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와 송영길
천정배와 송영길
  • 박호재 주필/시민의소리 부사장
  • 승인 2015.11.1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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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재 주필/시민의소리 부사장
곡절 많은 인생처럼 정치권에서 봤을 때 팔자 사나운 선거구가 있다. 광주의 서구 을이 그렇다. 선거 때마다 평지풍파가 일었다. 선거판 좀 안다는 그 잘난 정치풍수들의 점괘가 빗나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덕분에 적잖은 정치인들이 그곳에 무덤을 썼다.

말뚝만 세워도 당선된다는 민주당 또는 새정연 공천후보가 거푸 고배를 마신 곳도 서구 을이다. 지난 4월 재보선 사례뿐만이 아니다. 김선옥 후보는 구청장 공천을 두 번 받고도 무소속 김종식, 전주언 후보에게 잇따라 패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선거 국면에서 무소속으로 기염을 토한 전 주언 당선자도 3일천하 액운의 주인공이 됐다. 무슨 마에 씌인 것처럼 민선 5기 청장 당선 3일 만에 수감되는 황당한 상황을 겪었다.

아직 불기운을 벗어나지 못한 탓인지 내년 총선 조짐도 벌써부터 심상찮다. 이미 대한민국 정가의 핵심 아이콘이 된 천정배 세력권 속으로 송영길 전 인천시장이 슬그머니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이다. 상승일로에 있는 천 의원의 기세로 볼 때 송영길 전 시장의 배짱도 두둑해 보이긴 하다. 나름 그만한 무게를 지니고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용기일 것이다.

물론 인정할만한 대목이 있다. 송영길은 허명의 정치인은 아니었다. 민주화 운동 과정에 새겨진 이력도 단단하다. 연세대학교 초대 직선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용접공 생활을 하며 노동운동에 투신했으며, 인권변호사 활동으로 명성을 얻는 등 정치적 족적이 만만찮다. 이 때문에 제도 정치권에 진입한 후에도 야당의 대표 논객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시장 재선에 실패한 패장의 신세이긴 하지만 그만한 뱃심을 부려볼 만 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송영길이 단지 자신의 내공만을 믿고 서구 을을 탐하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뭔가 천 정배 기세의 이상 조짐에 송영길의 정치적 촉이 작동됐다는 분석을 해볼 수 있다.

재보선 열풍이 낳은 천정배 신드롬이 허해져가고 있다는 말은 이미 한 두달 전부터 호사가들의 입 살에 오르내렸다. 신당 창당이라는 빅 이벤트가 예고만 됐지 대중의 눈길이 쏠릴 만 한 화끈한 움직임이 없었던 까닭이다. 정당 출범의 백미인 신뢰받는 세력과의 연대의 모습도, 가슴에 쏙 파고드는 차별화된 목소리도 미미했다. 한마디로 신당의 느슨한 행보가 송영길을 유혹한 셈이다.

그렇다고 송영길의 무모함이 덮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선 무엇보다 광주에 불쑥 얼굴을 내미는 정치적 메시지가 너무 허접하다. 통합, 이를테면 ‘뭉쳐야 산다’는 게 송영길의 출수의 변이다. 새정연이 호남에서 위기에 몰릴 때마다 반복했던 낡은 구호다. 이 때문에 광주가 왜 천정배를 선택했는가에 대한 성찰이 전무했음을 스스로 고백한 꼴이 됐다. 그동안의 삶에 어떤 변곡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송영길이 오랜 세월 쌓아온 내공이 무너진 듯 한 모습에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필자는 한때 송영길의 후원조직인 ‘동서남북’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했던 적이 있다. 그를 통해 한국의 정치변혁을 꿈꿨던 까닭이다. 정치가 생물이듯이 정치권력을 쫓는 정치인들의 행적 또한 일관된 궤도를 달릴 수는 없다. 그럴지라도 최소한의 명분도, 당위도 갖추지 못한 송영길의 광주 출사는 생뚱맞다. 옛 기억을 돌이켜서가 아니라 송영길은 여전히 몰락의 위기에 놓여있는 호남정치의 소중한 자산이다. 그래서 서구 을에 정치적 묘비명을 쓰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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