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기차 여행
겨울 기차 여행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6.02.17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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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여행은 그대로 시적인 데가 있다. 들판과 먼 산, 시골 마을을 저만치 두고 내달리는 기차의 차장에 앉아 대형 유리창으로 밖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풍경들을 바라본다.
이만치 떨어져서 바라보는 세상. 시간을 거슬러가는 것도 아니고, 풍경은 슬라이드를 갈아 끼우듯 무시로 변한다.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도 기차만큼이나 설렌다. 가령 기차를 인생의 긴 여정이라 생각해본다. 중간역들에서 여객들은 짐 꾸러미를 끌고 내리기도 하고, 오르기도 한다.

옆 자리에 앉았던 여객이 오송역에서 내리고 나서 어느 역에선가 새로운 승객이 옆자리에 앉는다. 잠깐 동안 비현실적인 느낌에 붙잡힌다. 모든 것은 생기고 사라지고 오직 시간을 비유로 한 기차만이 달린다.
눈길을 차창 밖 멀리로 주고 있는데, 시야 끝자락의 풍경이 짙은 안개 같은 것에 감싸이더니 이내 하늘이 어두워지고 눈보라가 붐배친다. 벌써 풍경은 눈으로 은박을 한 듯하다.

앞자리에 있는 승객이 스마트폰을 꺼내 연신 셔터를 누른다. 화면에 눈 풍경을 담는다. 눈 풍경을 스마트폰에 당기는 그 마음을 알 것도 같다. 계절은 봄, 여름, 가을 동안 부지런히 일하고 이제 눈을 뒤집어쓰고 쉬고 있다. 저 고적한 풍경에서 무엇인가의 끝이 보이는 듯하다. 기차는 잠시 설경을 피해 터널로 들어간다. 터널을 나오자 눈 세상이다.
이런 장면에서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설국’이라는 소설의 첫 문장을 이렇게 쓴다. ‘터널을 지나자 밤의 바닥이 희었다.“ 번역판이 여럿이고 첫 문장의 번역이 제각각인데, 그중에서 앞에 옮긴 문장이 가장 마음에 든다. 밤의 바닥은 희었다. 극약 같은 절구다.

기차가 눈보라 속으로 달리는 이 풍경을 첫 문장으로 어떻게 묘사하면 좋을까, 눈에 덮인 겨울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이 내린 풍경 속에서 생(生)은 그대로 얼어붙어도 좋으리라.’ 그렇게밖에는 문장을 더 쓸 수가 없다. 무딘 감각이 기차여행의 겨울 서정을 감당하지 못한다.
이 기차를 타고 세상의 끝까지 가고 싶다. 겨울 설경을 사로잡는 한 문장이 나타날 때까지. 그런데 어느새 눈은 그치고 기차는 설국의 경계를 넘어간다. 전라도 땅이다. 아까 본 것이 분명 설경이었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아름다운 설경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흡사 짧은 꿈을 깬 듯한 느낌이다.

기차, 눈보라, 설경, 눈을 이고 있는 먼 산봉우리. 왜 그 풍경들이 살짝 누선을 자극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람은 자기 마음을 다 모른다고 해야만 할 것이다. 티 없이 깨끗한 하얀 풍경을 아무도 흠집 내지 말지어다. 뇌의 어느 구석에서 잠자고 있던 프랑스 가수 아다모가 부른 ‘눈이 내리네’가 불쑥 멜로디로 떠오른다. 그 가수는 몇 번인가 내한공연도 했었는데 한국어 가사로 부른 노래가 절창이다. 나중에 아무리 유튜브에서 한국어 가사로 부른 아다모의 노래를 찾아보아도 없다.
겨울이면 한 번은 읊조려야만 하는 김동명의 시도 떠오른다. ‘북국에는 날마다 밤마다 눈이 내리느니/회색 하늘 속으로 흰 눈이 퍼부을 때마다/눈 속에 파묻히는 하아얀 북조선이 보이느니/가끔 가다가 당나귀 울리는 눈보라가/막북강 건너로 굵은 모래를 쥐어다가/추위에 얼어 떠는 백의인의 귓불을 때리느니...’

겨울에는 눈보라 속으로 달리는 기차 여행이 요샛말로 힐링 투어다. 봄이 그닥 멀지 않은 날에 내리는 눈보라가 춥지 않다. 그 호젓한 쓸쓸함, 가벼운 슬픔 같은 것이 세파에 시달려온 심신을 따뜻이 위무해준다. 겨울이 있으므로 삶은 또다시 시작해볼 마음이 생기는가보다. 한겨울에 신춘(新春)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그래서인지도 모를 일이다. 기차여, 눈 속으로 세계의 끝까지 데려다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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