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누정문화의 재조명7 - 누정과 문학
호남 누정문화의 재조명7 - 누정과 문학
  • 전남대 호남한문고전연구실
  • 승인 2015.12.23 17: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⑦ 풍암정사

광주광역시 북구 풍암제길에는 조선 중기 의병장 충장(忠壯) 김덕령(金德齡)의 동생인 풍암(楓巖) 김덕보(金德普)가 지은 풍암정사(楓巖精舍)가 자리하고 있다. 누정이 지어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 등의 시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정자 자체는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졌고, 김덕보는 임진왜란 이후에 은거했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

흔히들 ‘풍암정’이라 칭하기도 하는데, 그 누정 앞에는 무등산 원효계곡의 맑은 물이 사시사철 흐르고, 특히 가을이면 누정 이름에 걸맞게 단풍나무가 그 주변을 붉게 물들여 그 풍광 또한 멋스러워 운치를 더한다.
기와(畸窩) 정홍명(鄭弘溟)이 지은 <풍암기(楓巖記)>에는 “매양 밥 먹기를 마치면 함께 거처하는 2, 3인과 함께 바위 아래를 소요하다가 ‘풍암(楓巖)’이란 이름을 얻게 된 까닭을 궁구해 보았다. 바위의 위아래를 끼고 단풍나무 백여 그루가 있었는데 시내와 못에 빙 둘러서 비치니 바야흐로 가을 서리 맞은 잎이 물에 잠겨 물빛을 물들인 듯하였다. 시냇물은 매우 사나왔는데 또 많은 돌 때문에 물의 흐름이 돌고 얽혀 그 소리가 우레와 같으니 무서워할 만했다.

장마로 물이 불면 물살이 거세어 골짜기의 벼랑이 파였고 물가에 다니는 자는 귀가 서로 막혀서 상대방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이 때문에 여름날에는 사람들이 거처하기 싫어하였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를 통해 누정 이름을 ‘풍암정사’라고 지은 연유를 짐작할 수 있다.

지금도 비가 오면 누정 앞의 계곡에는 순식간에 물이 불어나, 건널 수 없을 정도인데, 당시에는 지금 보다 흐르는 계곡물의 양이 훨씬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누정 바로 옆에서 ‘신선바위’라 칭하는 바위가 함께 자리하고 있는데, 당시의 강한 계곡물에 의해 쓸려 내려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풍암정사를 지은 김덕보는 1571년 광주에서 태어났으며 임진왜란 때 두 형인 김덕홍(金德弘)과 김덕령을 잃고, 광주 무등산의 수려한 원효계곡을 찾아 터를 잡고 이 정자를 지어 은거하면서 학문을 쌓았다.

당시 형인 김덕령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그의 장형(長兄)인 김덕홍과 고경명이 이끄는 의병대에 참여했다가 노모의 봉양으로 인해 잠시 집으로 돌아왔다가, 어머니를 여읜 후에 그의 형인 김덕홍은 고경명, 안영 등과 함께 금산전투를 치르게 된다. 당시에 김덕보도 함께 참여하였다가 김덕홍이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전하기도 한다. 아무튼 아쉽게도 이 전투로 그의 형인 김덕홍은 전사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김덕령은 송재민(宋齋民)의 권유에 힘입어 격문을 발하고 광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권율(權慄)과 함께 진주, 고성전투에서 활약하였으나, 이몽학의 난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던 도중 향년 29세 나이로 옥사하였다.

그렇게 김덕보는 두 형을 잃게 되었으며, 그는 두 형에 대한 죽음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곳에 이 누정을 짓고, 은자의 삶을 자처하였다. 이후에도 여러 번 조정의 부름이 있었지만, 응하지 않고 후진교육과 명현들의 교유하였다고 전한다. 아래는 당시의 심정을 엿볼 수 있는 그가 남긴 <만영(漫詠)> 이라는 작품이다.

나이 들어 단풍 언덕에 지은 두어 칸 집 晩結楓崖屋數間
바위 앞엔 대숲이요 뒤엔 첩첩 산이로세 巖前修竹後重巒
볕 좋은 창문이라 겨울날도 따스한 터에 向陽簷牖三冬暖
물가 정자라서 무더위에도 시원스러운데 臨水高臺九夏寒
영약은 매 번 좋은 벗들 따라 베어 내고 靈藥每從仙儷斲
좋은 책은 가끔 시골 사람에게 빌려보니 好書時借野人看
이내 몸 깃들기에 별나게 편안한 곳이라 棲身別有安閒地
바다 밖 봉래방장이 무슨 소용 있으리오 何用蓬壺海外山

이곳에는 위의 시문을 포함하여 임억령(林億齡), 고경명(高敬命), 정철의 사위인 임회(林檜), 정재면(鄭在勉), 정재성(鄭在誠), 그리고 그의 후손인 김치복(金致福) 등 총 11개의 시문이 걸려있다.

이 누정은 정면과 측면 각각 2칸으로 되어 있으며, 좌우 1칸씩 온돌방을 두었다.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처마는 홑처마로 되어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노송과 단풍나무, 그리고 맑은 원효 계곡물이 어울린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 중의 하나로, 현재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5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남대 호남한문고전연구실에서는 문화재 보존의 하나로 시민의 소리와 함께 광주․담양의 8대 누정으로 선정한 독수정, 면앙정, 명옥헌, 소쇄원, 송강정, 식영정, 풍암정사, 환벽당에 걸린 모든 현판을 탈초 및 번역했다. 아울러 중국 관광객을 위한 누정홍보영상이 포함된 도록집 간행을 앞두고 있다.

http://www.memoryhonam.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