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금수저 그리고 갑질
‘헬조선’, 금수저 그리고 갑질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5.12.04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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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5년에 한국사회에서 가장 뜬 단어가 무엇일까? 1위 헬조선, 2위 금수저이다. 몇 년간 꾸준히 인기를 누려온 단어는? ‘갑질’이다.

2010년에 등장한 인터넷 신조어 ‘헬 (hell)조선(지옥 같은 대한민국)’은 2015년 8월부터 갑자기 떴다.

‘헬조선’의 부각 이면에는 청년들의 현실과 좌절이 자리 잡고 있다. 청년실업이 너무 심각하다. 이구백(이십대 구십%가 백수), 인구론(인문학부 대학생 90%가 논다)이다. 무급 인턴, 열정페이도 한 몫 한다. ‘미생’의 장그래는 결코 ‘완생’이 될 수 없다.

이런 현실에 청년들은 3포(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 5포(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를 넘어 7포(꿈과 희망 포기) · N포 즉 모든 것을 포기한다. N포의 마지막 길은 자살. 한국은 자살률 세계 1위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삶이 나아질 것 같지 않고('2015 사회조사 결과'는 국민 10명 중 8명이 그렇게 여기고 있다), 비전도 없고 경쟁만 치열한 대한민국. 그래서 청춘들은 계나(소설 ‘한국이 싫어서’에서 호주로 이민 간 20대 여자 주인공)처럼 ‘탈조선’을 꾀하고 있다.

계나는 탈조선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한국에서는 딱히 비전이 없으니까.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집도 지지리 가난하고, 그렇다고 김태희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나 이대로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나중에 지하철 돌아다니면서 폐지 주워야 해”
“난 정말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 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 만날 나와서 사자한테 잡아먹히는 동물 있잖아. 톰슨가젤. 내가 걔 같애.

#2. 금수저 · 흙수저, 이른바 ‘수저론’이 화두이다. 인터넷에서 흙수저 빙고게임이 유행하고 있다. 재산과 가정환경에 따른 기준표에 의거 나는 무슨 수저인지를 확인한다. 나는 금수저인가? 아니면 은수저 · 동수저? 그것도 아니면 흙수저?

수저론에는 "아무리 노오-력을 해도 소용없어. 세습사회에서는 안 먹혀!” “능력중심사회는 헛구호야. 부모의 재산과 사회적 지위가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해.” 이런 체념과 무기력이 담겨있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의 주장처럼 세계는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의 논문 '한국에서의 부와 상속,1970-2013' 연구에 따르면, 1980년대에는 상속이 자산형성에 기여한 비중이 27%였는데, 2000년대에는 42%로 급증했다. 상속의 자산 기여도는 앞으로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더욱이나 ‘수저론’이 설득력은 얻는 것은 한국은 치열한 경쟁, 승자독식, 서열화가 심하기 때문이다. 유치원부터 대학 심지어 직장까지도 줄을 세우는 풍토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세상에서, 흙수저는 ‘부품으로 태어나 노예로 죽을 팔자’가 된다.(장강명의 <표백>). 이 시대의 청춘들. 정말 불쌍하다. 미래가 안 보인다.

#3. 한편 몇 년간 꾸준히 인기를 누리는 단어는 ‘갑질’이다.

‘갑질’은 2013년 남양유업의 제품 밀어내기가 원조 격이다. 2014년 12월의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황 갑질’은 뜨거운 국민적 관심을 일으켰다. 이후 백화점 모녀 · 아파트 입주민들의 갑질, 국회의원들의 갑질, 심지어 판사의 갑질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갑질은 노동시장에도 허다하다. 열정페이, 알바착취로 청년들은 허탈하고, 정규직 만들어 준다고 성희롱 당한 계약직 여직원이 해고되자 자살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박카스 광고에선 ‘젊은이들 힘내라’고 한 회사가 취업준비생들을 두 번 울렸다. ‘o명’을 뽑는다면서 면접 치른 30명을 전원 탈락시키고 통보조차 안 했다.

위메프는 한 술 더 떴다. 영업직원 11명을 채용해 수습기간을 거친 뒤 전원 해고하였다. 더구나 위메프는 2013년 일자리 창출 우수기업으로 고용노동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188대 1로 뽑힌 사립학교 교사가 그 학교 이사장 며느리인 경우도 있었다. 그 뿐이랴. 모 부총리 인턴의 기적도 나타났다. 이 인턴은 공기업 면접에서 탈락했는데, 기적적으로 부활하여 ‘125 대 1’의 바늘구멍을 뚫고 취업에 성공했다. 누군가는 대신 탈락하고.

‘육룡의 나르샤’의 길태미가 죽기 전에 한 말이 생각난다. "약자는 강자에게 짓밟히는 것이다. 천 년 전에도, 천 년 후에도 약자는 강자에게 빼앗기는 것이다. 강자는 약자를 병탄하고 인탄한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한국사회는 공정하지 않고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갑질은 항상 일어나고 있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대리점 '갑질' 방지 남양유업법은 12월3일에 국회를 통과하였다. 2년 반 만에 법제화된 것이다.

#4. 2016년은 병신(丙申)년이다. 병신년에는 헬조선이 병신(病身)되어 대한민국이 정상화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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