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오늘도 시내버스 타는 이유
[세상보기]오늘도 시내버스 타는 이유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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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 광주경실련 사무처장

광주시 서구로 이사를 온 뒤 출근하려면 2번을 갈아타고 꼬박 1시간 가까이 시내버스 속에서 시달려야 한다. 다행히 불평 한마디없이 카플해주는 후배 덕에 출근길 스트레스는 벗어났다.

승용차가 주는 그 안락함에 나도 조금씩 조금씩 길들여지고 있다. 시내버스에 의지해 출퇴근하던 찜통속 고통이 점점 희미해지고 나도 자가용 내 차를 몰고 출퇴근 하고 싶어진다.

전엔 시내버스에서 만나는 작은 서류가방을 든 백발의 노신사가 멋있어 보였는데 요새 시내버스에는 양복쟁이 아저씨들이 거의 없다. 어쩌다 큰 맘 먹고 타고 싶다가도 쪽팔려서 싫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제시간에 안 오지 콩나물 시루에 운이 좋아야 겨우 에어컨 달린 버스를 타는데 누가 쉽게 타겠는가.

다들 자가용 중독증 걸려가는데
사람 도시 살리는 대책 왜 나오지 않나
광주시 교통정책이여
자가용 버리고 대중교통 살려내라


그래도 이런 것은 견딜만 하다. 이런 저런 시비가 일 때 겨우 버스타고 다니는 주제에 말이 많다는 투의 버스기사 아저씨들의 눈총과 대접까지 받으면 정말 견디기 어렵다.

괜히 없이 사는 설움이 겹치고 만원버스에 시달리는 처지가 처량하다. 요새는 집없는 설움보다 차없는 설움이 더 큰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벌써 40이 넘어버린 내게 시내버스 타기는 갈수록 힘들고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버스를 타고 다니면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지금의 자동차문화를 이대로 두고서도 우리 문화가 지속가능할까? 우리는 언제까지 자동차와 사람을 경쟁시키고 버스와 자가용승용차를 대립시켜야 하는가?

대중교통 특히 시내버스를 통하면 그 도시의 교통정책이 한 눈에 들어오고 그 도시의 모습, 이미지, 사회복지등 도시전체의 살림살이 윤곽이 대강은 잡힌다. 그래서 월드컵경기를 앞두고 있는 도시마다 교통대책 마련에 온갖 부산을 다 떨고 대중 교통 선진화에 목을 맨다.

광주시도 예외는 아니다. 시내버스 회사의 투명성을 확보해 요금인상과 서비스를 둘러싸고 해마다 되풀이되는 갈등을 줄이고 경쟁력도 키우려는 작업을 한단다. 그런 와중에 요 며칠사이에는 뜽금없이 선진화를 명목으로 택시증차 계획을 들고 나와 택시사업주만 살찌게 한다고 시장이 항의를 받고서야 마지못해 철회하는 한바탕 홍역도 치렀다.

이렇듯 각 도시에서 공언하고 있는 교통대책이 다 영 마땅찮다. 시민은 없고 그나마 시늉만 내고 말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자동차 중심문화에 철저히 중독돼 자가용 승용차 없이는 하루도 견딜 수 없는 시민들이 늘어나는데 근본치유책이 없는 면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1세기를 맞아 외국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그동안의 교통정책을 대전환하고 있다. 한마디로 교통패러다임을 확 바꾸는 계획이 수립되고 실천되고 있다. 영국의 교통 뉴딜정책을 포함하여 다른 나라들에서는 21세기 교통정책의 중심과 방향을 효율에서 형평으로 잡고 있다. 수요관리 우선정책을 시행하고 자가용승용차 위주의 도시교통에 의해 소외된 대중교통이용자들에게 보다 많은 혜택을 보장한다.

원인자부담 원칙에 따라 도시교통 악화에 책임이 많은 자가용승용차 이용자들로부터 사회적 비용을 적극적으로 회수하려고 한다. 또 시민들의 반대로 시행이 어려웠던 승용차교통량 감축 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할 계획을 세우고 이를 추진하는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여러 갈래의 갈등구조에 놓인 도시교통문제를 풀어내는 첫 번째 원칙은 자동차를 버리고 사람을 살리는 일이요, 그 다음이 자가용을 버리고 대중교통을 살리는 일이다. 광주시 교통정책이 나아가야 할 길은 이미 정해져 있다. 가지않고 있을 뿐이다.

모질게 맘먹고 오늘도 버스에 오른다.

/김재석 광주경실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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