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기록문화유산(4) 문중문헌
호남기록문화유산(4) 문중문헌
  • 호남지방문헌연구소
  • 승인 2016.02.03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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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의 영일정씨와 계당고문헌 이야기

현재 호남지역에는 200여 개 이상의 문중이 있다. 이들은 대대로 정착세거지를 형성하여 향촌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지역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호남지방문헌연구소(구 전남대 호남한문고전연구실)에서는 2002년부터 호남지역 고문헌 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다. 특히 문중문헌에 대한 연구로는 2009년부터 해남윤씨 문중문헌을 조사, 연구하여 10권의 책으로 간행하였다.

또 2010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재)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과 함께‘호남기록문화유산 발굴ㆍ집대성ㆍ콘텐츠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2014년부터 문중문헌 분야를 신설하여 호남기록문화유산 홈페이지에 문중문헌 간명해제와 이미지, 목차 등을 탑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문중에서 소장한 고문헌은 ‘문중문고’라는 명칭으로 학계에 알려져 부분적인 연구만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문중문고 중 경북 대구에 있는 남평문씨 인수문고는 대표적인 문중문고이다. 인수문고가 소장하고 있는 고서는 8,500여 책에 달한다. 이외에 알려진 크고 작은 문중문고들이 있다.

호남지방문헌연구소에서는 ‘문중문헌’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하여 호남지역에 세거하고 있는 각 문중의 문헌을 발굴하고 보존하기 위하여 조사하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문중문헌 속에는 그 문중의 역사와 아울러 그 인물이 살았던 당시의 역사가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는 지역학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속한 문중이 언제, 어떻게 호남지역에 정착세거지를 형성하였으며 그들이 어떤 문헌을 소장하고 있는지를 조사하고 발굴하여 연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한 예를 전남 담양의 영일정씨의 호남세거지 형성과정과 그들이 남긴 문중문헌으로 들어보겠다. 담양의 영일정씨(迎日鄭氏)는 경북 영일을 본관으로 삼는다. 영일정씨의 시조는 정종은(鄭宗殷)이다. 정종은의 후손 정의경(鄭宜卿)이 경북 영일현 호장을 지내고 영일현 백(伯)에 봉해졌다.

이후 후손들이 본관으로 삼아 세거지를 형성하였다. 영일의 옛 이름인 오천(烏川)과 연일(延日)로 불리기도 한다. 호남에서는 전남 담양에 세거하고 있는 영일정씨를 ‘지실 연일정씨’ 혹은 ‘지실정씨’라고 일컫는다. 지실 마을은 영일정씨 문청공파 후손들이 400여 년간 이어 오고 있는 정착세거지이다. 지실 마을은 일동삼승(一洞三勝)으로 이름난 곳으로, 한곳에 식영정(息影亭), 환벽당(環碧堂), 소쇄원(瀟灑園)이 자리 잡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전남 담양에서 영일정씨가 세거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준 인물은 송강(松江) 정철(鄭澈)이다. 송강은 을사사화의 화를 피하여 어머니를 모시고 순천에 살고 있는 둘째 형인 정소(鄭沼)를 찾아가던 중에 담양 환벽당에서 사촌(沙村) 김윤제(金允悌)를 만나 10여 년 동안 수학했다.

송강은 17세(1552년) 때에 사촌의 외손녀와 혼인하여 현 담양군 창평면 해곡리에 신방을 차렸다. 일명 ‘와송당(臥松堂)’이라 일컬어지며 문화류씨의 종가이다. 현재 와송당에는 기암(畸庵) 정홍명(鄭弘溟)이 쓴 <유촌외가구업중수상량문(維村外家舊業重修上樑文)> 이 전해온다.

송강 정철은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최고봉으로 문학가이며 정치가이기도 하다. 송강(松江)이라는 호는 성산 앞을 흐르는 시내 송강에서 따온 것이다. 이 송강은 형상과 계절에 따라 6개의 이름이 있다. 즉 시내에 시루바위가 있어 증암천(甑巖泉), 7월에서부터 9월까지 백일홍이 아름답다하여 자미탄(紫薇灘), 고서면에 위치하여 고서천(古西川), 물이 짙푸르다하여 창계천(蒼溪川), 시냇가에 대나무가 많이 있어 죽록천(竹綠天), 시냇가 주변에 소나무가 많이 있어 송강(松江) 등으로 일컬어졌다. 송강은 일생에 있어서 관직을 떠나 네 번이나 담양에 은거하면서 <사미인곡>과 <속미인곡> 등 많은 문학작품을 남겼다.

송강은 4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담양 지실 마을에서 거주하며 세거지를 형성한 아들은 송강의 3남인 운붕(雲鵬) 정진명(鄭振溟)이다. 정진명은 1601년(선조 34)에 진사 2등으로 합격하였는데 서술한 시가 원근에 회자 되었으며 그의 시가 전해지고 있다.

부인은 창의사(倡義使) 문열공(文烈公) 김천일(金千鎰)의 딸이다. 정한(鄭漢)은 정진명의 아들로 자가 수원(壽源)이며 호는 곡구(谷口)이다. 참봉으로 집의를 증직 받았으며 기암 정홍명이 담양으로 물러나와 거주할 때 이웃에서 함께 살았다. 정한은 슬하에 3남을 두었는데 그 중에 1남 정광연(鄭光演)은 자가 경회(景晦), 호는 용지(龍池)이며 담양 지실 마을의 영일정씨는 대부분 그로부터 분파된 후손들로 일명 ‘지실정씨’라고 불린다.

지실 마을에는 13대째 이어서 내려오고 있는 영일정씨소은종가(迎日鄭氏簫隱宗家)인 계당(溪堂)이 있다. 현재 계당은 사랑채 한 동 이외에 양반가의 위세를 자랑하는 고택이나 유적이 크게 남아있지 않다. 전쟁과 불의의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현재의 사랑채만 남아 보존되고 있는 것도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계당 입구엔 호남오매(湖南五梅) 가운데 하나인 계당매(溪堂梅)가 지난 역사를 대변해 주고 있다. 기정진(奇正鎭)의《노사집盧沙集》에 보면 <계당팔영溪堂八影>이 있고 후손 정운오의《벽서유고碧棲遺稿》에 보면 <계당십영溪堂十影>이 있어 계당의 풍모를 느낄 수 있다.

▲계당
▲계당
담양 영일정씨문중에서 소장한 고문헌은 일명 ‘계당고문헌’이라고 일컫는다. 현재는 담양 한국가사문학관과 전남대 중앙도서관에 기탁되어 있다. 이 문헌 중에는 영일정씨와 관련된 개인문헌 외에 호남의 유명한 다른 문중 인물들의 개인문집, 고문서, 고서화 등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 현황을 보면 고서 1,117책, 고문서 2,933건, 고서화 143점 등 총 4,193점이 기탁되어 있다. 이중에 영일정씨 문중의 인물들과 관련된 개인 작품은 40여 종으로 필사본이 많이 있으며 아직 영인본 간행 및 국역이 진행되지 않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계당고문헌은 지금까지 400여 년을 이어오면서 보관하는 중에 벌레와 습기 등에 손상되어 귀중한 자료가 멸실될 위기에 있었다. 한 예를 들면 1,500년대의 이황(李滉)의 ‘서간초본’은 군데군데 구멍이 나고 종이가 떨어져나간 것을 볼 수가 있다.

이이(李珥)의 서간이나 김집(金集)의 서간도 손상이 되어서 멸실될 위기에 있었는데 당시의 계당주인 정운오가 수습하여 배접을 해놓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전해지게 된 것이다. 이외에도 송시열의 서간, 김만중의 서간, 정철과 그의 후손들의 서간이 전해지고 있다. 고서화 작품과 고문서는 전남대학교도서관 5층 고문헌실에서 고문서와 함께 오동나무로 만든 상자에 넣어서 보관하고 있다.

계당고문헌은 전남 담양에 세거하고 있는 영일정씨문중을 중심으로 이어져온 것이기 때문에 호남의 향촌과 역사에 관한 내용이 많다.

특히 고문서류는 이 지역에서 살면서 필요에 의해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어떤 문헌보다도 정확하고 사실적이다. 이 계당의 자료들은 상당수가 ‘국가문화재’나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호남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관련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담양 영일정씨 소은공파종가 계당을 지키고 있는 정구선(鄭求宣) 선생이 들려준 계당의 야기를 들어보면 “다른 사람들이 계당을 방문하여 소장하고 있는 책을 보다가 한 권이라도 들고 가면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경찰을 동원해서라도 기어이 찾아냈으며 계당이 화마에 휩싸였을 때는 몸을 돌보지 않고 책들을 지켜냈다”라고 하였다. 담양의 영일정씨 문중사람들이 이 문헌들을 보존하고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노고를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현재 담양에는 계당고문헌 외에 영일정씨와 관련된 유적으로 환벽당, 식영정, 송강정 등이 있다. 환벽당은 현재 영일정씨 용지공파 소유로 되어있으며 식영정은 영일정씨 소은공파종중의 소유로 되어있다. 송강정은 후손들이 송강 정철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

정자의 정면에 ‘송강정(松江亭)’이라는 편액이 있고, 측면 처마 밑에는 ‘죽녹정(竹綠亭)’이라는 편액이 있다. 현재 위의 3개 정자에 걸려있는 현판에는 영일정씨문중 인물들의 작품이 다수 남아있다. 특히 송강정에는 총 9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데 모두 송강 정철과 그의 후손들의 작품으로만 채워져 있다.

현재 호남지역에는 선조들의 소중한 고문헌을 보유한 명망 있는 문중이 많이 있다. 그러나 현대의 청소년이나 젊은 사람들은 문중에 대한 개념이 미약하다. 때문에 훌륭한 선조와 그들이 남긴 소중한 유산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이에 현명한 문중의 어른들은 이 후손들을 위하여 장학사업, 선조들의 고문헌 국역사업, 전자족보제작 등 다방면으로 노력하여 선조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후손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각 문중에서 종친회와 홈페이지를 통하여 문중문헌의 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연구자의 입장에서 보면 보다 더 전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호남지방문헌연구소에서는 《호남문집 기초목록》, 《호남지방지 기초목록》, 《호남누정 기초목록》에 이어 4번째로《호남문중문헌 기초목록》을 2016년 3월 중 간행할 예정이다. 호남에 정착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는 30개의 문중을 선정하고 문헌을 조사하여 간명해제와 목차, 서지사항 등을 수록하였다.

장차 이 책을 보는 각 문중의 사람들이 좀 더 확실하게 자신의 뿌리를 인식하고 선조들의 의행을 본받아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앞으로 자료가 더 확보가 된다면 심혈을 기울여 연구하여 문중뿐만 아니라 시민들과의 소통을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호남지방문헌연구소에서는 2016년도에도 계속 문중문헌을 조사하고 발굴하여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연구가 진행 되는대로 호남기록문화유산 홈페이지를 통하여 공개할 예정이다. 관심 있는 지역 종친회나 문중에서는 소장하고 있는 문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연구자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바란다. 혹 문중문헌과 관련된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호남지방문헌연구소로 연락주시기를 바란다.
▲《백세보중》, 《기축문견록》,《오천지장록》 ,《영일정씨세보》
▲계당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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