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바늘을 돌리는 손
시계 바늘을 돌리는 손
  • 문틈 시인/ 시민기자
  • 승인 2016.04.2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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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면 금방 점심때가 오고 저녁때가 다가온다. 잠시 무슨 일을 하다가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면 아까 작은 시계 바늘이 새로 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벌써 네 시나 다섯 시에 와 있다. 내가 시계를 바라보지 않고 일하는 동안 누가 시계 바늘을 슬그머니 돌려놓는 것만 같다.

하루도 아니고 이틀도 아니고 날마다 시계 바늘을 돌리는 안 보이는 손이 있어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시계는 톡, 톡, 하고 소리를 낸다. 그 작은 소리는 내 귀에 안 보이는 손이 시간을 썰어내는 소리처럼 들린다. 아마도 시간은 어딘가에 썰어놓은 무우채처럼 수북히 쟁여 있을 법하다. 누가 하루는 길고 일 년은 짧다고 하던데 정말 시간은 항상 무서운 속도로 지나감을 실감한다.

어떤 때는 너무나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통에 하던 일을 다 추스르지 못할 때가 있다. 저녁에 침대에 누워 가만히 생각해보면 셰익스피어가 ‘인간은 세월의 노리개’라고 한 말이 딱 들어맞는 표현같이 느껴진다. 모든 존재는 시간이라는 뜨거운 프라이팬에 볶임을 당하는 요리감이다라고 나는 쓴다.

시간은 ‘잠깐 기다리세요.“하고는 어딘가로 마구 질주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본다. 요 며칠 동안 매일 대처에 나갈 일이 있었다. 첫날은 길가의 나뭇가지들에 여린 잎들이 나오는가 싶더니 다음날 가보니 잎들이 더 커져 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색깔도 짙푸르러지고 제법 잎새다운 모양으로 무성해질 차비를 하고 있다.

시시각각 이런 변화의 모습이 마치 내게 잠깐 기다리세요, 하고는 요술쟁이가 보자기에서 비둘기, 공, 국기를 펴보이듯 확, 확,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워낙 시간이 빨리 지나가므로 어떤 때는 겁이 날 때가 있다. 좀 속도를 늦추었으면 하는 엉뚱한 바람을 가질 때도 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옛사람들은 말한다. 시간의 속성을 이보다 더 간명하게 표현할 다른 말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기도를 하면서 신에게 시간의 속도를 좀 늦추어달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시간을 아껴 쓰면 그것이 곧 시간의 속도를 제어하는 효과를 내지 않을까. 지금으로서는 이 대책 말고는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그런데 대체 시간을 아껴 쓴다고 했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답일까. 나는 모른다. 그리고 아껴 쓴다고 해도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더욱더 모른다. 아는 신부님과 천주교 공동묘지를 간 일이 있다. 묘비에 작고한 신부들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저 신부는 나하고 동기인데 세상을 떠난 지 벌써 8년이나 되었어요.” 그런 식으로 말을 이어간다.

그러면서 “그런데 저 신부님보다 나는 8년을 더 오래 살면서도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요.”하고 탄식했다. 회사 출근 때 지각하지 않으려고 택시를 타고 가던 일, 사람들과의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한 시간이나 먼저 당도해 기다리던 일, 뭐 그렇게 시간에 속박되어 지내온 일들이 떠오른다. 그렇건만 신부님 말에서 나는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정말이지 시간이 굽이치며 흘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시간의 소리는 들릴 리 없지만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너무나 빠르게, 너무나 안타깝게, 너무나 아쉽게 시간은 가버렸다. 다가오는 시간들을 요긴하게 써야지, 다짐하지만 시계바늘은 그러거나 말거나 안 보이는 손이 돌리는 대로 야멸차게 돌아간다.

벽시계 쪽으로 가서 그 안보이는 손을 탁, 후려치고 싶다. 냉큼 물러서지 못할까, 하고 시계 바늘을 잠시 멈추게 말이다. 시계 바늘을 보고 있으면 시계는 내게 말하는 듯하다. 무엇인가를 하세요, 가만히 있어도 시간이 지나가고, 무엇인가를 해도 시간이 지나가니,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하세요. 분명히 시간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존경하는 분이 병상으로 찾아갈 때마다 늘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할 일이 참 많은데 말이야.” 시계 바늘이 쉼 없이 돌아가는 것에 대한 인간의 초조, 불안, 아쉬움에서 나온 그 이상의 말이다. 그분이 한 그 말은 모든 죽은 이들의 묘비명에 새길 말이 아닐까. 오늘 하루도 금세 저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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