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 참깨!
열려라, 참깨!
  • 문틈 시인/ 시민기자
  • 승인 2015.10.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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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랜만에 바깥일을 보고 저녁 늦게 집에 도착하여 현관문을 열려고 전자카드를 꺼내려하니 열쇠 전자카드가 안 보인다. 아뿔싸, 양복을 차려입고 나가는 바람에 평상복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아파트 카드를 깜박 잊고 안 가지고 나갔던 것이다.
비밀번호를 눌러보았지만 현관문에 달린 번호 잠금장치는 꿈쩍도 않는다. 전자장치로 된 아파트 문손잡이에서는 숫자들만 명멸하고는 요지부동이다. 현관 앞에서 서서 비밀번호를 생각나는 대로 이것저것 조합하여 계속 시도해보아도 열리지 않는다. 그럴 것이 새로 이사 오고 나서 전자카드로 문을 열었을 뿐 한 번도 비밀번호를 사용한 적이 없어서 비번이 기억 속에서 아리송하다.

작고하신 아버지가 밤중에 잠깐 밖에 나가셨다가 아파트 입구 비밀번호를 몰라 한참을 겨울 추위 속에서 발을 구르다 다행히 어떤 입주자가 들어가는 뒤를 따라 꽁꽁 언 몸으로 간신히 집으로 귀가한 적이 있었다. 이 사람이 그 모양이 되어버렸다.
어디 여관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내일 고가 사다리를 동원해 집에 들어가야 하나, 어쩌나 별의별 생각을 하다가 다시 비번 개문에 도전해보았다. 거의 30분여 씨름한 끝에 현관 전자장치에서 덜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후유, 흡사 알리바바 동굴 문을 연 듯한 기분이다. ‘열려라, 참깨!’ 하면 열리던 동화 속의 그 동굴 문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열릴 수는 없을까. 어릴 적 대문이나 방문에 채우는 자물통처럼 열쇠를 가지고 다니며 구멍에 넣어 돌리면 열리는 단순한 장치가 전자창치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요즘 짓는 아파트는 죄다 이런 전자 장치들이 집안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새로 이사 온 집만 해도 그렇다. 부엌, 거실, 방, 천정, 에어컨, 전기밥솥, 화장실 등에 사용할 줄 모르는 전자장치들이 은행금고처럼 첨단기기로 이지저리 얽혀 장치되어 있다. 그 전자장치들은 한 밤중에도 반딧불이처럼 희미한 빛을 머금고 있다. 빛을 발하는 곤충들처럼.

아파트는 이제 사실상 전자제품이라고 해도 될 성부르다. 그런데 이런 편리한(?) 전자장치들이 무척 불편하기만 하다. 관리사무소에서 받아온 아파트 사용설명서가 거의 책 한권 분량이다. 그러니까 아파트에서 살려면 이런 복잡다기한 전차장치들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각 전자창치 사용법을 작은 글자로 박아놓았는데 거의 이해불가 수준이다.

부엌에는 작은 모니터도 달려 있다. 아파트 입구나 현관문 앞에서 누가 동 호수를 누르면 그 모니터에 그 사람의 얼굴이 조그맣게 뜬다.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지만 텔레비전 그림도 나오고, 그 밖에도 여러 기능들이 작동한다는데 다룰 줄을 몰라서 사용중지 상태다. 이런 것들은 없어도 될 법한데 뭣 때문에 달아놓았을까. 전자장치는 여기서 끝나지 않을 모양이다.

간밤에는 벽에서 벌레 우는 소리가 계속 나는 바람에 잠을 설쳤다. 알고 보니 방 벽에 설치된 ‘취침, 기상, 방범 장치에서 나는 소리다. 잠에서 깰 때가 되었다는 소리다. 그런데 벽시계는 새벽 4시이다. 아마 방안 전등 스위치를 만지다가 어디를 슬쩍 뭘 잘못 건드렸나보다.

앞으로는 사물인터넷(IoT)이란 것이 연결되면 집 안에 있는 모든 전자제품들이 스마트폰의 버튼 하나로 작동시킬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스마트폰으로 아파트라는 전자제품을 어디서든 작동시킬 수가 있다는 이야기다.
퇴근길 버스 안에서 밥솥에 명령을 내려 밥을 짓고, 귀가 전에 미리 방바닥을 따뜻하게 난방을 할 수도 있단다. 그런 편리를 이용하려면 무엇보다 작동법을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 비밀번호를 다 외워두어야 하고, 그렇지만 별로 내키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아는 분에게 했더니 “나이 먹을수록 변화를 따라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뒤처지고 말아요.”한다. 따라가야 한다니 대체 어디로 따라간다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작은 비밀을 자물통으로 잠그고 쇠때로 열던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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