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라는 의미
‘의미’라는 의미
  • 한희원 한희원미술관 관장
  • 승인 2015.10.14 18: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한희원

어떤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생명의 탄생만큼 경이로운 일이다. 생명이란 살아 숨 쉬고 존재하는 모든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탄생이란 무의 존재에서 생명의 상태로 거듭남을 말한다.
인간이 생의 과정에서 자신의 영혼을 뒤흔드는 의미를 만난다는 것은 또 다른 탄생의 순간을 만나는 일일 것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의 변화를 겪게 된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어떤 대상과 마주하는 순간 잠자고 있던 감정들이 일렁이며 영혼을 두드리고 그 대상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찰나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일 수도 있고 자신만이 추구하는 생의 철학일수도 있다.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시인 김춘수는 그의 시 “꽃”을 통해 생의 길을 가다 만나는 관계 속에서 나와는 무관한 단순한 대상에서 꽃이 하나의 의미로 완결되어가는 과정을 노래하고 있다.
의미가 다가오는 상태는 결코 크고 거창한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눈여겨보지 않는 평범함 속에도 의미는 존재하고 아주 작고 소담스러운 것에도 존재한다. 어떤 경우에는 예기치 않는 순간에 자신도 모르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 만날 수도 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 앞에 다가오는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아서 삶의 길을 변화시키지만 우둔한 자는 소중한 시간이 다가와도 그냥 스쳐 지나가게 된다.

인간은 방황하는 존재로 방황을 통해 참된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자이다. 방황의 시간 속에서 하나의 의미를 만나고 그것을 통해 자신만의 길을 찾는다면 김춘수의 시에서처럼 ‘꽃’은 단순히 정형화된 아름다운 꽃이 아니라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생의 꽃’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10월이 왔다. 초입부터 가을비가 드물게도 세차게 내렸다. 그 비로 오랫동안 대기를 정복하고 있던 햇살도 힘을 잃을 것이다. 비가 내리던 날 세찬 바람에 온 몸을 맡기고 있는 강변을 찾아 의미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내게 찾아온 ‘의미’를 나는 어떻게 맞이하고 변화시켜왔는지......그리고 내 운명 앞으로 다가올 의미를 어떻게 잡을 것인지를......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