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피해에 공감하는 ‘첫사람’ 되기
성폭력피해에 공감하는 ‘첫사람’ 되기
  • 김효경 시민기자
  • 승인 2016.04.07 1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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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여성민우회, 성폭력피해생존자 지원사업 진행

‘성폭력’은 얼마나 부정하고 싶은 단어인가. ‘성’의 도덕성, 윤리의식이 강박적인 대한민국 사회에서 ‘성’을 매개로 일어나는 폭력은 가장 파렴치한 범죄, 즉 범죄 중 가장 혐오스러운 범죄로 치부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치 부엌 지하도를 타고 올라온 바퀴벌레를 발견하듯 ‘성폭력’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흔하지 않은 일,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로 생각한다. 그러나 ‘데이트 성폭력’, ‘친족 성폭력’, ‘스토킹’, ‘학내 성폭력’, ‘사이버 성폭력’, ‘직장 내 성희롱’ 등등, 성폭력은 생각보다 아주 가까이 있고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폭력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여성 스스로가 조심해야 하는 것일까. “밤에는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으로 다녀라”, “다리는 벌리고 앉지 말아야지” 등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사회는 성폭력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노력을 강조한다. 또한 “왜 그랬어?”, “걔가 옷을 그렇게 입고 다니더니”라는 등 피해자에게 피해의 원인을 묻거나 옷차림 등 개인적인 부분을 지적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우리는 절도피해자, 교통사고 피해자들에게 이런 질문과 질책을 하는가. 이러한 인식은 성폭력피해생존자를 피해자로 보지 않고 ‘원인제공자’로 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사회 상황 속에서 피해생존자들은 자신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아지고 ‘피해 죄책감’에 사회로부터 격리된다.

그래서 광주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피해생존자를 지원하는 ‘첫사람’ 사업을 진행한다. ‘첫사람’은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성폭력 피해에 공감하고 피해자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이며 성폭력피해를 드러내기 쉽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침묵하지 않고 문제제기하는 피해자도 첫사람이 될 수 있다. 또한 성폭력피해생존자의 재판에 동행하여 왜곡된 통념과 인권침해적인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피해자 지원제도들이 잘 실현되고 있는지 지켜보는 사람이기도 하다.

재판장에서 첫사람은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며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통념을 찾아낸다. “만취된 상태에서 우발적인 행동”, “실수였다”, “그 당시 왜 소리를 지르지 않았나?”, 출혈이나 다친 흔적이 없고 피해자의 반항이 없었다“, ”왜 단둘이 있는 자취방에 따라갔는가?“ 등의 피해자의 맥락이 상당부분 결여된 재판에 공정성을 가해줄 수 있다. 또한 이 체크리스트를 통해 본인이 가진 통념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일상 속에서 반성폭력운동을 실천하는 첫사람이 되는 길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첫사람과 함께한 성폭력피해생존자들은 “처음 사건을 진행하면서 힘들었지만, 위로와 응원의 말로 그 순간들을 겪어내고 나를 지킬 수 있었어요”, “첫사람이 재판에 동행하여 재판부의 행동과 말투 등을 지켜봐 줬기에 재판부가 공정성을 유지했다고 생각해요. 첫사람과 함께 재판에 동행한 후부터 재판부와 피고인 변호사들조차 누군가가 재판을 지켜본다는 생각에 실제로 언행을 조심스럽게 하는 변화가 있었어요. 첫사람의 존재가 재판부와 피고인 변호사를 견제하는 충분한 힘이 되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등 첫사람의 존재에 고마움을 나타내는 사례가 많았다.

성폭력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하는가. 재발 방지를 위해 법제화한 전자발찌, 화학적 거세로는 성폭력을 완전히 없앨 수 없다. 우리는 ‘공감’과 ‘함께하는 순간의 힘’에 주목하고자 한다.

첫사람이 두 번째 사람을 만들고, 또 세 번째 사람을 만들고 점점 더 많은 성폭력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만든다면 성폭력은 없어질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든 첫 발걸음은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그 첫 발걸음을 함께 내딛는다면, 그것은 첫 발걸음이 아닌 함께하는 발걸음이 될 것이다. 광주여성민우회는 여러분이 함께 디뎌줄 첫 발걸음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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