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몽룡 교수와 광주․전남 고대사
최몽룡 교수와 광주․전남 고대사
  • 채복희 시민의소리 이사
  • 승인 2015.11.12 1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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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복희 시민의소리 이사
국정화 교과서 집필진에 선정됐다가 사퇴한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의 언행이 광풍 속에 휩싸였다.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졸업, 동대학원 문학석사, 하버드대학교 인류학․철학 박사, 그의 프로필은 한국 주류사회에서도 상층에 속한 수준이며 학자이자 교육자로서 거의 평생을 서울대에서 봉직하는 동안 전공분야인 고고학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 인물이었다.

지난 2012년 정년퇴직 당시 최교수는 두 가지 신기록을 보유한 학자로 화제를 모았다. 그것은 최연소 교수 임용, 그에 따른 40년 장기 근속 등이었다. 최교수가 첫 직장 전남대학교로 부임한 때는 1972년, 약관 26세의 나이, 얼굴에 홍조가 채 가시지도 않은 젊은 학자로서 대학 강단에 선 그는 1981년 11월 모교인 서울대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10여년 동안 전남대에 머물렀다.

그 10년 동안 최교수는 자신의 직장이 속해 있는 광주․전남 지역과 관련된 수많은 고고학 분야의 연구 실적과 결과물을 남겼다. 그는 특히 나주와 영암, 해남 등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고대유물과 호남고대사 연구에 열정을 바쳐 이 지역의 유구한 역사적 실체를 확인하고 그에 따른 지역적 자긍심 고취까지 이끌어내는 등 큰 업적을 일궈냈다.

서울대로 떠난 후 호남에 대한 그의 관심과 학문적 성과는 후학으로 이어져 내려 이른바 영산강권 고대문화 연구에 반석이 되었다. 전남대에서 강의하던 시절, 그는 자신의 수업을 듣는 제자들에게 고대 호남문화가 얼마나 찬란했는지 열정적으로 설파하면서 자부심을 불어 넣어 주었고 매번 새로운 책자를 들고 와 읽고 학업에 전념하기를 독려했다.

피비린내를 풍기며 정권이 광주를 유린하는 것을 보던 그해 5월 최몽룡 교수의 개인적 심정이 어떠했을지 알기는 어렵다. 다만 그가 서울대로 자리를 옮긴 것이 다음해 말이었는데 역사적 사건 과의 사이에 인과관계라도 있었는지, 평이한 자리 이동이었는지 그것 역시 알 수는 없다.

3년 전 퇴직 기념일 제자 60여명과 자리를 함께 한 최교수는 13년여 동안 끊었던 술을 다시 마셨다고 했다. 술을 지독히 좋아해 폭음 습관까지 있었다는 그가 52살 즈음부터 술을 끊었던 이유는 5권의 한국고고학 총서를 펴내기 위해서였고 결국 그는 그것을 완수했다. 정년 고별사는 도를 찾아 출가한 승려의 말과 흡사했다.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이란 표현이 들어 있었다.(연합뉴스 2012.02.12)

그로부터 불과 3년 후 오늘, 정권의 무도함에 의해 한 학자의 명예가 순식간에 추락하는 사건을 생생하게 목도한다. 그동안 권력의 분탕질에 엮이지 않고 학문의 길에 충실했으며 그에 따른 업적의 금자탑이 하루아침에 참담하게 부서진 현장.... 물론 그의 학문적 성과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종점 가까이 다가서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성찰적 삶을 논하는 원로학자에 대한 한치의 예의도 찾을 수 없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또 한편의 ‘대한민국 지옥도’였다.

“‘부적절 언행 의혹’ 최몽룡 교수 사퇴”(KBS TV)
‘여기자 성희롱 이혹’ 최몽룡 교수 집필진 사퇴(SBS TV)
“국정교과서 필진 오른 최몽룡 교수, 성추행 논란에 하차”(11.7 스포츠경향)

.......말 그대로 난세요, 서글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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