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걸어요(17) 미술관 많은 ‘제2예술의 거리’ 의재로
함께 걸어요(17) 미술관 많은 ‘제2예술의 거리’ 의재로
  • 권준환 기자
  • 승인 2015.09.16 2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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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종화의 대가 의재 허백련, 전통화법 계승

광주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무등산에 올라봤을 것이다. 최종 목적지가 가까운 중머리재였을 수도 있고, 또는 중봉, 입석대, 누군가는 서석대까지. 높이와는 상관없이 증심사를 거쳐 목적지를 향해 한발 한발 걸어본 경험은 가지고 있다.
기자가 어렸을 적에 부모님 손을 잡고 증심사에 간다고 하면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예전 증심사 오르는 길 양 옆으론 무등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계곡을 끼고 통닭집 산장들이 줄지어 있었다. 증심사 산장에 온다는 것은, 다시 말해 닭백숙을 먹는다는 말과 같았다. 이런 행복한 외출을 위해 지나던 2차선 도로가 바로 의재로다.

▲의재로가 시작되는 의재 허백련 선생 동상
광주 동구 의재로는 지하철 학동·증심사입구역 3번 출구 근처에 있는 의재(毅齊) 허백련(許百鍊) 선생 동상 앞에서 시작된다. 이 길은 쭉 이어져 전통문화관 앞까지 연결된다.
광주시는 2002년 의재로 홍림교에서 운림중으로 가는 620m구간을 4차로로 확장한 바 있다. 2007년 이전까지만 해도 학동3거리에서부터 증심사까지 3.7km도로는 2차선이었다. 2007년 당시 증심사 지구 이주단지 진·출입로를 확보하기 위해 확장공사를 실시해 지금의 4차선 도로로 바뀌었다.

친구 위해 잠시 머문 것이 광주 정착 계기돼

의재로라는 이름은 허백련 선생의 호를 따서 지어졌다. 허백련 선생은 1891년 진도에서 태어났다. 그는 한국 남종화(南宗畵)의 대가로 무려 75년의 작품 활동을 통해 1만여 점에 이르는 작품을 남겼다.
의재는 8세 때 진도에 유배 중이던 무정(茂亭) 정만조(鄭萬朝)의 서당에서 글공부를 시작했다.
후에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제자인 소치(小癡) 허련(許鍊)이 만든 진도 운림산방(雲林山房)에서 소치의 아들이자 남종화의 맥을 잇는 미산(米山) 허형(許瀅)의 제자로 11살부터 그림공부를 시작했다.

의재란 호는 허백련 선생이 15세 되던 해에 스승인 무정 정만조가 지어줬다. 이후 의재가 18세 될 때 스승 정만조의 귀양이 풀리면서 서울로 돌아가게 됐는데, 이때 의재는 무정의 뒤를 따라 함께 상경하게 된다. 하지만 한일합방으로 인해 국치를 당하면서 서울생활을 그만두고 일본으로 넘어간다.

일본에 있을 때 당시 일본 남종화의 대가로 인정받던 소실취운(小室翠雲)을 만나게 되는데, 소실취운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의재의 말에 그림을 그려보라고 한다. 의재는 정성을 들여 산수화 한 점을 그렸고, 의재의 재능을 알아본 소실취운은 자신의 집에 머물며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소실취운의 도움으로 안정적인 일본생활을 하던 중에 부친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다 변호사면서 일본생활 중에 도움을 많이 주었던 김영수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하지만 김영수는 당시 폐병을 앓아 몸이 많이 안 좋은 상태였다.

의재는 일본으로 돌아갈 계획을 잠시 멈추고 김영수를 당시 광주부립병원, 지금의 전남대학교병원에 입원시키고 그 옆에 있던 여관방에 머물게 된다. 이것이 후에 의재가 광주에 정착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의재는 192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산수화인 ‘추경산수(秋景山水)’가 2등을 차지하면서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이후 광주로 내려와 정착해 작품활동과 문하생 지도에 매진했다.
당시 의재와 같은 세대 화가들이 서울을 중심으로 한 근대적인 작품에 몰두했던 것과는 달리 의재는 전통 화법을 계승하고 심화시키는데 전념했다.

▲의재로는 전통문화관 앞에서 끝이 나며, 증심사길로 이어진다.
호남의 서화, 다도문화 발전에 기여

1938년 광주에서 서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친목단체인 연진회(鍊眞會)를 발족하고, 호남지역 서화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광복 직후엔 무등산 삼애다원(三愛茶園)을 설립하고 춘설차(春雪茶)를 생산해 다도(茶道)문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1946년 광주국민학교를 설립했다가 1947년에 농업고등기술학교로 교명을 변경해 청소년들에게 농업기술을 익히고, 공부도 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에도 관심을 가졌다. 1975년 서울 미도파화랑에서 마지막 개인전을 열었으며, 1977년 향년 87세로 생을 마감했다. 대표작으로는 ‘계산청하(溪山靑夏. 1924)’, ‘설경(雪景. 1965)’, ‘추경산수(秋景山水. 1971)’ 등이 있다.

▲1974년 개교해 4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학운초등학교
주소지 상으로 의재로1은 의재 허백련 선생 동상 인근 고물상 옆에 있는 작은 가게다. 실제로 이곳에서부터 의재로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지만, 기자는 전통문화관에서부터 거꾸로 내려오면서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증심사길과 바로 맞닿아 있는 의재로는 무등산을 등반하려는 등산객들이 반드시 거쳐 가는 길이다. 의재로를 따라 전통문화관에서 500여 미터를 걸어 내려오면 광주학운초등학교가 있다.
학운초등학교는 500명 남짓한 학생이 다니는 그리 크지 않은 학교지만, 1974년 개교해 4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학운초등학교 끝자락 사거리에서 무등산국립공원사무소가 있는 등산길로 접어들면 왼쪽엔 사찰음식 전문점 ‘수자타’가 보이고, 오른쪽으론 의재로136번 길이 이어진다. 증심사길에 다양한 상점들이 들어서고 보리밥과 칼국수집에 많은 등산객들이 찾고 있다.

▲의재로 136번길에는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맛있는 집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의재로136번 길에는 아는 사람만 아는 맛집들이 많이 있다. 주로 닭볶음탕이나 백숙 등을 팔지만, 제육볶음이나 김치찌개도 맛이 좋다. 또한 136번길 안에는 2003년부터 매년 국제판화워크숍이 열리는 우제길미술관이 위치하고 있다.

운림동 아트밸리

의재로에는 다양한 미술관들이 모여 있어 미술관거리라 해도 될 정도다. 이 길 안에는 국윤미술관, 연진미술원, 우제길미술관, 무등현대미술관, 의재미술관, 그리고 전통문화관까지 가볼만한 미술관이 참 많다. 그래서 일부에선 이 길을 ‘제2예술의 거리’ 또는 ‘운림동 아트밸리’라고도 부른다.

학운초등학교를 지날 때쯤 거뭇거뭇하던 하늘에서 결국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찌나 많이 오던지 우산을 써도 양어깨와 신발이 홀딱 젖어버렸다. 잠시 비를 피한 후 쏟아져 내리는 비의 양이 줄자 다시 걸음을 내딛었다.
운림중학교를 지나 200여 미터만 내려가면 머리 위로 제2순환도로가 버티고 있는 학운교차로가 나온다. 학운교차로를 지나 또 250여 미터를 더 가면 국윤미술관이 위치한 홍림교가 있다. 홍림교는 남문로에서 증심사로 가는 일방통행 도로인 증심천로와 의재로가 만나는 구간이다.

▲의재로 바로 옆 증심사길에 위치한 무등현대미술관
홍림교를 지나면 양 옆으로 다양한 상점과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는 일방통행 의재로로 이어진다. 때마침 저녁 먹을 시간이어서 그런지 고기 굽는 냄새와 찌개 끓는 냄새들이 코를 자극했다. 비 내린 의재로를 다시 10분 정도 걷자 드디어 의재로가 시작되는 지점임을 알 수 있는 의재 허백련 선생의 동상이 보였다.
정말로 가을이 왔는지 오후 7시였음에도 어둑어둑했다. 주차해놓은 증심사까지는 다시 되돌아 걸어가며 가을 운치를 느끼고 싶었으나 비도 조금씩 내리고 있어 택시를 타고 이동해 ‘의재로 걸어보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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