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의병정신의 뿌리를 찾아서1. 호남 의병역사의 길 되짚어보다
호남 의병정신의 뿌리를 찾아서1. 호남 의병역사의 길 되짚어보다
  • 김다이, 송선옥 기자
  • 승인 2015.09.02 1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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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의병 활동 가장 활발했던 호남지역

역사는 계속 진행 중이지만, 지나온 역사는 점점 뒤로 가면서 기억 저 편에 숨고 있는 듯하다. 올해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면서 여러 지역에서 기념행사를 펼치고 있다.

기억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듯이 아픔과 시련을 겪어온 우리 민족은 기억해야 할 역사가 많다.

한반도에 있는 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외세침략이 많았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있고, 대륙으로 이어지는 요충지에 있었기 때문에 영토 확장을 위해 한반도는 꼭 필요한 땅이었다.

▲한말 국권회복에 앞장섰던 의병부대 ⓒ독립기념관
백성이 스스로 나서 일본에 대항한 의병

의병(義兵)활동은 임진왜란을 거쳐 1895년 을미사변 이후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더욱 거세졌다. 을미사변은 조선을 식민지화하려는 일본의 침략이었다.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으로 우리 민족은 가만히 있지 않고, 일본에 대항해 목숨을 내걸고 스스로 나서 투쟁했다.

쉽게 말해 의병은 나라의 소집이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위급할 때 백성이 스스로 조직했던 민병이다. 의병은 천민에서부터 양반까지 신분이 다양했다. 의병활동은 1910년 일제가 한반도를 완전히 장악하기 전까지 펼쳐졌다.

이후 의병들은 더 이상의 무력투쟁이 불가능하게 되고, 조선말기의 의병은 나아가 독립군의 모태가 됐다.

우리나라에서 활발하게 일어났던 조선말기의 의병활동은 전기, 중기, 말기로 나뉜다. 전기의병은 ‘을미의병’활동이다.

1895년 을미의병은 을미사변과 을미개혁 중 일부인 ‘단발령’으로 인해 발생했다. 주로 활동했던 의병들은 양반과 유생중심으로 일어났다.

유교정신으로 오랫동안 머리를 길러와 상투를 틀었던 우리 민족의 혼을 없애기 위해 일본은 을미개혁을 실시했다. 당시 활동한 의병장은 유인석, 이소응이 대표적이다.

중기 의병은 ‘을사의병’활동이다. 1905년 을사의병은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된 을사조약이 맺어지면서 일어났다. 을사의병부터는 평민출신 의병장도 나오게 됐다. 당시 활동한 의병장으로는 신돌석, 최익현, 민종식 등이 대표적이다.

▲남한대토벌 작전에 항전한 호남항일의병장, 1909년, 독립기념관 소장 황두일, 김원국, 양진여, 심남일, 조규문, 안계홍, 김병철, 강사문, 박사화, 나성화 송병문, 오성술, 이강산, 모천연, 강무경, 이영준
의병활동, 독립군 활동으로 이어가다

후기 의병은 ‘정미의병’활동이다.

1907년 정미년에 고종이 일본에 의해 강제 퇴위가 되고, 군대가 해산되자 항일의병이 일어났다. 그러나 정미의병은 해산한 군인들까지 합세하여 일어나 파급력은 거대했다.

그렇게 후기 의병에는 지역별로 활동이 두드러졌고, 가장 활동이 컸던 전라도에서는 기삼연, 김태원, 심남일 등이 활약을 했다.

이후 의병활동에 위험을 느낀 일본은 남한 대토벌작전을 펼쳤고, 만주와 연해주 등으로 옮겨가면서 의병은 자취를 감추고, 독립군 활동으로 이어나갔다.

이처럼 광주와 전남 주변은 의병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난 지역이다. 이 때문에 의향(義鄕)의 고장으로 불리게 됐다. 우리 선조들의 의병 정신을 본받아 광주학생독립운동, 3.1독립만세운동, 80년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나 역사의 한 편에 기록되기도 했다.

우리 지역에서는 이러한 과거의 역사적 운동에 대한 자료수집과 기념관, 교육, 체험 등 다양한 행사가 매년 치러지고 있지만, 한말의병활동에 대한 조사는 비교적 활발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

한말 호남에서 봉기한 의병은 전국 3만 8천여 명 가운데 2만 3천여명으로 추산된다. 호남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희생을 치른 지역으로 남게 됐다.

의병 규모와 교전 실적은 전국 대비 각 60.4%와 48%에 이른 것으로 추산된다. 그만큼 호남지역이 한말의 의병활동의 주요 거점인 셈이다. 하지만 현재 광주 등 호남지역 한말 의병의 흔적은 후손들이 남긴 비석 몇 개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광주지역은 호남대 '한말의병전적지' 표지석, 어등산 의병 토굴 정도로 의병 정신 선양 등을 위한 대책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말 호남의병 기념사업회 설립 및 지원 조례 발의해

오늘날에 와서는 2010년 5월 ‘의병의 날’이 국가기념일로 공식 지정되기도 했다. 지난해 광주에서는 한말 호남의병 정신을 기리는 사단법인 ‘한말 호남의병기념사업회’가 공식 출범했다.

기념사업회는 앞으로 추모제 및 기념식 개최와 한말 호남의병 공원 조성, 기념탑·기념관·추모관·교육관 건립, 한말 호남의병사 출간 및 교과서 수록 추진, 관련 연극·영화제작 홍보, 타 지역 교류사업 등을 펼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이정현(광산1) 의원이 지난 7월에는 ‘광주광역시 한말 의병운동 기념사업 지원 조례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호남에서 활동했던 의병에 대한 자료 수집, 유적지 발굴 관리, 의병운동에 대한 교육과 홍보, 기념식 개최 등 관련 교재 및 교육프로개발을 하기 위해서다.

현재 광산문화원 문형선 사무국장은 현재 한말호남의병기념사업회의 감사를 맡고, 호남의병기념관 건립 사업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광산구 어등산 일대는 광주를 비롯한 장성, 나주, 함평 등을 잇는 지리적 이점으로 호남의병의 주요 근거지였다. 임진왜란 시기는 고경명 의병장이 무등산 중심에서 활동했다면, 한말에는 어등산을 중심으로 활동한 것이다.

최근 어등산을 중심으로 한말 의병활동의 전적지가 재조명되고 있다. 앞으로 어등산과 박산마을을 중심으로 의병관광단지를 조성하는 방안도 추진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문형선 사무국장은 “기념사업회가 작년에 설립이 되고, 의병에 관련 사업에 관한 시 조례가 통과되면서, 이와 관련해서 큰 테마로 호남지역에는 기념관이 없어 건립을 계획중이다”며 “다른지역의 안동이나, 청송 같은 경우는 의병기념관이 있지만, 의병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던 호남 지역에는 기념관이 없는 게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이렇듯 의향 광주에서 항일의병활동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는 가운데, 딱딱하지 않고, 알기 쉬운 의병 콘텐츠가 만들어지길 기대해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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