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길을 걸어요(18) 경양로
함께 길을 걸어요(18) 경양로
  • 정인서 기자
  • 승인 2015.09.22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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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음식명물 거리 AI로 손님 ‘뚝’ 떨어져
광주 음식명물 거리 AI로 손님 ‘뚝’ 떨어져
2차선 도로 양쪽 불법주차 대책 심각해
화상경마장, 법정주차면적 내세워 ‘어렵다’

경양로는 양동 발산마을 건너편의 임동의 전남방직에서 시작하여 산수오거리에 이르는 왕복 2차선 도로이다. 옛날 같으면 큰 길에 속했겠지만 지금의 경양로는 전체가 비좁은 도로인데다 양측에 주차된 차량 때문에 도로사정이 매우 안좋은 곳이다.

70년대 전후만 해도 이곳은 전남방직과 일신방직 공장이 있었던 곳이라 이곳에서 일하는 방직공장 여공들로 인해 꽤 붐볐던 곳이다. 지금은 전남방직만 남아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사용하지 않는 공장 창고의 대부분은 중고자동차 판매나 음식료품 물류창고 간판이 붙어 있었다.

전남방직은 1953년에 설립되어 1970년 (주)전방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아직도 광주 사람들에겐 전남방직으로 통한다. 이곳 공장 입구에 ‘전남방직(주) 여사원 모집’이라는 현수막이 걸린 것을 봐도 그렇다.

원래는 일제강점기 때 1935년 가네보방적이 3만추의 대형공장을 준공했는데 1953년 이 회사를 84억원의 자본금으로 인수하는 형태로 설립했다. 광주공장 외에도 천안, 평동, 익산, 영암, 시흥에도 공장이 있고 4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일신방직은 1951년 그 전신인 전남방직(주)이 설립되었고 1961년 8월 전남방직(주)에서 분할했다. 1987년 광주1공장 방적2공장, 2007년에 광주2공장을 준공하는 등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섬유(면방직) 분야 1위를 2005년부터 2011년까지 받았다.

그러나 일신방직도 공장 규모가 줄어들어 도로변의 공장 일부는 그린요양병원 등 2개의 요양병원으로 변했다. 밖에서 바라보면 지금도 공장이 가동되나 할 정도로 보이지 않는다.
‘뽕뽕다리’ 다리 건너 삼천궁녀

당시 공장에서 일하던 여공들은 천변에 놓인 뽕뽕다리(예전 건설현장에서 쓰였던 구멍이 뚫린 철판다리)를 건너 발산마을에서 대부분 살았다. 발산마을 노인정의 한 할아버지는 “그 때 이곳에 ‘삼천궁녀’가 살았었다”며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한때 영화를 누렸던 임동 공장 일대는 주변은 허름한 건물들로 도심재생이 필요한 지역이라는 것을 느끼게 만든다. 일신방직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빠져 한 블록을 나서면 광주에서 음식거리 중의 하나로 유명한 유동 오리요리의 거리가 나온다. 입구에는 노란 철구조물에 오리탕 그릇과 오리 몇 마리가 청동으로 주조된 것은 데 잘 눈에 띠지 않았다.

이어서 200여m의 길 양쪽으로 수십여 개의 오리탕집이 즐비하다. 대낮이지만 조그만 LED간판도 켜놓고 반짝거리는 것을 보니 저녁에는 휘황찬란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대학 다니고 직장 신입 시절에는 한참 먹으러 다니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이곳을 찾는 발길이 줄어들었다. 예전보다는 못하지만 아직도 광주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며칠 전 말바우시장과 담양시장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오리요리의 거리에 손님이 뚝 떨어졌다. 지난해 2월에도 이런 일이 있어 상가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시청 직원들이 나서서 오리고기 시식을 시작으로 오리고기 소비촉진을 위한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오리요리의 거리 끝자락에는 NC백화점이 왼쪽에 있다. 지역 향토자본인 송원백화점으로 1995년 문을 열어 한때는 성업을 했지만 신세계, 롯데가 광주에 들어온 뒤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자 현대백화점에 운영권을 넘겼다. 1998년 6월에 위탁경영(OMA 계약)을 맡았으나 별다른 매출성적이 오르지 않자 위탁경영 계약이 만료된 후 2013년 6월에 철수하였다. 지금은 이랜드그룹의 계열사인 NC백화점이 송원백화점의 위탁경영을 맡고 있다.

이 백화점의 대각선 맞은편에는 광주에서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한 창억떡집이 있다. 1965년 동명동 도내기시장에서 시작한 이 떡집은 오전 내내 떡연기로 점포가 보이질 않은 정도로 성업을 이뤘다. 프랜차이즈 시대를 맞아 지금은 예다손이라는 브랜드로 2008년부터 광주는 물론 전국에 떡 프랜차이즈를 개설해 떡카페의 시대를 열기도 했다.
화상경마장, 주말이면 주차난 민원

NC백화점과 창억떡집이 있는 길에서는 광주역이 마주 보인다. 광주의 관문이었던 이곳은 KTX가 광주송정역으로 통합되자 최근에는 근처 상가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이에 따라 광주역 활성화방안을 모색하는 다양한 주장과 공청회 등이 열리긴 했으나 뾰족한 묘책이 나오질 않는다.

다만 이 지역을 북구청과 경찰서 등 관공서가 들어오고 절반 정도는 문화복합시설로 활용하면서 진월동에서 백운동을 거쳐 조선대 앞을 지나오는 푸른길의 연장선상에서 시민공간으로 활용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제봉로를 만나는 지점 양편으로는 조그만 철공구상들이 있다. 그리고 오른편에는 8층 건물의 한국경영원 빌딩이 있고 남양건설도 같은 건물에 있다. 한 블록을 따라 더 가면 독립로를 마주친다.

이곳을 조금만 지나면 이 동네의 명물인 대성콩물이 나온다. 점심때면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먹기가 일쑤일 정도로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이 길은 유난히 복잡하다. 양쪽에 주차된 차량 때문에 주행차량들이 교차해서 지나기가 힘들 정도다.

사진을 찍기 위해 차를 잠깐 세웠더니 대성콩물 주인이 무슨 일로 사진을 찍느냐고 묻는다. 이 동네에서 유명한 콩물집이라 사진을 찍는다고 했더니 인근의 화상경마장 때문에 금토일이면 주차차량으로 몸살을 앓는다고 하소연한다.

그 길을 빠져나가니 왼쪽의 커다란 핑크색 빌딩이 화상경마장이다. 가끔 주말에 이곳을 지날 때면 주차요원이 나와 차량운행을 안내할 정도로 복잡한 곳이다. 인도에서는 좌판을 놓고 경마 관련 최근 순위표 등이 실린 책자를 팔고 있었다.

땔감 팔던 나무전거리, 이젠 목공소

이곳 경마장은 지난 2000년에 들어섰다. 주민들의 민원 때문에 주차난 해소를 위해 모두 30억원(국비 15억·시비 7.5억·구비 7.5억)을 들여 계림동 광주마사회 인근에 70∼80면 규모의 공용주차장을 건립할 예정이다. 동구는 오는 10월까지 부지를 확정짓고, 올해 내에 토지 보상 협의를 거친 뒤 내년에 바로 착공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턱없이 부족할 지경이다. 계림8구역 일대가 ‘2019광주세계수영선수권’ 선수촌 부지로 확정되면서 땅값이 급등해 동구가 계획했던 예산으로는 주차장을 건립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동구가 마사회 측에 예산 지원 요청 공문을 보냈지만 마사회 측은 “이미 362면의 법정 주차면적을 갖추고 있어 당장은 어렵다”는 구두 답변만 반복하면서 사실상 지원불가 방침을 밝혔다고 한다.

다시 한 블록을 지나 계림오거리에 이르니 오른쪽에는 대인시장이 가깝게 자리했다. 첫째주와 셋째주 주말이면 별장이라는 야시장 열리면서 젊은 청춘들이 붐비는 시장이 됐다. 또 청년작가들이 만든 핸드메이드 제품도 판매하고 있어 잘 들여다보면 마음에 드는 제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

계림동 오거리길은 1944년까지 철도가 있었던 곳이다. 송정리역에서 담양까지의 광주선(구 전남선)은 지금의 계림동 오거리길로, 화순으로 가는 경전선은 지금의 경양로길로 나갔던 것이다. 계림동오거리 한 중간이 철도분기점이었다. 광주선은 1944년 10월 일본의 전쟁 물자 조달을 위해 철거되고, 전라선은 1969년 광주역사가 중흥동으로 이전하면서 이설되었다.

큰 길을 건너면 나무전거리를 만난다. 나무전거리는 동명동 253번지 일대, 계림로터리에서 양희슈퍼까지 350m구간을 말한다. 나무전거리는 옛 ‘광주읍성’이 있을 때부터 무등산에서 해온 땔감을 거래하던 땔감 거래 시장이었다. 이곳이 동문밖으로 시내 중심과 가까웠기 때문에 '나무전'이 열린 것이다. 지금은 목재나 문짝, 싱크대, 합판 등을 취급하고 창호를 비롯한 문을 가공하는 ‘문집’이 많다. 나무의 질긴 인연이 계속되고 있다.

산수동민 애환 담긴 굴다리 옛터 사라져

나무전거리 활성화사업의 하나로 계림로터리에 상징조형물을 설치하고, 계림목재 외 80여개소의 간판정비를 통한 테마거리를 조성하고 있다. 점포마다 둥그런 간판에 번호가 붙어있었다. 얼른 보니 80번이 눈에 보일 정도로 특화거리로 조성하는 것처럼 보였다. 일부 점포는 인테리어라는 간판을 달아 단순한 목공소 수준을 넘어선 듯하다.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상당수의 점포가 문을 닫았다.

한참을 더 걸어가니 푸른길공원과 만난다. 왼쪽에 커다란 바윗덩어리에 ‘산수동 굴다리옛터’라는 글씨가 있었다. 2007년 산수1동자치위원회가 세운 이 석물 아래에 이런 글이 있었다.

“높이 2.5m 너비 6m 굴다리, 작지만, 우리 산수동 사람들의 아름다운 통행로였던 이곳은 1967년 7월 25일 설치된 이래 산수동을 상징하는 만남의 거리였을 뿐만 아니라 산수동민들에게 사랑의 훈기를 불어넣어준 휴식과 추억의 자리였습니다. 2000년 8월 선로변경으로 그 옛날 자취는 사라졌지만, 굴다리에 얽힌 주민들의 소중한 추억과 애환이 서려있는 유서 깊은 장소를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이정표를 세워 후손들에게 그 뜻을 길이 전하고자 합니다.”

산수오거리 방향으로 한참을 걸어가니 인편에 산수초등학교와 충장중학교 간판이 보였고 산수오거리에서 경양로길로 일방통행이 되어 있어 이곳으로 차량들은 진행하지 못했다. 그리고 산수오거리를 만나니 팔각정 정자가 있었다. 현판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곳에 앉아 쉬고 있던 주민들은 ‘유선각’이라 부르고 있었다.

길 건너로 무등산으로 오르는 길이 보였고 한편에는 ‘무등산옛길’이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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