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가 판사를 한다고
‘알파고’가 판사를 한다고
  • 주명희 변호사
  • 승인 2016.03.23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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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명희 변호사
지난 2주 동안 대한민국을 가장 뜨겁게 달구었던 사건은 아마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대결이 아니었나 싶다.

필자는 소위 바둑문맹으로서 지금까지 바둑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도, 바둑을 두어 본 적도 없다. 그런데 이세돌 9단이 제1국에서 알파고에 패했다는 소식에 “기계가 인간을 이겼다”는 사실이 너무 믿기지 않아 대체 알파고가 무엇이길래라는 생각에 나머지 대국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지켜보았고, 기계가 인간을 이길 수도 있다는 사실에 필자 또한 한 순간 충격에 빠졌다.

그런 와중에 언론들은 AI(인공지능)나 컴퓨터 자동화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의 문제를 크게 부각시켰다. 이 중에서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옥스퍼드 대학 마이클 오스본 교수의 2013년 논문을 인용하여 일부 언론이 보도한 “2030년까지 인공지능에 의해 판사 직업군이 대체될 확률은 40% 정도 된다”는 기사였다.

필자는 평소 재판을 진행하면서 힘든 것 중 하나가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문제였다. 법조문 해석은 물론 판례연구 및 적용의 문제, 의뢰인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어떠한 주장을 하고 어떤 증거를 제출할 것인가, 이에 대해 상대방은 어떠한 주장과 증거로 대응할 것인가. 그리고 원고와 피고 측이 제출한 증거의 증거능력과 신빙성을 미리 예측 또는 판단하는 과정 등은 필자는 물론 모든 법조인을 괴롭히는 머리 아픈 과정들이다.

그리고 판사들은 관련 법조문을 근거로 형사사건의 경우 검사의 기소요지 및 증거, 민사사건의 경우 변호사들이 내놓은 주장과 증거들을 판단해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전환시키고, 거기에다 공정함이라는 요소까지 판결에 가미하여야 한다.

그런데 위 주장을 한 기사에 따르면 판사의 판결과정을 검사나 원고와 피고의 대리인이 각기 제출한 서류를 분석하고 법률 조항에 비춰 검토한 뒤 누구 주장에 더 설득력이 있는지 판단하는 과정으로 본다. 따라서 이 과정은 새롭게 입력된 정보를 기존에 구축된 데이타베이스(DB)와 비교해 최적의 결론을 내리는 컴퓨터의 처리과정과 흡사하다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컴퓨터에 의한 판결은 인간판사에 의한 판결만큼 정확할 뿐 아니라 공정성까지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법률은 ‘판단’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판단의 중심에는 증거에 대한 판단문제가 있기 때문인데, 많은 사건에 있어 증거에 대한 판단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그 증거들의 가치가 명확하게 판가름 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검사와 피고인 측 대리인, 그리고 원고와 피고의 대리인 모두 뛰어난 두뇌와 법률지식을 가진 자들로서 허점 없는 주장과 증거를 내세울 것인데, 이때 양측 증거가 동등한 가치와 신빙성을 지니고 있다면 그에 대한 판단은 이제 말 그대로 ‘판단’의 문제만 남게 된다. 이러한 점으로 인하여 1심에서의 무죄판결이 항소심에서 유죄가 되기도 하고, 그 판결이 다시 대법원에서 무죄취지로 파기환송 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인데, 과연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한다 해도 재판의 핵심인 증거를 판단함에 있어 인간보다 더 올바르고 더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있을지 강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필자는 하루 빨리 법률분야의 업무를 보조해주는 인공지능이 개발되어 법조인의 업무부담을 줄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공지능비서가 필자 옆에서 근거 법률과 법조문, 그리고 판례를 몇 초 만에 찾아 준다면 필자의 서면작성 시간은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금액과 당사자 인적사항 등만 입력해주면 지급명령이나 가처분, 가압류 등 간단한 서면은 즉시 작성하여 전자소송 사이트에서 제출해주고, 사무실 재판 일정 및 각 사건의 변동사항을 대법원 사이트에서 확인 후 일정표를 작성하여 필자가 재판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변호사 사무실의 모습은 획기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인공지능의 현재 수준에 미루어 볼 때 멀지 않은 미래에 현실화될 것이고 필자는 그러한 날이 매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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