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양강섭 형 영전에
고(故) 양강섭 형 영전에
  • 송선태 전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 승인 2016.03.29 1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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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애재라, 강섭 형!

형이 그리도 자주 오르던 무등의 산빛이 저렇게 연두로 물드는데 형은 지금 어디에 계시오.

천왕봉이 불러 그리 훨훨 높이 올라가고 계시오. 제발 다시 돌아와 이 기막힌 남도의 봄날, 그 뜨겁던 광주의 오월을 한번만 더 맞이하시지요.

아무리 불러도 형은 대답 없고 부끄럽게 남은 우리는 너무 빨리 떠난 형의 영전에 고작 술 한 잔씩 올리며 눈물 몇 방울 떨구고 있습니다.

강섭 형!

아무리 생각해도 형은 누군가를 만나 이곳에서 이룰 수 없는 거사를 위해 우리의 곁을 떠난 듯합니다.

한시도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정의를 잊지 않으신 형은 분명, 민주통일의 님들이 부르고 노동농민형제가 애타게 찾고, 오월의 영령들이 손짓한다고 이처럼 홀연히 떠나실 수 있다는 말입니까?

강섭형! 혹여 관현형이 부릅디까. 관현형 보내고 혼이 반쯤 나간 82년 어느 날 “관현이 남은 몫은 내가 한다”고 두 주먹 불끈 쥐고 탁자를 내리치던 모습 엊그제인데 왜 한마디 말도 없이 동지들을 떠납니까?

형은 자상한 정의파였습니다.
80년 5월 단식농성장에서, 오월의 새벽을 기다리면서 도청 앞 분수대에서, 시위현장에서 굶주리고 지친 동지들을 따뜻하게 보살펴 준 살림꾼이셨습니다.

형은 단호한 오월의 투사였습니다.
5.18 광주민중항쟁이 전두환의 정권찬탈음모와 합수단의 계략에 의해 내란으로 규정되고 우리 모두 주사범이 되었을 때 “김대중 선생이 정동년 형과 윤한봉 형을 통해 건넨 내란자금을 제일 많이 받아 쓴 사람이 되었다고 절절 웃던 당신은 80년 오월의 투사였습니다. 고문으로 온몸에 피멍이 들고 퉁퉁 부었어도 후배들에게는 웃음을 잃지 않는 오월의 형이셨습니다.

형은 오월의 정치인이셨습니다.
국회에서 최루탄 예산, 안기부 은닉 예산 등 학살자 정권의 정권안보 음모를 폭로하고 각종 국가재정관련 법령을 민주적으로 개정했습니다. 전남도의원시절에는 열악한 농어민 복지와 관변단체들의 폐습을 질타하셨습니다. 특히 전남지역개발협의회를 광주시민에게 되돌리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형은 언제나 광주정신의 실천가였습니다.
관현장학재단 등 단체에서 평생을 함께 하셨으며 입원하기 전까지 시민사회의 모든 모임에 행동을 같이 하셨습니다.

강섭 형! 이제 우리는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고 그 좋아하신 탁배기도 나눌 수 없음을 애달파하지 않겠습니다. 형이 남기신 족적과 유지는 광주 오월과 함께 역사 속에서 언제나 새롭게 부활할 것입니다.

이제 땅위의 일들을 남은 자들에게 내려놓으시고 하늘나라에서 부모님, 관현 형, 그리고 그리운 동지들 다시 만나 그 통쾌한 웃음 흩날리며 편히 쉬소서. 영면하소서.

2016.3.28. 후배 송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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