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수용소 소견(1)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견(1)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6.04.18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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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1. 4월10일 일요일 오전, 부슬거리는 비를 맞으며 유대인 학살의 상징인 아우슈비츠(Auschwitz) 수용소를 방문하였다. 2007년 9월9일 통일교육원 연수 방문이후 두 번째이다. 그날도 일요일이었는데 우중충하게 비가 내렸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바르샤바에서 약 300km, 크라쿠프에서 서쪽으로 약 70km 떨어져 있다. 폴란드 옛 수도 크라쿠프에서 하루 밤을 지낸 패키지여행 일행 32명은 9시반경에 수용소 입구에 도착하였다.

수용소에 들어가기 위해 보안 검사부터 받았다. 인솔 가이드는 경건한 관람, 즉 웃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2. ‘ARBEIT MACHT FREI (노동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

제1수용소로 들어가는 정문 위에 붙어 있는 그 유명한 문구를 보았다.

▲ ARBEIT MACHT FREI (노동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

그런데 자세히 보니 ARBEIT의 세 번째 알파벳 'B' 모양이 조금 이상하다. 위아래가 뒤집힌 (upside-down) B이다. B글자가 거꾸로 된 것은 유대인 수감자들이 저항의 의미로 B자를 이렇게 만들었단다. 유대인들은 이 말이 거짓이며 기만이라는 것에 반항하고자 그리했던 것이다.

사실 유대인들은 아우슈비츠에 도착하자마자 선별되어 노동 부적합자는 가스실로 직행했다. 여자와 고령자가 그랬다. 노동력이 있는 자도 가혹한 노동착취를 당하였고, 주어진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거나 일 할 수 없는 수용자는 가차 없이 처벌당했다. 강도 높은 노동으로 수용자들은 피골이 상접하고 병들어 갔고 식사는 하루에 한 번, 콩이 들어간 묽은 스프와 빵 한 조각이 전부였다.

또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이 문구가 너무 선명하다. 깨끗이 도색 되어 있다. 9년 전 첫 방문 시는 조금 낡아보였는데. 나중에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2009년 12월에 이 철판이 도난당했다가 다시 찾았단다.(BBC 뉴스) 그래서 지금은 복제판을 걸어놓았고 원본은 박물관에 별도로 보관되어 있단다.

#3. 단체 관람은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전체 28동 중에 4,5,6,7 전시실을 보고 가스실을 구경하는 코스였다.

맨 처음 관람 코스인 제4실은 ‘죽음의 수용소(extermination)’이다. 서양인들은 죽을 4자(死字)를 싫어하는데 굳이 4실로 표시하다니.

▲ 전체 28동중에 4,5,6,7 전시실을 보고 가스실을 구경하는 코스였다. 맨 처음 관람 코스인 제4실은 ‘죽음의 수용소(extermination)’이다. 서양인들은 죽을 4자(死字)를 싫어하는데 굳이 4실로 표시하다니.

입구에서 George Santayana의 글을 보았다. 위에 원문이 적혀 있고 아래에 영문 번역 글이 있다.

▲ 입구에서 George Santayana의 글을 보았다. 위에 원문이 적혀 있고 아래에 영문 번역 글이 있다.

Those who do not remember the past are condemned to repeat it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과거를 되풀이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 글의 번역이 2007년에 필자가 본 것과 다르게 되어 있다.

The one who does not remember history is bound to live
through it again.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다시 한 번 그 역사에 얽매이게 된다.)

▲ Those who do not remember the past are condemned to repeat it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과거를 되풀이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 글의 번역이 2007년에 필자가 본 것과 다르게 되어 있다. The one who does not remember history is bound to livethrough it again.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다시 한 번 그 역사에 얽매이게 된다.)

아픈 역사를 기억하라. 고난과 형극의 과거를 잊지 마라. 망각은 또 다른 방랑의 시작이다. ‘다시는 역사의 아픔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이 경고 글은 너무 찡하다.

문득 최근에 본 영화 ‘귀향’과 ‘동주’가 생각난다. 우리도 일제의 만행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해와 윤동주의 생체 실험을 눈 부릅뜨고 기억하여야 한다.

#4. 1939년 9월, 독일은 기갑사단을 앞세워 폴란드를 침공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었다. 1940년 4월 SS 사령관 하인리히 힘러(Heinrich Himmler)는 오시비엥침의 폴란드 포병부대 지역에 수용소를 지을 것을 지시하였고, 6월17일에 오시비엥침의 독일어 명칭 아우슈비츠의 이름을 붙인 수용소에 유대인이 포함된 폴란드 정치범 728명이 수용되었다.

이어서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확장되었다. 1941년 가을에 아우슈비츠 수용소로부터 3Km 떨어진 곳에 제2수용소 비르케나우(Birkenau) 수용소가 유럽 최대 규모로 만들어졌고, 1942년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부터 6Km 떨어진 곳에 제3수용소 모노비츠 수용소가 건설되었다. 이외에도 47개의 보조 수용소가 조성되었고, 이 세 수용소의 최대인원은 12만 명 이었는데, 8천명의 SS 대원이 상주했다.

 이 글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강제 수용소 입구에 걸려 있었다. 이 문구는 독일의 문헌학자 로렌츠 디펜바흐가 1873년에 노름꾼들이 노동의 가치를 알게 된다는 <노동이 그대를 자유케 하리라> 소설 제목으로 사용한 것이 시초이다.

(연재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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