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강에 오는 해오라기
샛강에 오는 해오라기
  • 문틈 시인/ 시민기자
  • 승인 2015.12.17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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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오고 나서부터 부엌 창으로 샛강을 자주 내다보게 된다. 샛강이긴 하지만 강물이 흐르는 양쪽 둔치에 갈대밭이 우거지고 물줄기는 그 사이로 잔물결을 출렁이며 흘러간다. 먼 산골짜기에서부터 흘러오는 물일 것이다.
샛강을 볼 때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한참 바라보곤 한다. 흘러가는 것에 대한 무상함이 세월의 흐름과 대비되어서 그러는가싶다. 물줄기는 결국 흐르고 흘러 큰 강에 합류되어 먼 바다로 달려갈 것이다. 샛강의 목적지는 바다일 것이기에.
그렇다면 우리가 흘러가는 세월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바다로 간 물이 다시 비가 되어 산골짝으로 흘러내려오듯 세월도 돌아서 다시 오는 것일까.

샛강을 날마다 바라보는 까닭은 한 마리 해오라기 때문이기도 하다. 껑중한 다리와 오무렸다 늘였다 하는 긴 목, 그리고 하얀 깃털의 날개와 몸통이 멀리서 보아도 고고한 자태다. 이 해오라기 한 마리가 어디선가 아침마다 일찍 샛강으로 날아와 얕은 샛강 바닥에 발을 딛고 긴 다리를 움직이며 부리를 들고 샛강 바닥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지금껏 한 번도 해오라기가 먹이를 잡아 삼키는 것을 보지 못했다. 샛강에는 추운 겨울이라 물고기들이 어디로 숨었거나 살지 않는지도 모른다.
해오라기는 한 시간쯤 샛강을 몇 발짝 이리저리 움직이다가는 큰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른다. 천천히 저쪽 마을을 넘어 다른 하늘로 날아간다. 다른 강을 찾아가는 것이리라. 먹이를 구하지 못하고 날아가는 해오라기를 볼 때마다 마음이 심란해진다. 어디 가서 살아 있는 물고기들을 구해와 샛강에 놓아주고 싶어진다. 언젠가는 그렇게 하리라고 마음먹는다.

새봄이 오면 하리라고 생각한다. 저 샛강에 붕어, 피라미, 메기, 미꾸라지 같은 민물고기를 풀어놓아 샛강이 생명이 뛰놀고 번식하는 살아 있는 강이 되게 하리라. 그리하면 해오라기도 오래 머물리라.
샛강은 무심히 흐르고 해오라기는 날마다 샛강으로 날아오고 샛강에 잠시 머물다 아무 것도 얻지 못한 해오라기는 가뭇없이 다른 하늘로 날아간다. 이를 날마다 되풀이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세월 속에 머물다 해오라기처럼 사라져가는 저자의 인간들의 뒷모습을 보는 이가 어디 높은 곳에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바라미 빠르며 하늘히 놉고 나배 됫파라미 슬프니,
믌가이 말가며 몰애 흰 데 새 나라 도라오놋다.’
風急天高猿嘯哀(풍급천고원소애)
渚淸沙白鳥飛廻(저청사백조비회)

고교시절에 배운 두보의 ‘등고登高’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바람이 빠르며 하늘이 높고 원숭이의 휘파람이 슬프니/물가가 맑고 모래 흰 곳에 새가 돌아오는구나. 세월의 유구함과 인생의 무상함을 읊은 시인데 오랜 날이 지난 후 지금까지도 가끔씩 떠오른다.
바로 이 작은 샛강에 날아오는 해오라기를 보노라니 그 시가 딱 어울려 떠오른 것이다. 아무려나 두보의 시가 점점 좋아진다는 것은 점점 늙어간다는 것이리라.

여름에는 그렇게도 겨울을 그렸건만 막상 겨울에 들어서니 바깥출입이 드물어진다. 그리고는 어서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도리가 없다. 해오라기처럼 다른 하늘로 갈 수도 없으니 집안에 틀어박혀 쌓아둔 책이나 읽는 일밖에는.
해오라기는 어디서 날아오는 것일까. 해오라기는 또 어디로 날아가는 것일까. 한 마리 해오라기가 날아올 내일 아침을 기다린다. 그러니 샛강이여, 세월이 오든 가든 외로운 한 마리 해오라기를 기다려 거기 늘 흐르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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