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시>함께 무등의 해를 들어올리며
<신년시>함께 무등의 해를 들어올리며
  • 박몽구 시인
  • 승인 2015.12.30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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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새해 아침에

순천만 갈대바람 제아무리 달게 마시고
화순 적벽 깊고 푸른 물에
티 없이 맑은 얼굴 씻은 해라도
무등으로 들어 올리지 않고는
새해는 결코 밝지 않는다

저를 낳은 하늘을 과녁으로 삼은 무기 앞에
삼천리가 침묵하고 있을 때
아낌없이 죽음과 맞바꾸어
깨끗한 새벽을 활짝 열어젖힌 곳…
무등이 저를 살라 일군 햇살 한줌으로
긴 어둠의 장막을 걷고
막혔던 길 훤하게 트던 기억 생생한데
가까스로 되찾은 민주주의의 얼굴
까맣게 잊혀져 가는 오늘의 주소는 실종중!

스피커에서는 앵무새들의 언어만 쏟아지고
비밀이라곤 간수할 수 없는
유리로 된 방들 날로 늘어가고
꼭꼭 닫힌 공장 문과 집 사이에서
돌아갈 길을 읽은 친구들은
공장 굴뚝으로 올라가
꼬박 뜬눈으로 밤을 밝히지만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사각지대…

다시 삼천리가 차벽과 최루가스에 눌려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밤
제 몸을 달궈 얼음을 녹여
겨울 한가운데서 청정한 대꽃 피우는 이들을 보라
밤도 잊은 채 쇳물을 부어
떡을 빚는 철공소 사람들의
비지땀을 모아서 무등의 정수리까지
밝은 해를 들어올리는 장관을 보라

그 아낌없이 흘린 땀 헛되지 않아
팽목항 저편에서 길 읽은 아이들도
밝은 눈 얻어 어미 품으로 돌아오고
차가운 거리에 던져진 형제들
일터로 돌아가 따스한 불빛을 걸기를
새벽으로 닿는 지름길 재촉하다가
벌교 득량 개펄에 발목 잠긴 채
묶여 있는 한심한 민주주의도
작은 차이 넘어 모두 하나 되어
수렁에서 끌어내 제 길을 찾아가기를
검은 돈과 보이지 않는 손이 가로막은
금단의 길 넘어 폐지로 쌓은 산 넘어
삼천리로 골고루 깨끗한 새벽 빛 나누기를!

*박몽구 : 광주 태생으로 전남대 영문과와 한양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77년 월간 『대화』지 시 당선으로 등단하여, 『개리 카를 들으며』, 『마음의 귀』, 『봉긋하게 부푼 빵』, 『수종사 무료찻집』 등의 시집을 상재하였다. 연구서로 『모더니즘과 비판의 시학』, 『한국 현대시와 욕망의 시학』 등을 갖고 있다. 계간 《시와문화》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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