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있는 빛
멀리 있는 빛
  • 문틈 시인/ 시민기자
  • 승인 2016.03.16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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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가는 신작로는 쓸쓸했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신작로를 따라서 십리 길을 그렇게 걸어 다녔다. 지금도 산책길에 나서면 그때 일이 떠오른다. 지각하지 않으려고, 집에 빨리 도착하려고, 늘 바삐 서둘렀던 탓에 학교를 오가는 내 걸음은 늘 숨가빴다.

동행이 왜 그리 빨리 걷느냐고 물을 때면 어릴 적 버릇탓이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빨리 걸어도 나는 일평생 느리게 걷는 사람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들은 다들 무슨 용 빼는 재주가 있어서인지 험한 세상을 잘도 헤쳐 나간다. 사업도 크게 벌이고, 요직에 한 자리도 차지하고 산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을 부러워하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젊었을 적에도 잘 나가는 사람들을 대수롭지 않게 보았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어찌 하면 격물치지(格物致知)할 것인가. 그것이 인생 일대의 궁극적인 관심이었다.

고무신을 신고 신작로를 걸어 다닐 때 내 눈에 가끔 무엇인가 뜨일 때가 있었다. 멀리 밭고랑에서 반짝이는 빛을 볼 때면 나는 숨가쁘게 그것을 찾아 달려갔다. 누구한테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생금(生金)이란 것을 믿었다. 생금은 살아 있는 금인데 이리저리 반짝이며 돌아다닌다고 했다. 진실한 사람의 눈에 보일 때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밭고랑에서 반짝이는 것이 생금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무릎이 깨지도록 넘어지면서 뛰어갔던 것이다. 한데 밭고랑에서 눈부시게 빛나던 생금은 한낱 깨진 유리조각이었다. 그 하찮은 것이 햇빛을 받아 반사하던 것이었다. 얼마나 실망했는지! 한낱 유리조각이 멀리서 그렇게 눈부시게 빛날 수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밤으로의 긴 야간열차를 타고 타관에 와서 때꾼한 눈을 하고 성에가 낀 창을 소매깃으로 닦고 눈을 대고 내다본 대도시의 모습. 그것은 신작로 풍경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무섭고 두렵고 냉랭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청운의 꿈을 가슴 가득히 품은 채 대학을 다니고, 직장에 나가고, 결혼을 하고. 그러면서도 무엇인가 반짝이는 것을 꿈꾸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나를 멀리 이끄는 것이었다. 아이를 낳고, 집을 마련하고, 그러는 동안 세월은 야간열차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갔다. 그 어디에도 반짝이는 것은 없었다. 먹고 살기에 바빠 반짝이는 것을 못 보고 지나쳤는지 모른다. 나는 결코 반짝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느 핸가는 내가 살아온 행로를 거꾸로 되짚어 지금까지 살아온 공간을 따라 내려가 보았다. 센티멘털 저니(감상여행) 같은 것이었다. 그 행로의 끄트머리쯤에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와 맞닥뜨렸다. 나는 운동장 한 켠으로 걸어가 둘레둘레 찾았다.

그 운동장 어디쯤 학교 맨 옆 교실 기둥과 운동장 옆 울타리의 삼나무 그루가 직선으로 마주치는 자리. 그때 나는 땅바닥에 구멍을 내고 코스모스 꽃잎을 넣어두고 유리조각을 씌우고 흙을 덮어 두었다. 그리고 그 위에 작은 꼬막 껍질로 표를 해두었다.

그 자리는 가을 운동회 연습 때 ‘좌우로 나란히’ 선생님의 구호에 따라 내가 늘 서던 자리였다. 운동장에 모일 때면 땅 속에 묻어둔 코스모스 꽃잎을 들여다 보았었다. 세상 그 누구도 모르는 반짝임이었다.

몇십 년이나 지났는데 그 붉은 코스모스 꽃잎이 그대로 있을 리 없었다. 교실기둥과 삼나무가 직선으로 마주치던 자리에 서서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사라진 코스모스 꽃잎, 앞으로 나란히, 하고 소리치던 선생님, 동무들. 그들은 다 어디에 있는가. 나는 비로소 발견했다.

반짝이는 것을 말이다. 생금. 궁극적인 관심은 내 마음 깊이에, 내 존재 안에서 오롯이 빛을 내며 반짝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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