚고 불편한 몸을 이끌며 쥐약을 사라는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몇 십 년 전 그 쥐약장수가 큰소리로 외쳐대던 말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그 사람의 얼굴까지도 생각난다. 천정에서는 밤에 쥐들이 달리기대회를 열었다. 달리기 팀이 여럿인가 보았다. 하도 지긋지긋해서 막대기로 천정을 쿡, 쿡, 쑤시면 쥐들이 잠시 달리기 시합을 중단했다. 그러던 시절이라 쥐약을 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더러는 그 쥐약장수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쥐떼만을 놓고 본다면 끔직한 날들이었다. 쥐약을 놓아도 그때뿐이었다. 살아남은 쥐들은 여전히 사람들을 성가시게 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시절은 그래도 살만했다라고 하고 싶다. 지금처럼 먹고 사느라 심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 천정을 무대로 밤마다 달리기를 하는 쥐들이 좀 문제이긴 했지만. 집안에 숨은 도둑처럼 우리와 함께 살던 쥐들은 쥐약에는 살아남았지만 아파트 시대로 전환하면서 살 터전을 잃고 사라졌다.

야생쥐로 변해 집 밖 들에서 산에서 사는지는 모르지만 쥐를 못 본 지가 오래되었다. 아파트에는 살지 못하니 혹시 쓰레기통을 뒤지는 쥐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본 적은 없다. 생활반경에서 쥐가 사라졌다는 것은 위생상태가 그만큼 좋아졌다는 것을 뜻한다. 아파트 안에는 벌레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지만 사람살이는 쥐약장수가 쥐약 사라며 소리치던 시절보다 더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

모든 사람들은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돈 생각을 하며 산다. 어디서 무엇을 해서 돈을 벌까, 더 벌까 하고 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 치열한 경주를 한다. 쥐들의 달리기는 먹고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재미와 오락이었을 것이다.

미래 세대인 아이들은 오늘 더 좋지 않은 환경에 내던져져 있다. 유아원-유치원-초중고등학교의 시스템에 들어가면서부터 거의 ‘아동학대’ 수준의 영어, 수학, 음악 같은 학습 경쟁에 내몰린다. 아이들은 날아다니는 나비를 볼 시간이 없다. 꿩이 울고, 뻐꾸기가 우는 숲의 초대장도 받지 못한다. 그 맑은 눈으로 학원이나 학교에서 풀려나오면 게임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본다.

대학에 들어간다고 해서 더 나아지지 않는다. 취업준비에 내몰려 머리를 싸맨다. 대체 자기가 누구이며,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그런 인문학적 물음을 물어볼 시간도, 대답할 시간도 없이 그저 경쟁에 내던져진다. 직장에 들어갔다고 해도 더 나아질 것이 없다. 아이들 키우고, 집장만하느라 숨 돌릴 여유가 없다. 그렇게 어언 50대에 들어서면 퇴직이 기다린다. 생업에서 퇴직하면 여유가 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노후 대책이라는 삭풍이 부는 막막한 광야에 내팽개쳐진다.

도무지 행복해질 겨를이 없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또 내달려야 한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고 줄창 달리기만 한다. 그것이 오늘날 한국인의 생애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람을 들들 볶는 나라, 그것이 한국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밤낮으로 달리지 않으면 안된다. 천정에서 밤마다 달리기 시합을 하던 쥐들처럼.

아니, 쥐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달리기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쥐약을 먹고 때로 죽기도 했지만 그들끼리는신나게 축제 같은 놀이를 한 것이었다. 우리는 오직 먹고 살기 위해서 달린다. 쥐들 일가가 천정을 무대로 사람과 함께 살던 그 열악한 시절이 왜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분명 지금이 그 시절보다는 여러 면에서 월등 나은데도 말이다.

오염된 공기, 중국제 식품재료, 안심하고 마실 수 없는 수돗물, 엘리베이터를 한참 기다려야 하는 초고층아파트, 눅눅하고 음습한 지하철, 시도 때도 없이 불러대는 휴대폰, 헤아려보면 쥐약장수가 소리치며 쥐약을 사라던 그 시절이 되레 그립기까지 하다. 세월은 옛날로 갈 수도 없고, 우리는 행복으로부터 너무 멀리 와버렸다.

나는 쥐약장수의 외침 소리를 이렇게 바꾸어 소리치고 싶다.
“삶이오, 삶. 사려면 사고 말려면 마시오. 누가 답답한가 봅시다.” 물론 여기서 삶이란 ‘진짜 삶’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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