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 이후’
‘4.13 총선 이후’
  • 정규철 인문학연구소 학여울 대표
  • 승인 2016.04.20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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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규철 인문학연구소 학여울 대표

‘합(合)하면 이기고 흩어지면 패한다’는 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이치다. 1903년 3월 여순감옥에서 안중근 의사께서 초(草)한 󰡔동양평화론󰡕 서두의 글이다. 이때 안 의사의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보기 민망하리만큼 초췌하여 가히 충격적이었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이 영정을 서재에 모셔 놓고 조석으로 참배하면서 국권침탈과 동양평화를 유린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선생의 위대한 애국정신을 기리곤 한다.

예전 같으면 뜰에 핀 동백을 보면서 강요배 화백이 그린 ‘제주 4.3사건’을 주제로 한 「동백꽃 지다」를 떠올리면서 해방공간에서 빚어졌던 흉폭한 학살 만행과 분단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동포들의 애환을 곱씹었을 터인데, 지금은 왠지 울분 반, 절망 반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하여 마음을 추스르기가 힘들다.

조간신문을 펼쳐놓고 보니 4.13총선의 결과를 놓고 여론이 분분함을 알 수 있겠다. 선거에 임했던 당사자들이야 희비가 엇갈렸겠지만 그걸 보는 유권자의 입장은 다르다. 4.13총선으로 말미암아 표출된 일련의 정치현상을 놓고 향후 전개될 정치상황을 가늠해 보는 것은 민주시민으로서 대단히 뜻 깊은 일이다. 누구나 공감하는 일이겠지만 하나의 사안을 놓고 이를 종합하고 분석하면서 평가하는 일은 당대인의 책무이자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다.

한때 ‘조·중·동’이라 하여 중앙일간지 등의 공정보도 여부를 놓고 여론이 비등했던 적도 있었지만, 이번 선거기간 동안에는 대체적으로 공정한 보도가 이루어진 걸로 보이며, 특히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의 진행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렇다고 한결같이 모든 계층의 유권자의 욕구를 만족시켜줬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고, 일부 매체의 석연치 않은 해석에는 선뜻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았다.

솔직히 우리지역의 유권자들이 기대했던 총선에 대한 바람은 독선과 아집, 그리고 오만의 정치를 심판함으로써 우리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자는 것이 제1목표였다. 이명박 정권을 거쳐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4대강 사업으로 멀쩡했던 강물이 썩고, 세월호 사건 같은 대형사고와 실정의 연속으로 민생은 참담해지다 못해 가히 절망적인 데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복병이 우리의 기대를 가로막았다. 선거를 앞두고 지역정가가 요동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혼란에 빠져들었고 도대체 정당의 존립의미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책략과 공작으로 선거가 시작되기도 전에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수 십 년 동안 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에 안주하면서 특혜를 누렸던 자들이 하나로 굳게 뭉쳐 전열을 가다듬어도 역부족일 터인데 적전분열로 말미암아 큰 혼란에 빠졌고, 유권자들은 마냥 어리둥절하면서 넋을 잃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 할까. 파란색 옷을 녹색으로 갈아입고 마치 뉴 리더라도 되는 양 기세등등하게 유권자들을 현혹했는가 하면, 올바른 주권의식을 농락하려 들었다.

총선을 앞두고 전열을 가다듬어야 할 순간에 당을 떠나 분당을 획책한 일은 정치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당과 탈당의 와중에서도 ‘비대위’를 꾸린 더불어민주당이 내건 ‘정권심판론’은 정권교체를 갈망하는 모든 국민에게 대단한 설득력을 얻었으며, 총선승리의 촉매제가 되었음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지역에 행사한 더불어민주당의 공천까지 적극 두둔할 생각은 없다. 대안으로 제시한 공천이 유권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비례대표제의 목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인지, 자당의 비상대책위원장 상위 공천을 ‘셀프공천’이라고 비하한 천박성이 당의 위상을 추락시키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학의 태두가 아니던가.

좀 더 분석을 해보아야 되겠지만 안철수가 주도한 신당에 천정배가 합류하여 호남민심을 흔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지역을 제외한 전국에서 야당의 승리를 가져왔던 것은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야당 분열로 말미암아 전국적으로 새누리당에 내어준 의석수가 국민의당이 지역에서 얻은 25석보다 더 많다는 결과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지난 선거를 뒤돌아보면 우리 지방의 선거 풍토는 파란색을 녹색으로 갈아입은 구태 정치인들에 의하여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혼돈에 빠졌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만큼 유권자들의 건전한 정치의식을 과연 누가 어떻게 오도했는지 좀 더 깊이 있게 파헤쳐볼 필요를 느낀다.

그들의 논리인즉슨 ‘친노패권’ 청산이라는 지극히 소아적인 당 내분에서 기인한 것일 뿐, 정작 선거 이슈가 되어야 할 정권심판이나 민생의 안정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정치적으로 대의명분이 있으려면 최소한 보수정권의 실정으로 말미암은 잃어버린 8년을 심판하겠다는 구체적인 이슈를 들고 나왔어야 한다. 그래야 만분의 일이라도 정당성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집권당과 싸우는 더불어민주당을 공격하기에만 열을 올리는가 하면 정권교체라는 국민적 여망에 따라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동지에게 총을 겨눈 격이었다.

선거결과만 놓고 생각해 볼 때 국민의당이 호남 유권자의 쏠림현상에 힘입어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으나 긴 안목으로 본다면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 일시적 정치포말현상 정도라고 할까 그런 느낌이다. 한국 정당사에서 군소 정당이 집권을 했거나 성공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치적 비전이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해서 오랜 산고 끝에 태어난 정당도 아니고, 선거일 달포 여를 남겨놓고 급조된 정당으로 그 끝은 불을 보듯 환하다. 3당 체제 하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줄 타는 삐에로처럼 곡예를 펼칠 수도 있겠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본다면 불안하고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3당이 할 수 있는 정치적 대안이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 한편으로는 기대도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하다.

다시 선거 국면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면, 주적은 새누리당인데 엊그제까지 몸담았던 더불어민주당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충청도 ‘자민련’이란 제3당론을 들고 나와 이념도 명분도 없는 분풀이 선거전 양상으로 몰고 간 게 사실이다. 보수정권 8년 도탄에 빠진 민생과 남북관계의 파탄을 심판해야 할 시점에서 본질적인 문제에 관한 초점을 흐리면서 6.15선언이나 10.4 남북합의 이행, 한·일간의 위안부 문제, 세월호 사건 등 정작 중요한 이슈에 관해서는 외면한 채, 호남에 기반을 두고 있는 제1야당 공격에만 매달렸으니 그 결과를 놓고 뜻 있는 사람들은 실망과 통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정권교체를 열망한 모든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채 자당의 정치야욕을 충족시키는 데에만 치우쳤다는 점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공당으로서 국민의 공익에도 어긋나는 처사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민주와 정의를 숭상해온 우리지역 유권자들의 뜻과도 정면 배치되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정치행태였다. ‘빈대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우는’ 어리석은 바보짓이며 호남인을 욕보이는 치졸한 행위였다.

지난 4.13총선에서 전국에서 유일하게 우리지역의 국민의당 쏠림현상은 한마디로 부도덕한 정상배들에 의해 저질러진 저급한 코미디에 지나지 않는다. 왜 그러한지는 당사자 스스로 자문해 보면 잘 알 것이다. 선거가 끝나고 그들이 망월동을 참배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광주는 더 이상 무슨 성지나, 민주·인권·평화 도시이기를 자처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민족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안중근 의사나 오월영령들의 숭고한 우국충정에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정의의 화신일 뿐이다. 혁명과정에서 동지의 가슴에 총을 겨누는 것은 금물이지만, 배신자는 가차 없이 처단하는 것이 기본 사상이다. 일찍이 맹자는 “백성을 해치는 군주는 군주가 아닌 일개 필부이기에 ‘시’해도 무방하다”고 했다.

시의적으로 보나 당면한 정치현상을 놓고 볼 때 제3당론을 편 것이 적절했는지 필자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어리석은 자의 소견으로는 무슨 뚱딴지 같은 ‘궤변’인가 그랬다. 나쁜 정권을 갈아치워야 할 전초전 성격을 띤 선거를 앞에 두고 동지 간에 힘을 모아 통합의 정치,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내분을 수습하고 정치생명을 걸고 전의를 불태워야 했는데, 상황은 그와 반대였지 않은가. 정치가로 대성하려거든 모름지기 지조(志操)를 생명으로 알고 겨레 앞에 맹세코 옳고 떳떳하게 행동해야 할 것이다. 지조를 품은 사람은 부정, 불의를 행하지 않고 부질없는 명리(名利)를 탐내지도 않는다. 기회적절하게 변신하고 태도를 표변하는 야누스적 이중인격 행태는 자신을 업신여기는 무도한 시정잡배나 할 짓이다. 광주시민은 정상배들에게 농락당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 천년만년 갈 것 같았던 이승만 독재정권도 4.19혁명으로 깨졌고,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도 종신집권을 획책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는가.

광주와 광주시민은 수난의 역사에서 가시관을 쓰고 순교자적인 삶을 지향하는 동네도, 그런 시민들도 아니다. 오로지 민족의 염원인 민주·평화·통일의 전진기지로서 동서가 하나 되고 남북이 하나 되는 그날을 향해 일로매진할 뿐이다. 이 나라 민주주의의 최후에 보루로서 남북통일과 정권교체를 염원하는 모든 국민과 궤를 같이 하고 뜻을 함께하면서 어깨 걸고 나아가고자 자나 깨나 노심초사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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