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을 보며 오늘을 헤집다
옛 사람을 보며 오늘을 헤집다
  • 이홍길 고문
  • 승인 2016.02.1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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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길 고문
⌜금수 회의록⌟에 나오는 동물들의 충고를 새겨들으면서 저자 안국선의 삶을 살핀다. 동물들의 현란한 충고와 인간 평가는 저자의 인간관과 시대관이기 때문이다.

책이 쓰인 1908년 이전 그는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독립협회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투옥과 유배생활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한말 탁지부 서기관에 임명되었고, 1911년에는 합방 조선에서 청도 군수를 역임하기도 하였다.

그의 저술활동, 사회활동, 관직생활의 시기가 합방전후와 겹치는 것이, 국망으로 비분강개하여 의병에 투신하거나 순국을 택한 지사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동물들의 입을 통한 날카로운 세태비판에 가슴 뭉클했던 필자는 그의 처신에 일말의 실망감과 동시에 곤혹을 느낀다. 하지만 지사적 결단이 모두에게 가능하지 않은 것은 그 어느 시대에도 관통했던 역사임을 어쩔 것인가? 아울러 오늘의 한국 현실이 한말과 똑 같지는 않더라도 내일의 운명이 불분명하기는 오십보 백보인데도 우리들의 현실인식은 천차만별이듯이 그 때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누그려 생각해 본다. 또 그가 독립협회 활동을 한 사람이라는 데에 착목하여 그 시국관의 시대적 한계를 유추해 본다.

오늘의 패권적 기득권 세력들이 그러하듯이 당시의 독립신문이 전하는 협회 인사들의 정치의식은 국가의 총체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헤게모니에 국한되어 있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동학혁명을 저지하기 위해 청군을 끌어들인 것은 차치하고 독립신문의 언설들은 청나라와 일본군대가 주둔하여 국가주권이 유명무실 해져버린 현실에서 “수도에 외국 군대가 와 있어 동학과 의병을 막아주니 다행”이라거나 “무법한 인민과 시세를 알지 못하는 유생층이 민병을 조직하였으니 박멸함이 마땅하다”는 끔찍한 언설, “무식하면 한 사람이 다스리나 여러 사람이 다스리나 마찬가지”라는 그들의 하찮은 유식에 대한 오만이 넘쳐 “무식한 세계에는 군주국이 도리어 민주국보다 견고하다는 사실이 역사와 다른 나라의 상황이 보여준다”는 평가와 주장은 야만과 미개를 빌미로 보호와 합방을 정당화했던 일본제국주의의 주장에 잠재적이거나 현재적으로 맞닿아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백성을 계몽시키고자 했던 실질은 결국 그들의 주도권이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독립정신’ 6대 강령에도 민권을 찾아 볼 수 없고 나라 위한 백성의 책임만 요란하다. 자유를 자립이라는 수준으로 축소 선양하면서도 민중을 배제, 결국은 수구와 타협하거나 외세 의존의 평안을 찾게 되었던 것이다.

1899년 대한제국의 헌법인 ⌜대한국 국제⌟가 선포된 이후, 을사보호조약 이전인 1904년에 이르기까지 국정개혁을 위한 상소나 건전한 비판이 등장하지 못했음이 지적되고 있으며, 황제권력 강화가 자주독립이란 명분 아래 황제의 의향에 따라 자의적으로 행사되었는데, 일제의 황실 관리의 배려 아래 황실은 예전의 영화를 누리며 숨죽인 채 그 종말을 향하여 생존하고 있었다. 지사 황현의 절명시처럼 “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린다”는 처절함과 몇몇 지사의 죽음으로 기울어가는 국운을 지탱할 길이 없었다.

기득권이 헤게모니를 잃었을 때 자신들의 이익과 안전을 지키는 방법은 새로운 권력에 빌붙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다행인 것이 우리는 의존의 긴 역사를 갖고 있었다. 큰나라, 윗나라의 비호 속에 안도했고, 따라서 체제 내의 지배를 관철할 수 있었다. 임오군란으로 왕의 아버지가 청나라에 잡혀가고 갑신정변으로 일본에게 덜미를 잡히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임금이 피신하여 국권을 의탁하고 미국에게 국가 보위를 당부했건만 대한제국은 그 통치권을 영원히 일본 황제에게 넘기고, 일본 황제는 오만하게도 조선의 병합을 허락했던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오늘의 국제정세가 불안하다. 북한의 미사일 소동으로 기다렸다는 듯, 주변 강대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한사코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사드를 공론화하는 정권의 태도가 우리를 당황케 하고 미국의 공공연한 채근이 짜고 치는 고스톱판 같아 무력감에 짓눌린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외쳐봤자 고스톱판은 끝나가고 있다.

한말의 시국을 풍자하고 살았던 안국선이 더 당당하지 못했다고 서운할 것도 없다. 무슨 재앙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르는 사드 소동에도 바닷속처럼 조용한 우리 언론과 저 의연한 대한민국 주권자들의 면면이 저리 빛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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