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끄러지지 않는 양말
미끄러지지 않는 양말
  • 문틈 시인/ 시민기자
  • 승인 2016.03.03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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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미끄러지지 않는 양말을 다섯 켤레나 선물 받았다. 아니, 선물이 아니라 의료기를 파는 사람한테서 공짜로 받았다. 공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된 사연인가 싶어 듣고 보니 여기에는 결코 짧지 않은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장모님이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은 지 1년이 넘는다. 한 달 전에 장애급수를 받았다. 장애 2급. 관계기관으로부터 급수를 기다릴 무렵 때 마침 의료기 장수가 찾아왔다. 이 때 미끄러지지 않는 양말이라며 무려 다섯 켤레나 공짜로 주고 갔다. 급수가 나오면 알려달라면서 명함도 주고 갔다.

급수가 나오자 이번에는 의료기 장수가 잔뜩 물건들을 싣고 왔다. 장모님은 자리 보전을 하고 있어서 거동도 못하고, 식사도 도우미 아줌마의 손이 필요한 상태다. 그러다 보니 욕조 의자, 욕창 안 나는 에어메트리스, 휠체어, 무엇 무엇 대여섯 가지가 있었으면 했는데 이런 것들을 그 의료기 장수는 몽땅 한 푼도 안 받고 주고 갔던 것이다.

수상쩍은 일이다. 아무리 시답잖은 것들일지라도 돈으로 치면 꽤 값이 나갈 상품들을 공짜로 몽땅 안겨주고 가다니. 미끄러지지 않는다는 양말은 말하자면 미끼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공단에서 나중에 전화 오면 그냥 샀다고만 말해주면 된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입때껏 살아온 세상과는 다른 거래 양식이다. 알지도 못한 장사꾼이 이런 공짜 선물을 가져와 선의로 가득 찬 표정을 지으며 주고 간다는 것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여튼 휠체어는 쓸 때까지 쓰고 주면 된다고 단서를 달았지만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며칠 전, 공단인가 하는 데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런 저런 물건들을 어머니 때문에 구입한 일이 있습니까.” 아내는 그 순간 무슨 죄 지은 사람처럼 머리에서 전기가 나가고 깜깜해져 대답을 못하고 있자 “아, 확인 차원에서 전화를 걸었습니다.”하고 말이 이어졌다. 그 액수가 1백만원 가까이나 되었다.

아내는 갑자기 무릎에서 힘이 쭉 빠지며 그 자리에 주저 않고 말았다. “제가 구입한 것이 아니라서 동생 전화번호를 가르쳐줄 터이니 그쪽으로 연락해보십시오.” 그 공단인가 하는 데서 장모님을 보살피는 처제한테 전화를 했는지까지는 알아보지 않았다. 아내는 처제의 도움을 받아 장모님의 수발을 책임지고 있는데 이런 일을 당해 요 며칠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충 짐작이 갔겠지만 의료기 장사꾼은 장모님한테 자질구레한 상품들을 돈을 받고 판 것으로 해놓고, 공단에 보조금을 신청했는데 그 돈이 1백만원 정도였던 것. 사위어가는 촛불처럼 나날이 기력이 쇠약해져가는 장모님에게 그것들은 도움이 되는 것들이긴 했지만 장사꾼의 옳지 못한 행각에 말려든 것은 뭐라고 해도 변명할 낯이 없다.

그런데 그것들을 실제로 돈을 지불하고 샀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공단은 그 의료기 장사꾼에게 거금을 지불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터무니없는 가격에 물건이 거래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일이 어찌 장모님 한 사람한테만 일어난 일일까. 전국의 수많은 나이 든 어머님, 장모님, 장인님, 할머님, 할아버님들 가운에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1급, 2급 장애인이 한 둘이겠는가. 나이 들면 걷지도 잘 못하고, 귀도 잘 안 들리고, 큰 병을 앓기도 해서 장애인 급수가 나올 경우가 많다.

그 많은 사람들에게 공단인가 뭔가 하는 데서 그렇게 상품을 턱없이 바싸게(?) 구입하는 돈을 지원한다니, 이런 사실을 알고 나서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시위대에게 물대포를 쏘듯 이렇게 마구 돈을 퍼부어도 괜찮은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의료상품 구입 보조한답시고 부풀린 가격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넋나간 행정에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나랏돈은 눈 먼 돈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거래 방식이 아무렇지도 않게 용인되고, 나랏돈이 허비되는 것에 정말 화딱지가 난다. 이 나라에는 아무리 미끄러워도 미끄러지지 않는 양말을 신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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