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의 슬픔
멧돼지의 슬픔
  • 문틈 시인/ 시민기자
  • 승인 2015.12.09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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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부산 어느 매립지에 나타난 멧돼지 열한 마리가 포수들을 동원한 경찰에 사살되었다. 전국이 영하로 떨어진 날 새끼 일곱 마리를 포함한 멧돼지 가족이 배가 고파 먹이를 찾아 아파트 근처에 나타났다가 경찰에 신고되었다.

이들 무리는 먹을 것이 없자 2킬로미터나 되는 바다를 건너 한 매립지로 갔다. 그곳도 역시 먹을거리가 없었다. 멧돼지를 뒤쫓던 경찰은 매립지에 나타난 멧돼지 무리를 포수꾼 몇 명을 동원해서 다섯 시간만에 모두 사살했다.

멧돼지가 인가 근처에 나타난 일은 드문 일이 아니다. 서울에서도, 다른 지역에서도 먹을거리를 찾아 인가로 내려오는 일이 가끔 있다. 캐나다 북부에서는 북극곰이 인가로 내려와 쓰레기통을 뒤지는 일이 더러 있다고 한다.
그런데, 산에 먹을거리가 없어서 목숨이 위태로운지도 모르고 인가로 내려오는 이 땅의 산 짐승들이 가엾기는 하지만 이 세상은 인간이 지배하는 세상이고 보니 인간보호 차원에서 죽임을 당해야 하는 그들의 신세가 딱하다.

복잡한 도시 한 가운데 나타난 멧돼지의 경우는 그렇다 치고 사람이 살지 않는 울타리까지 두른 매립지에 들어온 멧돼지들을 사살할 것까지는 없지 않았을까. 새끼 일곱 마리는 따로 포획하여 산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 추운 겨울에 배고파서 내려온 짐승. 고양이가 건물 틈에 끼였다고 119가 동원돼서 구출하기도 하더니만 멧돼지에게는 그런 아량이 안통하나 보다. 맷돼지 동영상에 새끼 멧돼지들이 쫓겨다니는 모습을 보고 짠한 생각이 들었다.

오래 전 강원도 어느 산골에 연일 폭설이 내리던 겨울 외딴 집에 새끼 고라니 한 마리가 찾아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키워서 잡아 먹자고들 했는데 그 집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면서 겨울 동안 먹이를 주고 데리고 있다가 다음해 봄이 오자 고라니를 산으로 돌려보냈다.

이 나라에는 다소 생경한 단어가 될지 모르지만 선진국들에는 ‘동물권’(動物權)이라는 개념이 있다. 동물도 인간처럼 이 땅에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개념으로 그들의 삶을 배려하고 존중(?)한다. 옛날 인디언들도 짐승을 함부로 잡아먹지 않았다. 필요한 만큼만 잡아먹었다.

그런 것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사실 이 땅의 야생 동물들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기가 무척 힘들다. 동물권 같은 말은 얼어죽을 소리다. 사람들이 야산에 몰래 놓은 덫이 무려 80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런 속에서도 멧돼지 같은 짐승들이 살아 있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만일, 경찰이 매립지로 나온 멧돼지들을 포획하여 먹이를 주고 산으로 돌려보냈더라면 시끄러운 세상에 얼마나 흐뭇한 뉴스가 되었을까. 어린이들의 정서 함양에도 또 얼마나 좋았을까.

프랑스 여배우 브리짓드 바르도라는 배우는 한국의 개를 잡아먹는 행태에 반대하는 1인 시위도 벌인 바 있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마음이 황폐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도 충분히 이 지구라는 별에 인간과 함께 살아갈 권리가 있다. 동물을 사살하고, 덫을 놓고, 잡아먹더라도 그런 개념을 아주 잊어버리지는 말았으면 한다.

그렇다고 동물을 인간과 동등하게 처우하라는 말은 물론 아니다. 인간이 우선이니 동물이 사람을 해칠 우려가 있으면 막아야 한다. 도롱뇽이 죽게 된다고 몇 조원 들어가는 터널을 못 뚫게 하던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동물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 ‘먹이를 주고 살던 데로 돌려보내라.’ 그런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좀 살만한 세상 같을 텐데. 뭔 속도 모르고 추운 바다를 헤엄쳐 엄마 아빠를 따라갔다가 무참히 사살당한 새끼 멧돼지들이 요즘 바다 건너 유럽으로 피난가는 아랍 난민들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올해는 눈도 많이 올 거라는데 산에 사는 생명들에게 먹을거리를 갖다 주는 날을 정해 겨울 동안 동물권을 지켜주는 일을 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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