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두콩' 펼치면 우리들 세상 보여요
'완두콩' 펼치면 우리들 세상 보여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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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만들고 어린이가 읽는 '완두콩 신문'>

"얼마 전부터 우리주변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바닷가재 등 살아있는 동물들을 상대로한 '뽑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이 기계 안에 들어간다고 생각을 해봐라... 제발 우리 어린이들은 나쁘고 돈만 아는 사람들이 만든 이 기계들에게 아무 관심을 갖지 말자. 아~ 불쌍한 동물들이여!" - 이정빈 기자

"완두콩신문" 2001년 4월호 사회면에 실린 박스기사다.
일기인지, 주장글인지, 소감문인지 경계는 모호하지만 '어린이가 만들고 어린이가 읽는' 어린이 신문을 장식하는 소중한 기사다.
이런 어린이들의 생활속 기사들로 매월 말 일반신문 크기 4면짜리로 발행되는 "완두콩 신문".

대자, 운남, 월곡초등학교 등 광산구 지역 초등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모인 '완두콩어린이기자단'이 이 신문을 만드는 주인공들이다.

광산 YMCA서 초등생 모아 올 1월 창간

왜 하필 완두콩인가.
'콩깍지 안에서 도란도란 사이좋게 살면서 초록색 꿈을 키워가자'는 뜻이란다. 이 완두콩 기자단은 지난해 9월부터 광주YMCA 광산지회에 둥지를 틀고 3개월간의 교육과 준비를 거친 뒤 올해 1월 창간호를 냈다. 매달 4천500부씩 발행되는 이 신문은 완두콩 기자들이 속해있는 시내 16개 초등학교와 전교조, 광주YMCA 각 지회 등에 무료로 배포되고 있다. 인터넷 학습사이트 http://www.digitalschool.com에서도 열어 볼 수 있다.

8명으로 시작한 완두콩들은 발행 6개월을 거치는 동안 학교와 학부모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지금은 26명으로 늘었고, 교육부·사회부·문화부 등의 부서조직과 부장·차장 체계까지 제법 신문사다운 모습을 갖췄다.

기획부터 취재·지면배치까지 스스로

신문발행을 위한 기획회의에서부터 취재와 기사작성, 그리고 기사의 지면배치까지 부서별 회의와 전체회의를 통해 스스로 짜낸다. 어른이 도와주는 건 기사작성 교육과 신문편집, 그리고 신문제작을 위한 재정지원정도다.
"완두콩"이 여기까지 자리를 잡기에는 광주YMCA광산지회 사회교육부 신기주(29) 간사의 숨은 노력이 컸다.

"이제 겨우 10살 안팎의 초등학생들 생활은 삭막함 자체예요. 오전엔 학교, 오후엔 학원, 저녁 먹고 다시 학원으로. 챗바퀴 돌듯한 생활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놀랐지요. 다른 학교 친구들이 어떤 생각과 어떤 생활을 하는지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절실하다고 느꼈어요."

신문에 관한 경험이라곤 전무한 신씨가 어린이 신문을 만들겠다고 처음 제안 했을 때, 주변에선 격려보다 걱정의 목소리가 많았다. 아이들 모으는 일, 교육시키는 일, 그리고 재정은 어떡할 거냐 등등. 하지만 신씨의 답은 간단했다.

"좋은 일에 좋은 마음을 가지고 노력하니 되더라구요."
신씨의 정성이 지극했는지 완두콩들은 잘도 따라와 주었다. 자신이 취재하고 메일로 보낸 기사가 신문으로 만들어져 나온다는 사실에 모두들 만족해했던 것이다.

완두콩 기자단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도 눈에 띄게 성장했다.
'약속을 지키는 신문'을 만들겠다는 다짐 때문이다. 신문발행일에 대한 약속은 물론이고, 기자 스스로가 먼저 지키지 않으면 신문기사의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

게임·동물뽑기 그만…'눈높이 기사' 가득

덕분에 '기자와 기사의 약속'은 완두콩 기자단의 생활 속에 자연스레 배어들고 있다.
곽천웅(11. 대자초교5) 교육부장은 지난호 교육특집에서 '게임때문에...'라는 기사를 실었다. 게임에 빠지면 부모님께 야단도 맞고, 성적도 떨어지니 너무 빠져들지 말아야한다는 내용이었다. 곽부장은 이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기사 쓴 뒤로요, 게임 끊었어요"
완두콩들은 또 취재활동이라는 체험을 통해 자신감을 익혀가기도 한다.
'광주교통방송국 탐방기'로 지난 4월호 1면톱을 장식했던 박아름송이(여.8.태봉초교3)기자는 혼자서 자동카메라까지 무장한 채 방송국을 누비고 왔다.
"경비아저씨한테 가서요, '완두콩신문 기자인데요, 교통방송국 취재하러 왔어요' 하니까요, 아저씨가요, '완두콩 기자님이세요? 얼른 들어가서 취재하고 오세요'했어요."

10살도 안된 '콩만한' 어린이 기자가 취재를 하겠다며 피디와 아나운서를 찾아가는데 협조해주지 않을 강심장(?)이 어디 있겠는가.

완두콩 기자들의 눈은 어린이의 생활에만 머물지 않는다. 세상을 향해 열려있으며 때론 어른들의 잘못에 대해서도 따끔한 비판을 하는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어른들 지역감정 닮지말자' 일침도

"이렇게 좁은 땅덩어리가 몇 개로 나누어지면 장차 우리 나라는 망하게 될 것이다. 우리 어린이들이 어른이 될 때쯤이면 절대 지역감정이라는 단어는 사라졌으면 좋겠고, 또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 어린이들이라도 어른들의 그런 행동을 본받지 말자"- 이정준 기자 (5월호 '다시 생각해보자')
완두콩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 광주YMCA광산지회에 모여 각종 회의와 기사작성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자신이 쓴 기사를 손보기도하고, 친구들의 기사에 대해 이야기도 나눈다.

이 모임이 있는 날 완두콩 기자단은 피아노, 태권도 등 학원 수업을 포기한다. 기자단 모임과 맞바꿔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날 만큼은 학원결석에 대해 학부모들도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집이 북구 두암동인 박아름송이 기자 역시 한시간 가량 버스에 시달리면서도 매주 광산YMCA를 찾는다. 광산구에서 가족이 이사하는 바람에 '완두콩'생활을 포기할뻔 했던 박기자는 2주 동안 눈물로써 호소했고, 결국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냈다. 어쩌면 완두콩 기자들의 이런 열정들이 완두콩 신문의 저력인지도 모른다.

발행회수가 늘면서 한편으론 걱정도 늘고 있다.
"재정문제가 크죠. 지금까지는 뜻 있는 분들의 광고후원과 광산 YMCA의 지원금으로 꾸려왔지만 내년, 그리고 내후년까지 이어질지는 아직 장담 못해요."

"기사쓰며 우리도 쑥쑥 자라요"

신기주 간사는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의 꿈이 담긴 이 신문을 계속 만들어 내야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아이들의 꿈은 이 나라의 미래이기 때문에.

이런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완두콩 어린이기자단은 콩깍지 속의 형제들처럼 알콩달콩 다투기도 하고, 도란도란 사이좋게 어울리기도 하면서 기사쓰기의 즐거움에 푹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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